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 KT 자문역 맡은 구현모 전 대표 “횡령 혐의 인정 못해”

KT 자문역 맡은 구현모 전 대표 “횡령 혐의 인정 못해”

  • 김용수 기자(yong0131@sisajournal-e.com)
  • 승인 2023.05.12 18:08

변호인단, ‘쪼개기후원’ 관련 공판서 부당함 주장
재판부, 다음달 23일 최종변론기일 후 선고기일 지정
구현모 KT 대표이사 사장 / 사진 = 김용수 기자
구현모 KT 대표이사 사장 / 사진 = 김용수 기자

[시사저널e=김용수 기자] 구현모 전 KT 대표가 대표직 사퇴 후 현재까지도 경영자문역을 맡은 사실이 ‘쪼개기 후원’ 관련 재판 진술 과정에서 드러났다. 지난 3월말 사퇴 의사를 밝힌 뒤 상법에 따라 KT의 대표이사(CEO)직과 사내이사직을 맡은 데 이어 자문역을 맡으며 회사로부터 보수를 받고 있는 것이다.

12일 공판기일에서 구 전 대표 측은 프리젠테이션(PT)을 통해 “회사의 이익을 위한 정치자금 후원을 했을 뿐”이라고 진술했다. 반면 증인으로 출석한 맹수호 전 KT CR부문장 사장은 국회의원 ‘쪼개기 후원’ 과정을 구 대표 등과 협의했다고 증언했다.

이날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구 전 대표 등 KT 전·현직 임원의 ‘업무상 횡령’ 혐의 관련 1심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재판부는 본격 심리에 앞서 재판부 변경에 따른 피고인에 대한 신분 갱신 절차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구 전 대표는 재판부가 현재 직업을 묻자 “KT의 자문역을 맡고 있다”고 답했다. 지난 3월말 대표이사직 사퇴 의사를 밝힌 뒤 KT의 경영자문역으로 근무하고 있단 것이다.

그는 현재 법률 또는 정관에 정한 이사의 원수(의결 정족수·3명)를 결한 경우 임기 만료 또는 사임으로 인해 퇴임한 이사는 새로 선임된 이사가 취임할 때까지 이사의 권리의무가 있다’고 규정한 상법 제386조에 따라 KT의 대표이사직과 사내이사직도 유지하고 있다.

◇ 쪼개기 후원 실행 CR부문장 “구현모·김인회 등에 보고·협의”

이날 재판은 검사 측 증인으로 출석한 맹 전 KT 사장에 대한 증인 신문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맹 전 사장은 2015년 12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KT의 대관 담당 부서장으로 근무했다.

재판은 KT 법인과 전·현직 임원이 2014년 5월~2017년 10월 국회의원을 불법 후원한 혐의를 가리기 위한 것이다. KT는 상품권을 매입한 뒤 되팔아 현금화하는 ‘상품권 깡’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국회의원을 불법 후원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에 따르면 당시 비자금 규모는 11억5000만원으로 이중 4억3790만원이 19·20대 여야 국회의원 99명에게 제공된다.

구 전 대표는 당시 황창규 전 KT 회장의 비서실장과 경영지원총괄로 근무하며 대관 담당 임원에게 자금을 받아 자신의 명의로 국회의원 13명을 후원한 혐의를 받는다. 이 과정에서 박종욱 현 대행(사장)과 강국현 현 KT 커스터머부문장(사장), 김영술 현 KT 국회대관담당 상무도 자신의 명의로 각각 국회의원 10여명을 후원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 4인은 지난해초 벌금형의 약식명령을 받았지만 이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하면서 심리가 진행중이다.

맹 전 사장은 2016년 5월경 ‘20대 국회 대응 방향’이란 제목의 문건을 작성, 같은 해 8월경 황 전 회장과 구 대표, 김인회 전 KT 비서실장 등에 국회의원 후원 계획을 보고한 바 있다고 진술했다. 당시 CR부문의 후원 예산이 부족한 탓에 구 대표 등이 참석한 임원 간담회에서 다른 부문 임원들의 명의를 빌려 후원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마련하겠단 것을 논의했단 주장이다.

맹 전 사장은 “당시 국회의원 32명을 A, B, C 등급으로 나눠서 이 중 30명을 후원했다. 구현모 당시 총괄에게 (부문장급 명의를 빌려 송금하는 것을) 말했고, 김인회 당시 비서실장에게도 분명 얘기했다”며 “이들은 ‘네 그렇게 하시죠’라고 했다”고 말했다.

◇ 구 전 대표 측, PT 통해 “후원, 회사 위한 것···공범 아냐” 주장

구 전 대표 측은 증인 신문과 별개로 진행된 PT에서 ‘불법영득의사’가 없었다며 업무상 횡령 혐의는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오로지 회사의 이익을 위해 정치자금 후원을 진행한 것이기 때문에 불법영득의사는 인정할 수 없단 것이다.

구 전 대표의 변호인은 “맹 전 사장 등 CR부문 주요임원들은 자체적으로 정치자금 기부 계획을 수립 후 자금을 조성하는 등 과정을 주도했다”며 “반면 피고인은 이 단계까지 관여한 바 없다. 조성된 현금 일부를 전달 받은 뒤 송금하는 일을 도와준 것에 불과하다. 불법영득의사란 것 자체가 없고 공범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피고인들은 회사를 위해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따른 데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불법영득의사를 의제할 경우 업무상 횡령 혐의 기수 시기는 정치자금 기부 목적으로 부외자금을 조성했을 때다. 기수 이후 송금한 피고인들을 공동정범으로 보는 것은 부당하다”며 “정치자금 기부목적으로 상품권 깡 할인을 통해 자금 조성 시 이미 기수에 이르렀단 게 주의적 주장이다. 피고인의 개입은 기수 이후라서 시간적 선후에 따라 보더라도 공범 성립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재판부는 구 전 대표 측의 요청에 따라 다음달 23일 한 차례 공판기일을 속행하고, 김인회 전 KT 비서실장 사장에 대한 증인 신문을 진행할 예정이다. 또 이날 기일에서 선고기일을 지정한다.

한편 현재 구 전 대표 등은 정치자금법 위반죄와 다른 죄를 분리 선고하도록 한 공직선거법 규정에 따라, 같은 범죄사실에 대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관련 재판도 받고 있다. 해당 혐의 관련 다음 공판기일은 당초 지난 3월로 예정됐지만, 구 전 대표 측의 거듭된 연기 신청으로 오는 17일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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