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소액주주 35명, 경영진 13명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2심 법원 4가지 청구 주장 모두 배척···“이유가 없다”
최종 판단 대법원으로···원고들 “면죄부”“협소한 해석”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KT 경영진의 의무 위반을 주장하며 소액주주들이 제기한 주주대표소송이 항소심 법원에서 기각됐다. 임원 명의로 국회의원들을 불법 후원한 이른바 ‘상품권깡’ 사건이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630만 달러(약 75억 5118만 원) 과징금을 물게 됐음에도 법원은 이사들의 감시의무 위반을 인정하지 않거나 그 책임이 미미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확인된다. 주주들은 재판부가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사실조차 오인하고 이를 기초해 법리를 잘못 적용한 잘못이 있다며 대법원까지 다툼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12일 시사저널e 취재에 따르면, 수원고법 민사5-3부(재판장 조효정 부장판사)는 KT소액주주 35명이 KT 이석채 전 회장, 황창규 전 회장, 구현모 전 사장 등 13명을 상대로 제기한 주주대표소송을 지난달 24일 기각했다.
주주대표소송이란 회사가 이사에 대한 책임추궁을 게을리 할 경우 주주가 회사를 위해 이사의 책임을 묻는 소송이다. 이사는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 또는 정관에 위반한 행위를 하거나 그 임무를 게을리해 회사에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 회사에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즉, 회사는 이사의 손해배상책임을 추궁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회사의 경영을 담당하는 이사가 자신들의 책임을 추궁하는 회사의 권리행사에 소홀히 하는 경우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이사의 책임을 추궁하고 회사의 손해를 보전하는 것이 주주대표소송의 기능이다.
원고들은 총 4가지 사안에서 피고들이 대표이사나 이사의 충실의무 및 선관주의의무 위반, 감시의무를 위반했다며 이번 소송을 냈다. 구체적으로 ▲무궁화위성 3호 저가 매각 관련 주장(추정 손해배상액 211억원) ▲미르·케이스포츠재단에 대한 불법 출연 및 플레이그라운드 광고대행사 부당 선정 주장(11억) ▲‘상품권깡’ 사건으로 불리는 비자금 조성 및 불법 정치자금 후원 관련 주장(86억) ▲KT 아현국사 등급 허위신고 및 화재사고 관련 주장(439억) 등이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원고들의 청구는 이유가 없다”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KT가 비자금을 조성해 국회의원들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상품권깡’ 관련 주장에 대해 ‘황창규가 CR부문 임원들의 업무 집행이 위법하다거나 의심할 만한 사유가 있음에도 이를 조장하거나 방치한 감시의무 위반이 없다’고 봤다.
황 전 회장이 ▲2014년 하반기 ‘기부금 집행내역’을 보고받은 것은 사실이나 다른 단체에 대한 기부, 후원, 협찬의 용어가 혼용돼 있고 보고 시간이 10분에 불과하다거나, ▲‘20대 국회에서 국회의원 절반 정도가 교체돼 국회 대응에 어려움이 예상되므로 국회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는 보고를 받고 “그룹사까지 확대시켜서 미션을 주라”고 지시한 사실이 있으나 이 지시 내용이 정치자금 기부를 지칭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논리다. 검찰이 황 전 회장을 불기소처분한 사실도 판단의 배경이 됐다.
법원은 상품권깡 사안에서 구현모 전 대표의 KT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는 봤다. 정치자금 기부를 부탁받고 실제 KT의 자금으로 국회의원들에게 정치자금을 기부한 이후에는 불법 정치자금 기부 및 이를 위한 KT의 자금을 횡령하는 위법행위가 CR 부문에서 행해지고 있음을 알았거나 이를 충분히 알 수 있었음에도 고의 또는 과실로 감시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다만 그 책임 범위에 대해서는 국회의원들과 CR 부문직원들이 후원금을 모두 반환했다는 이유로 “KT가 입은 손해는 모두 배상 돼 더 이상 손해가 잔존하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 증선위에 납부한 과징금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구 전 대표의 감시의무 위반과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어렵다”고 했다. 미국 증선위가 해외부패방지법상 기록유지의무 및 내부회계통제규정을 위반의 징표로 삼은 ‘KT의 부적절한 업무집행’에서 구 전 대표의 정치자금법 위반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미국 증선위가 지적한 KT의 부적절한 업무집행은 이석채 전 회장 시절 100만 달러의 비자금을 조성돼 공무원들에게 공여됐음에도 이 위법행위를 인지한 KT의 다른 임원들이 관련 기록을 보관하지 않은 점, 비자금 조성을 위한 상품권 비용을 ‘연구 및 분석’ 또는 ‘유흥’ 명목으로 기록해 부정확한 회계 기록을 남긴 점, 미르·K스포츠재단 등에 160만 달러 이상을 송금했음에도 회계장부에 ‘자선기부금’이나 ‘후원금’ 명목으로 잘못 기록한 점 등이다.
재판부는 “구 전 대표가 정치자금을 송금한 2016년 9월6일 이후에는 불법 정치자금 기부에 관한 감시의무 위반은 인정되나, 미국 증선위가 과징금 및 추징금 부과의 근거로 삼은 KT의 부적절한 업무집행은 2016년 9월경을 기준으로 거의 대부분 이미 종료된 상황이었다”며 “(구현모가)이후에 실행된 일부 행위에 대한 감시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더라도 미국 증선위의 정지명령과 과징금 및 추징금 부과 처분을 피할 수는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판단했다.
소액주주들은 ‘면죄부 판결’ ‘협소한 해석’이라고 주장하며 지난 6일 대법원에서 상고했다.
조태욱 KT노동인권센터 집행위원장은 “‘불법후원을 보고했다’는 진술이 있음에도 피고 황창규가 형사처벌을 면했다. 황창규는 회사자금으로 국회의원 99명에게 부문장급 임원들이 쪼개기로 불법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에 대해 결정적 증거가 없어 형사처벌을 면할 수는 있겠지만 부문장급 임원이 동원돼 전사적으로 집행된 상품권깡 비자금 조성 및 불법정치자금 제공에 대한 감시의무까지 그 책임에서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면서 “미국 증선위 보고서에는 황창규가 대표이사로 재임한 2014년부터 2020년3월말 사이에 발생한 위법행위 사실들이 가장 많이 적시돼 있는데, 이는 황창규가 위법행위 예방을 위한 내부통제시스템이 전혀 구축되지 않았거나 구축돼 있더라도 감시의무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 구현모도 사내이사였음에도 불법정치자금 제공에 직접 가담했고, 따라서 감시의무 이행은 애당초 불가능했다”면서 “구현모가 이사로 재임 시 발생한 부패비리 사건들이 여러 건 포함돼 있음에도 재판부는 피고 구현모의 손해배상책임을 너무 협소하게 해석한 잘못이 있다”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