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케티는 케인즈 경제학의 아류이다

다시 ‘피케티의 급진화’를 위하여

등록 :2015-05-03 19:56

 
김공회의 경제산책
지난 일년 동안 사회문제에 관심있는 양심들의 마음을 들썩이게 했던 젊은 경제학자가 있다. 바로 토마 피케티다. 그의 <21세기 자본>이 영어판으로 나와 베스트셀러가 된 지도 이제 꼬박 한 해가 흘렀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세제개혁이었다. 자본주의 자체가 불평등을 낳는 체제이긴 하지만 최근 불평등의 심화는 잘못된 조세제도에 의해 부추겨진 결과라는 진단 아래, 소득세와 재산세의 수준과 누진성을 크게 높여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돌이켜보면 그의 제안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과격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훌륭한 저작들이 그렇듯 <21세기 자본>의 가장 중요한 미덕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고 그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냈다는 데 있다. 이제 불평등은 경제의 문제점과 대안을 사고함에 있어 피케티 비판자들까지도 무시할 수 없는 주제가 되었다.
 

피케티의 자본주의 분석과 불평등 심화에 대한 해법의 한계는 크게 두 가지 점에서 구할 수 있다.
 
첫째, 우리는 불평등의 원인과 처방을 피케티가 그랬듯 조세 영역에서만 구할 필요가 없다. 세제를 통한 재분배를 ‘2차 분배’라고 하는데, 이 영역의 개혁으로 불평등을 교정한다는 것은, 조금 야박하게 말하면 ‘1차 분배’의 결과들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신자유주의 이후 비정규직 일반화와 임금수준 저하, 가계부채 1000조원 시대를 여는 데 공헌한 고리대 수준의 카드론·대부업 이자율, 불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치솟는 주거비 등이 포함된다. 과연 이것들이야말로 최근 한국 사회에서 심화된 불평등의 가장 핵심적인 원인이자 결과 아닌가? 세제도 세제지만, 이런 문제들을 직접 제기하는 조처들이야말로 불평등의 좀더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는 것 아닌가?
 

둘째, 피케티는 국가의 재정활동을 부분적으로만 다루고 있다. 그에 따르면 자본주의에서는 내재적으로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크기 때문에 불평등을 낮추기 위해선 자본에 세금을 많이 물려 양자의 관계를 뒤집어야 한다. 그러나 국가의 재정활동엔 세금을 걷는 것뿐만 아니라 쓰는 것도 포함되는데, 자본주의하에서 후자는 당연하게도 자본수익률을 높이는 것을 기본 목적으로 한다. 자본수익률은 경제성장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케티가 ‘자본’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이 성장에 기여하진 않는다. 그는 전통적인 자본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자산들을 ‘자본’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엔 생산과는 전혀 상관없는 약탈적인 성격의 것들(고리대 등)도 들어간다. 따라서 만약 국가가 자본 전체에 세금을 무겁게 매긴 뒤 확보된 세수를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쓴다면, 결과적으로 상당한 소득이 비생산적 자본가로부터 생산적 자본가에게 재분배될 것이다. 이러한 자산계급 간의 재분배야말로 현실적으로 국가의 재정활동이 담당하는 기본적인 역할이다.
 

김공회 정치경제학 강사
김공회 정치경제학 강사
이상의 문제들은 필자가 작년부터 <왜 우리는 더 불평등해지는가>라는 공동저작을 통해 ‘피케티의 급진화’라는 이름으로 지적해온 것이다. 마침 피케티의 멘토이기도 한 앤서니 앳킨슨 교수의 <불평등: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저작이 곧 출간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 책은 이상에서 지적한 문제점들을 상당 정도로 담아내고 있는 것으로 보여 필자로선 매우 반갑다. 한편 불평등을 정면으로 문제삼는 제자와 스승이 각각 마르크스와 레닌의 대표작을 흉내내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김공회 정치경제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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