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퇴’가 꼴보기 싫은 당신, 혹시 좀비형 사축?..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칼퇴'가 꼴보기 싫은 당신, 혹시 좀비형 사축?

[서평]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16.07.07 12:59l최종 업데이트 16.07.07 12:59l
편집: 최은경(nuri78)              
 
    
사축(社畜)이라는 단어가 있다. 회사가 시키면 뭐라도 해야 하는 회사원의 처지를 빗대어 쓰는 단어다. 말 그대로 회사에서 키우는 가축이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부당한 처우를 받아도 따지지 못하고, 휴가는 당연히 쓰지 못하며, 정해진 근로 시간보다 더 일을 해도, 야간에 일을 해도, 쉬는 날에 나와서 일을 해도 추가 수당을 받지 못하는 신세를 자조하는 말이다.

물론 근로자의 근로 조건을 보장하기 위해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각종 노동법이 있다. 하지만 노동법은 '사회인으로서의 상식'에 따라 배제되고 있다. 야근을 하면 일한 만큼 수당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남이 받지 않으면 나도 받지 않는 것이 상식인 게 현실이다. 상사가 퇴근하지 않으면 내 일이 끝났어도 눈치를 봐서 퇴근하지 않아야 한다. 휴가는 아예 쓰지도 못하게 하면서 경영자의 마인드로 일할 것을 강요받기도 한다.

제멋대로 회사에 유리하게만 적용되는 사회인으로서의 상식과 사축같은 생활에 질렸다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책이 있다. 그 이름도 거창한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다.

기사 관련 사진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 히노 에이타로, 오우아

관련사진보기

이 책은 날카로운 제목처럼 보람이나 사회인의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는 노동 관행과 사축 문화를 비판한다. 보람을 주려는 상사에게 "어디서 개수작을"이라고 외치는 회사원이 그려진 표지가 이 책의 분위기를 잘 설명하고 있다.

책은 전체 4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책 전반에 걸쳐 회사원이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말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책의 우측 하단에는 '야근이 잦은 회사임을 들키지 않으려는 속셈인지 인사과에서 취업활동 중인 학생에게 보낼 메일은 근무시간 안에 보내라는 명령을 내렸다. - 24세 영업직'과 같은 씁쓸한 회사 생활의 한 마디가 적혀 있다. 전체 분량은 170p 내외이며, 공감충만한 발언으로 가득한 책이기에 쉽게 쉽게 읽히는 것이 장점이다.

저자는 도쿄대를 졸업하고 웹서비스 계열에서 경영자와 회사원을 모두 경험해 본 히노 에이타로라는 일본인이다. 그는 현재 탈사축(脫社畜) 블로그를 운영하며 그릇된 노동 관행을 비판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히노 에이타로가 책에서 가장 비판적으로 보는 것은 보람, 열정, 경험이나 사회인으로서의 상식 등 별 쓸데 없는 이유로 근로자에게 강요되는 불합리한 관행이다. 그는 보람을 이유로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근로자의 권리가 무시되고, 사회인으로서의 상식을 이유로 이런 관행이 합리화되는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사회인으로서의 상식'이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되는 경우는 대부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합리한 관습을 억지로 밀어붙이려는 때다.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있는 그대로 설명하면 그만이다.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사회인으로서의 상식'이라는 단어를 들었다는 이유로 생각하기를 포기하지 말자. -40P

남의 물건을 훔치는 절도는 당연히 악한 행위로 인식되지만, 남의 노동력을 훔치는 범죄(야근 수당없는 야근 등)는 심각한 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근로자의 권리가 박탈되는 잘못된 근로 환경을 인정하는 것은 경영자에게만 이득이 됨을 그는 지적한다.

이런 잘못된 근로 환경의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근로자의 권리가 박탈되는 곳에서라도 일할 수 있음을 감사히 여기면 '노예형 사축'이 되고, 내가 이렇게 힘드니까 남도 사축으로 만들어버리겠다고 생각하면 '좀비형 사축'이 된다. 이런 회사에도 충성을 다하겠다는 마음을 갖는다면 '하치코(일본의 충견)형 사축'이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책은 사축을 분류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축을 양성하는 체계적인 사회 시스템까지 분석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노동법에 따른 근로자의 권리를 인식하지 못한다. 애당초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근로 조건을 따지는 법이나 근로자의 권리는 가르치지 않으면서 일로 보람을 얻으라는 말만 되풀이해서 듣는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취업 활동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이런 현실을 비판적으로 인식할 시각을 갖추기도 어렵다.

대학이 학문이 아닌 취업 준비를 위한 공간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취업 준비가 쉬운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원하는 회사에 취업하지 못하고 거절당한다. 취업 준비 과정에서 오랫동안 실패를 맛본 구직자가 자신을 뽑아준 회사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은 그때문이다. 물론 회사는 인력이 필요해서 구직자를 뽑은 것이고 경기가 악화되면 해고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말이다.

마침내 모든 고통을 겪고 회사에 취업하면 회사에서는 사축이 되는 가치관을 연수를 통해 강제로 주입한다. 이미 회사에서 근무하는 좀비형 사축들에 의해 동조 압박을 받게 되면 비로소 완전한 사축이 된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경영자 마인드로 일해봤자 좋은 건 사장뿐임을 명심하고, 회사는 어디까지나 거래처라고 생각하라는 등의 8가지 사축탈출 가이드를 제시한다. 그리고 한 명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회사의 사축적 가치관에서 탈출하여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인식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희망한다.

어떻게 보면 정말 저자가 하는 말은 당연한 것들이다. 하지만 사회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금기시 되어 있다. 젊은 근로자가 근로조건에 대해 말하거나 보람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한다면 '어린 놈이 건방지다'는 욕을 듣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매우 불편하지만 젊은 근로자나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조언을 해준다는 점에서 독특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일본인 저자가 일본의 근로 현실에 대해 적은 책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과 실업률이 한국보다 양호한 수준임을 생각하면 오히려 저자가 지적하는 환경은 한국에선 더 열악하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특별히 일본의 근로 환경에 대해 잘 알지 못해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현장의 목소리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