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이라는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파시즘이라는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김승호(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 대표)

  

1789년 프랑스 혁명과 인권선언, 공화주의와 똘레랑스(관용)의 나라로 알려진 프랑스에서 지난달 30일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당수가 100%의 지지를 얻어 당수로 재선출됐습니다. 이로써 그는 2017년 대선에서 중도우파인 대중운동연합의 사르코지 당수(전 대통령)와 대결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렇게 되면 프랑스에서 중도우파와 중도좌파가 돌아가면서 정권을 잡고 함께 통치하던 자유민주주의 시대가 끝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마린 르펜의 대선 결선진출은 아버지 장 마리 르펜의 2002년 대선 당시 결선진출과 질이 다릅니다. 마린 르펜은 프랑스에서 가장 지지도가 높은 대통령 후보 중 하나입니다. 국민전선은 올해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25%를 득표해 프랑스 제1당으로 부상했습니다. 3월 지방선거에서는 사상 최다인 11명의 자치단체장을 냈고, 9월 상원의원 선거에서는 2명의 의원을 당선시켜 사상 최초로 상원에 진출했습니다. 확고한 기반을 구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1215년 국왕이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인정한 마그나카르타(대헌장)의 나라로 유명한 민주주의의 원조 영국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보수당과 노동당의 양당체제를 1906년 이후 108년 만에 무너뜨리고 극우정당인 영국독립당이 28%를 득표해 단숨에 1위를 차지했습니다. 노동당과 보수당은 각각 25%24%에 그쳤습니다. 뿐만 아니라 10월 치러진 에식스주 클랙턴 선거구의 하원 보궐선거에서 영국독립당 후보가 60%를 득표해 보수당 등 다른 후보들을 압도적인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습니다. 창당 21년 만에 하원에 입성한 것입니다. 한 여론조사기관에 따르면 전국적인 정당지지율에서도 예사롭지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보수당과 노동당이 각각 31%의 지지율을 보인 가운데 영국독립당은 지지율을 25%까지 끌어올려 제3당의 지위를 굳혔습니다.

 

나치 기억 때문에 극우정당을 기피해 온 독일에서도 유럽의회 선거에서 유로화 통용에 반대하는 극우 성향의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7%의 득표율로 유럽의회에 진출했습니다. 네오나치 성향의 민족민주당은 1.0%를 얻어 유럽의회에서 처음으로 1석을 차지하게 됐습니다. 이탈리아에서 반유럽연합을 주장하는 오성(五星)운동(M5S)25.5%를 득표해 2위를 차지했습니다.

 

복지국가의 대명사인 스웨덴에서는 총선에서 극우정당인 스웨덴민주당이 13%를 얻어 제3당으로 올라섰습니다. 그런데 스웨덴에서는 최근 스웨덴민주당의 반대로 좌파연정이 두 달 만에 붕괴돼 정치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다음 수순은 극우와 우의 연정이 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아베 정권이 집권한 지 만 2년이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아베 정권은 대외적으로는 성노예(이른바 군대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사과한 고노담화를 부인했습니다. 또한 도발적인 독도 영유권 주장과 남경학살 사실 부인, 심지어 해석 개헌을 통한 집단자위권 정당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군국주의·제국주의 지향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이와 맞물려 안으로는 특정비밀보호법·국제테러리스트재산동결법 등 치안탄압법을 제정해 파쇼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아베 정권은 아베노믹스로 경제를 살린다고 했으나 성장도 물가도 회복하지 못하고 디플레이션 직전 상태로 추락했습니다. 그 결과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에 의해 신용등급이 A1로 한 단계 강등돼 한국(Aa3)보다 못한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악정과 실정에도 아베 정권은 국민의 신임을 묻겠다며 국회를 해산하고 총선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집권 자민당이 총 475석 중 300석 이상을 얻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민주당·사회당·공산당 등 반파쇼 정치세력의 무기력 탓입니다. 이렇게 되면 전쟁을 금지한 현행 평화헌법을 폐기하는 데 찬성하는 의원이 하원의 3분의 2에 달하게 되면서 개헌이 가능해집니다. 일본 정부가 파쇼화를 노골화하고 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배경입니다.

 

사실 자본주의 정치·국가 형태의 파쇼화는 유럽과 일본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 자본주의 패권국가인 미국에서부터 진행돼 왔습니다. 미국에서는 지금 테러방지를 빙자해 만든 애국법(20019·11 직후)에서 나아가 대이란 전쟁 대비를 빙자해 제정한 국방수권법(2012)으로 시민적 권리가 심하게 침해당하고 있습니다. 최근 연이어 일어난 경찰의 흑인청년 살해는 단순한 인종차별 때문이 아니라 파쇼화로 인권탄압이 심해진 데 따른 문제입니다.

 

대한민국 박근혜 정권의 등장과 통치도 이런 세계적 움직임 속에서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세계 자본주의가 초유의 대공황과 위기를 맞이하자 자본은 경제적으로는 초자유주의 축적 패러다임으로, 정치적으로는 파시즘 국가형태로 개조하는 것을 통해 살 길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현장의 목소리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