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과자 해고는 상대평가인가 절대평가인가, 절대평가면 문제없나

저성과자 해고는 상대평가인가 절대평가인가, 절대평가면 문제없나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정부가 연내에 행정지침(가이드라인)화하려는 저성과자 해고 기준은 절대평가일까, 상대평가일까. 노동자들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절대평가라고 해도 문제는 없는 걸까.

4일 저성과자 해고와 관련된 판례를 살펴보면, 대법원과 하급심은 모두 상대평가에 기초한 인사평가에 따른 해고를 무효라고 판단하고 있다.

대법원은 2006년 상대평가를 통해 시용기간 중에 있는 노동자를 해고한 것은 무효라고 판단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옛 한미은행은 1998년 경기은행을 인수하면서 선별작업을 거쳐 기존 경기은행 직원 중 일부와 시용조건부 고용계약을 체결했다.

한미은행은 이듬해 4월 경기은행 출신 직원 736명을 대상으로 고용계약을 지속할지를 판단하기 위해 근무성적 평정을 실시했다. 평정기간은 1998년 11월부터 1999년 3월까지이며 등급은 A(탁월), B(양호), C(약간 미흡), D(미흡)의 4등급으로 분류했다. 736명 중 650명은 A·B등급을 받았으나, 나머지 86명은 C·D등급을 받아 고용계약 해지 대상자로 선정됐다. 한미은행은 이후 대상자 개별면담을 거쳐 42명을 근무성적 불량 등을 이유로 해고했다.

문제는 인사평가 과정에서 한미은행이 각 지점별로 고용해지 대상 인원의 수(C·D등급)를 할당했고, 시용조건부 근로계약 해지의 성격상 해당 노동자의 업무적격성 등을 절대적으로 평가해야 하지만 상당수 평정자가 다른 직원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상대평가를 했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대법원은 해고가 무효라고 본 것이다.

하급심 역시 근무성적 불량으로 인한 해고가 정당하려면 상대평가에서 연속해 최하위등급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봤다. 진모씨는 1996년 4월 경력직 사원(차장급)으로 포스에이씨 종합감리건축사무소 입사해 전기설비 감리업무를 맡았다. 진씨는 2004년 9월 인사고과 결과가 4회 연속 최하위 등급에 해당하는 등 근무성적이 불량하다는 이유로 권고해직됐다. 하지만 그가 7일 이내 사직서를 내지 않아 회사는 그를 징계면직 처리했다. 이후 지노위, 중노위는 그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받아들였고 서울행정법원도 부당해고라는 점을 확인했다. 법원은 “회사의 인사고과제도는 절대평가 방식이 아닌 상대평가 방식이므로 단지 인사고과에서 최하위등급을 받았다는 것만으로 진씨의 업무능력이 객관적으로 불량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명예퇴직을 거부한 직원 위주로 구성된 KT의 CFT(크로스 펑셔널 팀)에 속한 박진태씨가 지난해 경기 하남시 풍덕동에서 설비에 이상이 있어 보이는 전봇대를 휴대전화로 찍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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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달 21일 노동부 확대정책 점검회의에서 저성과자 해고와 관련해 절대평가라는 점을 언급한 것도 이런 판례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장관은 “업무 부적응자는 성과평가 결과에 의한 상대평가가 아니라, 객관적·투명한 기준에 따라 선정하는 절대평가의 개념이며 현저히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며 “현장에서도 불안이나 오해가 없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지난 8월 초 한국노동연구원의 ‘공정한 인사평가에 기초한 합리적인 인사관리’ 보고서를 통해 저성과자 해고 가이드라인의 일부를 제시한 데 이어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라는 점도 확대정책 점검회의를 통해 제시를 한 셈이다.

노동계엔 상대평가보다는 절대평가가 유리하다. 상대평가가 허용된다면, 기업이 상시적으로 저성과자를 만들어내 해고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절대평가라 해도 위험성이 해소되는 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인 강문대 변호사는 지난달 24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노사정 합의안과 새누리당 노동시장 선진화법에 대응하기 위한 노동·시민·학계 긴급 토론회’에서 “절대평가의 경우에도 (기업이) 평가점수의 조절을 통해 얼마든지 일정 인원 수의 저성과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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