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는 갑을오토텍의 민주노조탄압과 얼마나 다른가?

[집중분석-곡성보다 잔혹한 갑을오토텍 노조파괴 사건 재구성]


‘파업유도→직장폐쇄→제2노조 설립’ 매뉴얼 정한 뒤, 사원아파트·자녀학자금 지원 중단 “미끼 던져 현혹”


금속노조 탄압 양상 유성기업과 판박이 … 특전사 채용해 유혈사태 벌인 이유, 결국 ‘통상임금’이었나?


구은회  |  press79@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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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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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아산에 위치한 갑을오토텍은 지난 2014년 경찰·특전사 출신 신입사원을 채용해 금속노조 충남지부 갑을오토텍지회 무력화를 시도해 비난을 샀다. 2년 전 시작된 노사갈등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해 지회가 공장 안에 내걸었던 투쟁 플래카드들은 여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제정남 기자
  
 

사용자가 어떤 이유에서든 노동조합을 약화시키기로 작정하고 실행에 옮겼을 때 노동조합은 이를 ‘노조 파괴’ 또는 ‘노조 탄압’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노조파괴를 행동에 옮긴 당사자인 사용자는 이를 뭐라고 칭할까. 바로 “현장 장악”이다. 충남 아산 소재 자동차 부품업체 갑을오토텍에서 1년 넘게 계속되는 노사갈등은 한마디로 현장을 장악하려는 욕망에 휩싸인 사용자의 ‘막장 드라마’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과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가 4일 공개한 두 개의 문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역시 ‘현장 장악’이다. 최상위 보안등급으로 분류된 ‘Q-P 전략 시나리오’와 ‘K-P 전략 시나리오’ 문건은 유성기업·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영남대의료원 등의 노조 파괴 사태에 개입했던 창조컨설팅 출신 김형철 공인노무사가 만든 노무법인 예지에서 2014년 작성했다.

해당 문건은 권아무개 노무부문장이 회사 문서고에 은닉한 것을 검찰과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4월 압수수색을 벌여 찾아낸 것이다. 문건에는 노동관계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일반인도 회사측의 불법행위 공모 의혹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만큼 상세한 내용이 담겨 있다.

갑을오토텍에서 왜 노사갈등이 불거졌는지, 회사측이 앞으로 어떤 일을 벌여 나갈 계획이었는지 검찰과 노동부는 모두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지난해 공장에서 벌어진 노·노 갈등이 사실은 회사측이 고용한 전직 특전사·경찰 출신 직원들이 주도한 유혈사태였다는 점도 검찰과 노동부는 전부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문건 내용이 그대로 실행됐기 때문이다.

"통상임금? 웃기고 있네" 갑을오토텍 사태의 시작

갑을오토텍이 그토록 현장을 장악하고자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갑을오토텍의 옛 사명은 모딘코리아다. 위니아만도 차량공조사업부가 모태다. 2009년 모딘코리아를 인수한 모기업 갑을상사그룹은 사명을 갑을오토텍으로 변경하고 경영정상화에 박차를 가했다. 인수 당시 1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던 갑을오토텍은 이듬해인 2010년 78억원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신흥 강자로 두각을 나타냈다.

갑을상사그룹은 지난해 20여개 계열사 전체에서 2조원대의 매출을 기록했는데, 동국실업과 갑을오토텍 같은 자동차 부품 분야에서만 1조원을 뽑아냈다. 부품 분야는 그룹의 자금원 역할을 하는 캐시 카우(Cash Cow)였다. 그룹은 2020년까지 전체 매출을 5조원대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부품 분야가 탄탄하게 받쳐 줘야 가능한 얘기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했던 갑을오토텍은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통상임금 판결이 나오면서 언론의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정기적·고정적·일률적으로 지급된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법리를 구축한 바로 그 판결이다.

