KT의 새출발 – 펌



지난 2005년 기자가 KT 분당 본사를 방문했을 때다. 당시 엘리베이터에 설치된 스크린 문자안내판에는 '빼앗긴 011을 찾아옵시다'라는 형광 문자가 표시됐다. 외부인 대부분은 '얼마나 속이 쓰렸으면'하고 헛웃음을 쳤다.

겉으로는 통신업계 맏형이라지만, 위축되는 유선사업에서 갈 길을 못 찾고 헤매던 KT는 지난 1994년 1월 선경그룹(SK)에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의 전신)을 매각했던 정부를 두고두고 원망했다.

유선과 달리 승승장구하는 이동통신 사업이 부러운데다 자회사라고 있는 KTF는 만년 이동통신 2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에도 불구하고 '공기업 습성을 버리지 못한 형님'을 얕잡아보는 분위기까지 팽배했다. KT로서는 이래저래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그런 KT가 '빼앗긴 011(SKT)' 대신 '016(KTF)'을 품에 안았다. 방송통신위원회가 18일 KT·KTF 합병을 인가한 데 이어, KT와 KTF 주주들도 27일 열린 임시주총에서 합병을 의결했다.

KT가 그토록 원하던 이동통신 사업을 얻게 됐으니 이제 승승장구할 일만 남은 것인가. 이 답을 하기는 아직 이르다. 불행하게도 시장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잘나가던 이동통신 사업은 경쟁체제로 전환한지 10여 년 만에 시장 포화상태에 직면했다. 국내 이동통신 가입자수는 벌써 4600만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KTF는 더이상 큰 폭으로 늘어나지 않는 가입자 대신 성장을 이어갈 대안을 아직 만들지 못했다. 무너진 유선사업 보다야 낫다고 할 지 모르지만, KTF 역시 지금대로라면 수년 안에 '비상경영'을 선포하며 자구책을 마련하는 상황에 직면할지 모를 일이다.

이번 합병이 당장 매출이나 영업이익과 같은 '수치'로는 성장정체에 빠져 몇년째 매출 12조원 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KT에 득이 될지 모르지만, 엄격히 말해 KT가 '블루오션' 사업을 획득한 것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공교롭게도 KT 주총 이틀 뒤인 29일은 SK텔레콤의 전신인 한국이동통신이 출범한지 25년째 되는 날이다. 국내 이동통신 서비스가 사반세기를 맞은 시기에 KT가 무선 시장에 직접 진출한 것이다.

다시 사반세기가 지나 국내 이동통신 산업이 50년이 되는 2034년. 016을 품은 KT가 그때까지 국내 대표 통신주자로 우뚝 서 있을까. '합병KT'의 미래는 아직 백지 상태로 남아있다. 그 백지가 장미빛이 될 지, 그 반대상황이 될 지는 KT의 어깨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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