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제도 이해(3)

금감원, 금융사 퇴직연금 ‘출혈경쟁’ 제동
시장규모 커지며 역마진 감수한 고금리 상품 봇물
은행 등 건전성 악화 우려…상품 감독
한겨레 김수헌 기자기자블로그
? 금융권역별 퇴직연금 적립금 현황




운용 수익률이 연 4%밖에 안 나오는 상품을 팔면서, 연 6~7%의 확정금리를 보장한다?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영업 행태다. 하지만 최근 과열 유치 양상을 빚고 있는 퇴직연금 시장에서는 거의 상식으로 통한다.

금융감독원이 퇴직연금 시장의 ‘고금리 출혈경쟁’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더 이상 손을 놓고 있다가는 개별 금융회사의 건전성 악화뿐 아니라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 금감원 “무분별한 영업, 뿌리 뽑겠다” 금감원은 6일 “퇴직연금 사업자인 53개 은행·보험·증권사에 공문을 보내 원리금 보장형 퇴직연금 상품을 제안할 때는 사내 리스크관리위원회의 사전심사를 받고 심사 내용을 정리한 리스크평가 보고서를 작성해 보관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또 “과도하게 높은 금리를 제시하는 영업이 사라지지 않을 경우 해당 금융회사의 퇴직연금 영업과 리스크관리 실태에 대해 신속한 서면 점검을 하고, 중대한 잘못이 드러나면 강도 높은 현장검사를 통해 무분별한 영업형태를 뿌리 뽑겠다”고 덧붙였다. 황성관 금감원 연금팀장은 “퇴직연금 사업자 간 출혈경쟁은 개별 금융회사의 건전성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어 우선 자제하라는 신호를 준 것”이라고 말했다.

■ 연 7%대 고금리, 금융회사 건전성 ‘흔들’ 지난 2월 말 기준으로 15조원 규모인 퇴직연금 적립금이 올해 말에는 25조원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은행·보험·증권업계가 제살깎기식 고금리 경쟁에 나서고 있다. 최근 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연 3~4% 수준인데, 은행이나 보험은 연 6%대의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내놓고 있고, 특히 후발 주자인 증권사 가운데 연 7~8%대의 고금리를 내세워 고객 유치전에 나서는 곳도 생겨났다. 금융계에서는 올해 연말쯤이면 일부 중소형 증권사나 보험사는 퇴직연금 사업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퇴직연금은 요즘 증권사 사장들한테 골칫거리”라며 “다른 은행과 증권사들이 고금리 퇴직연금 상품을 내놓기 때문에 우리 회사도 비슷한 수준 금리를 제시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쫓아가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이런 고금리 경쟁은 개별 금융회사의 수익성 악화뿐 아니라, 퇴직연금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져 가입자들에게도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 또 퇴직연금에 과다한 금리를 보장하느라 다른 상품에 가입한 소비자들에게 손해가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자사상품 판매 금지 목소리도 금융회사들이 고금리 경쟁을 벌이게 되는 배경에는 제도적인 문제점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신탁재산을 해당 금융사 또는 금융사와 이해관계에 있는 자산에 투자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퇴직연금에 대해서는 예외 조항을 둬, 퇴직연금 사업자로 선정된 은행이 자사 정기예금을, 증권사는 자사 주가연계증권(ELS), 보험사는 자사 원리금보장형 보험 상품을 퇴직연금 상품에 편입할 수 있도록 했다. 김재현 상명대 교수(금융보험학부)는 “퇴직연금 사업자가 자기 상품을 제한 없이 퇴직연금 상품으로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장금리보다 훨씬 높은 금리를 제시할 수 있다”며 “퇴직연금의 재정 건전성을 위해서 자사 상품 편입을 금지하는 조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은행과 증권사의 자사 퇴직연금 상품 판매를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중이지만, 이해관계가 엇갈려 실행에 옮기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김수헌 기자 minerv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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