자동차 시장 호황에 힘입어 승승장구하던 갑을오토텍에게 통상임금 판결은 악재였다. 통상임금 판결은 곧 임금인상을 의미했다. 매출 5조원을 향한 고속도로에 느닷없이 뛰어든 장애물이었다. 제거해야 했다. ‘Q-P 전략 시나리오’와 ‘K-P 전략 시나리오’가 만들어진 이유다.

두 개의 시나리오 문건에는 아니나 다를까 통상임금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조합원 스스로 통상임금 소송을 취하하게 만들겠다는 구상인데, 회사는 과연 어떤 수를 동원해 소송 취하를 유도하려 했던 것일까.

용병도 등급이 있다 … '가급A'만 아는 특급비밀

사건은 2014년 겨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2월 갑을오토텍 아산공장에 60명의 신입사원이 채용됐다. 상당수가 전직 특전사 또는 경찰 출신이었다. 이들이 채용되는 과정에 모집책(브로커)이 중개자 노릇을 했다. '이상한 신입사원들'은 이듬해인 2015년 제2노조(갑을오토텍노조)를 만들고, 기존 노조(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 조합원들을 겁박하거나 흉기를 휘두르면서 폭력을 행사했다. 이른바 ‘노조 파괴 용병’의 등장이다.

‘Q-P 전략 시나리오’와 ‘K-P 전략 시나리오’에 따르면 회사가 이들을 채용한 목적은 “관리력 및 현장장악 강화” “관리직과 협조하에 구사대 역할” “조합 분열 및 제2노조 설립” “파업시 생산 정상화 기여” 등이다.

정작 당사자들은 자신이 어떤 목적을 위해 행동하는지 몰랐을 개연성이 높다. 용병에도 ‘등급’이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는 이들에게 가급A·가급B·나급·다급·라급 순으로 신분을 매겼다. 이 중 가급A로 분류된 6명만 “Q-P 최종 목표 구체적 공유”라는 특권을 부여받았다. 나머지 54명은 쉽게 말해 ‘까라면 까는’ 존재였던 셈이다.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조직문화에 익숙하고, 구사대 역할을 수행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체력을 갖춘 전직 특전사·경찰 출신이 신입사원으로 발탁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들은 회사가 구상한 용도에 따라 움직였다. 회사가 이들을 어떻게 이용하려 했는지 추적하다 보면, 데자뷔처럼 떠오르는 사업장이 있다. 무려 6년째 노사갈등을 겪고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 유성기업이다. 회사가 개입해 복수노조를 만든 뒤 기존 노조를 무력화하고, 기존 노조 조합원을 물질적·정신적 방법을 동원해 괴롭히는 ‘유성기업 전염병’이 갑을오토텍까지 번진 모양새다.
 

  
▲ 갑을오토텍 가족대책위원회가 도시락을 싸들고 지난달 31일 공장을 찾았다. 20일 넘게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지회 조합원들과 간만에 웃음꽃을 피웠다. 제정남 기자


'유성기업 전염병' 어디까지 퍼지려고…

갑을오토텍은 유성기업 식의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작동하기 위해 가장 먼저 ‘파업 유도’ 전술을 쓰기로 했다. ‘Q-P 전략 시나리오’와 ‘K-P 전략 시나리오’에 따르면 회사는 "경비업무 외주화→노조 반발하며 파업 돌입→파업시 노조의 회사출입 저지(직장폐쇄)"로 이어지는 대응방안을 마련했다. ‘정규직 공장’이었던 갑을오토텍에 비정규직 직무가 도입되면 노조가 즉각 반발해 파업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하고 써내려 간 시나리오다. 또 다른 노사갈등 사업장인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 사측이 이미 사용한 수법이기도 하다.

