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일이 걸어 온 길

안녕하십니까..?
저는 2003년도에 이어 2010.4.1.자로 두번째 해고되어
해고생활을 하고 있는 조태욱입니다.
 
2008년12월 제10대 kt노조위원장 선거에 후보자로 출마하여
고통을 호소하는 전국의 조합원들을 만난지가 벌써 3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제 11대 노조위원장 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지난 3년간  45명에 달하는 동료직원들이 사망하여 우리곁을 떠났습니다.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노동조합을 지난번 선거를 통해 만들었다면
소중한 목숨 잃는 것만은 막을 수 도 있었을 텐데 라는 자책감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또 다시 노동조합을 제대로 세울수 있는 기회가 다가왔습니다.
지난번 선거가 "절반의 조합원 혁명" 이었다면
이번 선거는 "조합원 혁명의 완성" 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번 선거에 출마할 민주후보가 10월7일부터 시행된 조합원참여경선제를 통해
지난 10월23일 장현일 동지로 최종 결정되었습니다.
 
후보자이기 이전에 '인간 장현일'이 누구인지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제가 함께 겪으며 알고 있는 '장현일이 살아온 길'을 간략히 소개하고저 합니다.
 
그는 1960년 인천부평에서 태어났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때 부모님 연고지인 충북 청주로 옮겨
청주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다녔고 대학은 애초에 1979년 서울대 공과대학으로 진학했으나
뜻한바 있어 재수를 하여 1980년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으로 재입학하여 국제경제학을 전공하였습니다.
 
학창시절 80년 광주민주항쟁에 영향받아 민주화운동에 열심히 참가한 탓으로 4학년초에
강제징집되면서 학업을 더이상 이어갈 수 없었습니다. 군제대후 사회민주화운동에 뜻을 두고
활동을 하였는데 큰아이 출산 등 생활고가 겹치면서 1990년 KT에 입사했습니다.
 
1991년말 유덕상, 양한웅 등 당시 노조민주화 추진활동을 하던 분들이 해고되는 사건을 계기로
어용노조 민주화추진위원회 활동에 참가하였습니다.
1994년 유덕상 민주집행부 등장과 함께 청량지부장에 당선되어 활동하다가
1995년 초에 노조 중앙본부 쟁의실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1995년 김영삼정부의 당시 한통노조 대탄압 시기에 이에 항의하는 명동성당 농성을 주도한 탓으로
구속되고 해고되었습니다.
 
그는 해고시절 초기에는 복직투쟁과 노조 기획국장, 자문위원 등을 병행하는 활동을하다가
2000년 말에 민주노총 대외 협력국장, 2005년 민주노총 서울본부 정치위원장 등을 맡아
시민사회단체, 정당등과 연대하고 협력하는 사업등을 맡아 일했습니다.
2007년도에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되면서 해고된지 13년만인 2008년에 KT강동 NSC로 복직되어서
2008년말 노조선거에서 수도권 강남지방본부위원장으로 출마하였습니다.
2010년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이석채회장께 직원은 6,000여명이나 내보내고 임금은 동결하면서
경영진 급여는 45%나 올리는게 도덕적으로 타당한가를 따진 것이 빌미가 되어
1심에서 감봉3월, 2심에서 견책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는 2010년 7월 홈부문 강동지사에 발령받아 현재 영업업무를 맡고 있으며
가족으로는 부인과 두딸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장현일 동지의 청년시절부터 50줄이 넘은 현재까지의 삶은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헌신한 과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선거운동으로 전국순회 기간에 '인간 장현일'을 직접 만나보시면
더욱 따뜻한 인간미를 느끼시라 믿습니다.
 
환절기 모든 조합원들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조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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