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미의원의 “날아라 노동”

  <은수미의원은 11월28일 '날아라 노동" 출판 기년 강연회를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개최하였다>

한국은 80퍼센트 내외의 학생들이 대학에 갈 정도로 높은 교육열을 자랑한다. 만 원권이 가득 든 지갑에서 30만 원을 세어 보지도 않고 단 한번에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다름 아닌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엄마일 정도로 사교육 열풍 또한 엄청나다. 하지만 당신이 아이에게 돈과 시간을 집중하는 이유가 아이를 노동자로 만들기 위해서라고 하면 대부분은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흔들거나 심지어 화를 낸다. 삼성, LG, SK, 현대의 사원이 되는 것과 중소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월급이나 평판에서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노동자라는 점에서는 같은데 말이다. ---pp.21-222011년 한 해 동안 10조 이상 이익을 올린 4대 은행을 비롯해 일부 대기업에서 경기 하락을 이유로 명예퇴직을 받기 시작했다. 기업에서는 ‘일상적인 일’이라고 답변한다. 근로기준법 제24조에서 못 박고 있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는 겉치레에 불과하다. 경영에 참여할 권리가 없는 노동자가 경영상의 잘못에 왜 온전히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묻는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권리가 없으면 책임도 없다는 헌법 정신은 지켜진 적이 없다. ---p. 24이처럼 일해야 한다는 의무만 강조되는 이유는 어디 있을까. 기업의 주문만 강조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왜 노동보다 기업 이윤이 우선이고 사람보다 기업이 먼저일까. 재벌가의 탐욕과 치부를 드러내는 드라마를 보면 볼수록 재벌이 되고 싶은 욕망에서 자유롭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일하는 사람과 서민의 이야기가 희망보다는 좌절을 안기는 이유는 어디 있을까. ---p. 27말을 그저 말뿐이라고 생각하는가? 말은 일상적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언어이거나 물리적 힘일 수 있다. 때문에 그 말의 효과에 민감해야 한다. 더불어 노동권에 근거한 말이 한국 사회에 무척 적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쓰는 상당수의 말이 노동을 죽이고 기업만을 살리며, 경쟁과 시장을 강조하고 사회적 책임과 국가의 의무를 방기하는 작용을 할 수 있다. 당신이 무심코 사용하거나 동의하는 그 말 한마디가 당신의 노동권을 죽이고 당신의 일자리를 죽이고 당신의 사회보험을 죽일 수 있다. 기업의 탐욕과 정부의 책임 회피에 면죄부를 주며 국회의 활동을 가로막을 수 있다. ---p. 58물론 노동계에도 귀책사유가 없지 않다. 특히 노동문제를 생존권 문제로 좁혀 온 것은 잘못이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 노동을 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노동권을 생존권의 테두리에만 가두는 것은 중대한 오류다. 노동권을 생존권으로 바라보면 저임금 노동자에게는 “먹고살 만하게 해 줄 테니 노동권을 포기해.”라고 말할 수 있고, 고임금 노동자에게는 “먹고살 만한데, 왜 파업이냐?”라고 말할 수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고소득 노동자의 파업을 비난하는 것은 노동권을 생존권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pp. 64-65노동이라는 말, 노동이라 불리는 특정 활동은 태어날 때부터 비천했다. 그것은 노예의 노동이거나 농노의 노동이었다. 그래서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인간의 조건』에서 노동과 작업을 구분한다. 노예나 육체노동을 하는 자가 하는 일을 노동이라 하고 고대 그리스의 장인이나 수공업자들이 하는 일을 작업이라 부른다. 그랬던 노동의 지위가 근대에 들어와서 바뀐 것은 맞다. 하지만 여전히 태생의 흔적을 감추지 못한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을 ‘노가다(막일)’와 동일시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은가. 노동자로 불리기를 꺼려하거나 노동자임을 숨기려는 것은 한국에서도 오래된 관행이다. ---p.88 비정규직이라 함은 정규직 대비 임금이 60퍼센트 수준이라거나 고용보험 적용률이 40퍼센트에 불과하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1년간 정규직의 평균 실직률이 13.3퍼센트인 반면 비정규직의 실직률은 33.7퍼센트에 달할 정도로 불안정하다는 사실만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비정규직은 삶의 위기와 함께 존재의 위기를 겪으며 살아가는 그 무엇들이다. 정확한 이름조차 없이 ‘정규직이 아니다’라고 지칭되는 사람들이다. ---pp. 199-120과연 기업의 임금 지불 능력은 고정되어 있을까? 그렇지 않다. 상품이 임금과 이윤, 그리고 땅값과 같은 지대로 구성되어 있다면 각각의 분배 비율을 바꾸는 것은 노사관계의 힘이다. 노사관계에서 노동자가 약하면 당연히 이윤이나 지대의 몫이 커지기 마련이고 그 반대이면 임금 몫이 커진다. 노사관계의 힘이 약할 경우 재벌이나 대기업은 천문학적인 숫자의 이윤을 빨아들이고 그것을 지배적인 주주들에게 우선적으로 배분하며 임금은 가장 뒤로 돌려진다. 따라서 기업의 임금 지불 능력이 마치 고정된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영리한 사기일 가능성이 크다. ---pp.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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