갑을오토텍은 이러한 계획하에 노조가 언제 파업에 돌입해야 직장폐쇄 효과가 극대화되는지도 분석했다. 회사는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직장폐쇄를 단행해야 노조 조합원들의 사업장 복귀가 어렵다는 점에 착안해 2014년 12월24일을 디데이로 정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도록 주변 환경을 조성한 뒤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26일부터 직장폐쇄에 돌입해 공장을 봉쇄한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회사는 다른 한편으로 조합원들을 어떻게 괴롭힐지 구상했다. 조합원들의 가장 약한 고리를 건드리는 치졸한 전략이 마련됐다. 집을 뺏고, 자녀 교육비를 안 주는 방식이다. 대부분 공장에서 제공된 사택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조합원들에게 웬만한 징계보다 치명적인 내용이다. 회사는 예정대로 직장폐쇄가 단행되면 조합원 중 일부만 선별적으로 업무에 복귀시킨다는 계획을 세운 뒤 그동안 무상으로 제공한 사택을 분양으로 전환하고 조합원 자녀에 대한 학자금 지원을 중단하기로 했다. 회사가 던진 강력한 미끼였다.

동요하는 조합원이 회사가 던진 미끼를 물면 금속노조에서 탈퇴하고 파업에 불참하겠다고 서약서를 쓰게 한다는 지침도 마련했다. 그런 다음 ‘용병’들이 만든 제2노조 가입을 유도함으로써 기존 노조 약화를 꾀하겠다는 구상이었다.

'막장 드라마 공동주연' 회사와 제2노조

갑을오토텍의 노조 파괴 시나리오가 막장 드라마인 이유는 곳곳에서 사용자의 ‘거짓 연기’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회사측은 용병 중 신분이 가장 높은 ‘가급A’ 직원을 제2노조 위원장으로 앉힐 계획을 세운 것도 모자라, 기존 노조 내 집행부 반대세력을 포섭해 제2노조 차기 위원장으로 세운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더욱 황당한 것은 그 다음 대목이다. 회사는 제2노조로 하여금 "직원들에게 노조 설립 사실을 홍보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사측에 접수하게 하고, 회사가 이를 불허한다는 계획도 수립했다. 마치 회사와 제2노조 사이에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는 것인 양 연기하겠다는 것이다.

제2노조 설립 주동자들이 공장에서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존 노조와 분쟁을 일으키고, 이를 이유로 제2노조를 만든다는 계획도 시나리오에 등장한다. 시나리오 문건은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제2노조 설립명분 마련”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눈 가리고 아웅, 짜고 치는 고스톱이 따로 없다.

이처럼 겉으로는 회사와 제2노조가 모르는 사이인 것처럼 연기했지만, 시나리오 문건을 통해 회사는 “회사와 동료를 위해 대응한 경우 모든 책임은 회사가 진다”거나 “본인에게 부여된 역할과 임무를 수행하지 않은 경우 반드시 문책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막장 드라마에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조폭 정서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쯤에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회사는 도대체 제2노조를 통해 무엇을 취하려 했던 것일까.

바로 ‘현장 장악’이다. 회사는 제2노조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현장 권력을 장악하고자 했다. 제2노조를 이용해 ‘말 잘 듣는’ 직원에게 사원아파트 우선 분양권을 주려고 했다. 직원을 길들이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엿보인다. 회사는 제2노조로 포섭된 조합원들에게 통상임금 소송을 취하하도록 하고, 제2노조로의 ‘무파업 교섭 위임’에 찬성하면 격려금을 지급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회사가 채용한 용병들의 과도한 충성으로 지난해 유혈사태가 벌어진 뒤 회사가 만든 시나리오는 그 끝을 보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하지만 올해 들어 또다시 노사갈등이 불거지고 회사가 애초에 마음먹은 바대로 직장폐쇄를 단행한 상황이다. 폐기된 줄 알았던 시나리오가 재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노조는 불필요한 존재, 파괴해도 좋은 존재라는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이날 문건을 공개한 이정미 의원은 "갑을 자본이 이렇게 추악한 자신의 모습이 드러났음에도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걸고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강제로 입을 벌려 미끼를 물게 하고, 누가 봐도 명백한 기업노조(Company Union)로의 가입을 현혹하는 자본의 추악한 민낯은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공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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