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노선 미망 못접은 민주노총

<포럼>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지난해 10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극심한 불황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30개 회원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 4.3%로 전망하면서
세계 경제는 50년 만에 최악의 침체에 직면해 있다고 밝혔다.
3월31일 발표된 OECD 전망치는 지금까지 공개된 국제기구 전망치 중 가장 비관적인 것이다.

금융위기가 처음 시작됐을 때는 올해 6월을 기점으로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하더니
올 초에는 연말, 이제는 내년부터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 수출이 수입보다 덜 줄어들어 3월 무역흑자가 월간 기준으로는 사상 최대인 46억달러를 기록했지만,
세계 시장의 급속한 위축은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 경제에 큰 위협 요인이다.

그런데 1일 실시된 민주노총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임성규 신임 위원장은
"투쟁 대상을 민주노총 조합원을 위한 사안으로 한정하지 않고 정치·사회 전반의 문제로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차라리 만우절 농담이었으면 싶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온 국민이 힘을 합쳐도 시원치 않은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투쟁 일변도의 강성으로 선회하겠다는 것은 경제 회복을 더욱 더디게 하고
국민의 고통 기간을 더 길게 한다는 점에서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러잖아도 민주노총은 지금 위기에 봉착해 있다.
현장 조합원들의 의사를 무시한 정치 지향의 강성 노선에 식상한 산하 노조들의 반발이 예사가 아니다.
올해 들어 NCC 등 5개 노조가 민주노총을 탈퇴했고, 민주노총 지침을 어기고 임금 동결이나 삭감을 감수하고
노사협력을 선언하는 산하 노조들이 줄을 잇고 있다.
공공노조를 중심으로 한 ‘제3의 노총’ 설립 움직임도 가시화하고 있다.

도덕성 추락, 투쟁 일변도의 강경 노선, 잦은 정치파업으로 맞은 위기를 자기반성과 개혁을 통해
발전적으로 극복하기보다는 외부 세력과의 연대를 통해 더욱 더 투쟁적·정치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민주노총 새 집행부의 운용 방향은 여간 걱정스럽지 않다.
임성규 새 집행부의 앞길은 그다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전망이다.
소수파인데다 임기가 내년 1월까지인 임시 지도체제적 성격을 가지고 있고
투쟁 일변도의 강성 노선으로는 여론의 지지를 받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석행 전 위원장의 도피중 발생한 성폭력 사건 은폐의 여파로 민주노총 지도부가 2월9일 사퇴했을 때 국민은 조건 없는
경제위기 극복 동참을 선언함으로써 투쟁으로 얼룩진 민주노총 역사의 일대 전환점을 이루는 새로운 집행부 탄생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위상이 흔들리게 된 것은 그동안 약자 편이 아니라 또 다른 권력층으로 인식돼' 왔기 때문이라는 자가
진단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 좌파세력과의 더욱 강화된 사회연대를 통해 민주노총의 위기를 돌파하려는
임 위원장의 방식은 그가 도우려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욱 불리한 결과만을 초래할 것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철폐, 노동계층의 단결을 투쟁 구호로 내세우지만
같은 공장 안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을 위해서는 조금의 희생도 하지 않는,
월급이 조금이라도 깎이는 것이 싫어 공장간 생산 물량 조정에도 쉽사리 합의하지 못하는 대기업 노조들의
자기 혁신을 선도하지 않고는 민주노총의 현 위기는 결코 극복될 수 없다.

민주노총은 조합원들만의 단체가 아니다.
제2의 노총으로서 우리 사회에 대한 책임이 막중하다.
민주노총이 더 이상 소수 강경파에 끌려 다니는 활동가들의 놀이터가 돼서는 안 된다.
민주노총의 발전적 변신을 기대해 본다.

[펌:박영범/한성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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