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경립, 구현모(윗줄 좌,우), 이석채, 황창규(아랫줄 좌,우) 
 * 윤경립, 구현모(윗줄 좌,우), 이석채, 황창규(아랫줄 좌,우) 

KT의 사내인재 마켓시스템이 논란이 되고 있다. 도입 10여년을 넘기면서 초기 기대했던 순기능보다는 줄대기 등 병폐가 잇따르면서 경쟁사 대비 실적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제도는 직원 개인이 하고 싶은 업무를 선택할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업무에 자발적으로 몰입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나아가 직원의 전문적인 업무 소질과 역량에 따른 공정한 인사 배치 시스템을 운용하겠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석채 KT 전 회장이 재임하던 2010년, 이 전 회장이 민영화 이후 어수선한 KT의 조직 문화를 다잡기 위해 외부 전문 컨설팅업체의 도움을 받아 전격 도입한 것이다.

세계적 경영전략가로 손꼽히는 게리 하멜(Gary Hamel) 교수팀이 당시 컨설팅을 이끌었다. 그는 ‘경영의 미래’, ‘미래를 위한 경쟁’, ‘꿀벌과 게릴라’ 등 저서를 통해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21세기에는 경쟁의 룰을 바꾸는 혁명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창의력만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등 혁신 전도사로 유명세를 탔다.

이른바 ‘좋은 일터 만들기'(Great Work Place:GWP)로 진행된 사내인재 마켓 시스템은 컨설팅팀이 제안하고, KT가 시행하기 시작한 당시 파격적 인사제도로 평가됐다. 이는 일종의 ‘인사 풀(pool)제도와 유사하다.

신입 1년차 등으로 구성된 이른바 청년이사회인 올레 보드(olleh board) 등 임원과 현장 사원간 소통의 장 추진 ▲온라인 익명 게시판 등을 통한 열린토론방 ▲근무지나 근무시간을 개인이 자유롭게 스스로 정할 수 있도록 하는 스마트워킹제도 ▲법정 기준의 두배까지 휴직 기간을 늘린 육아지원 프로그램 등도 사내인재 마켓시스템과 함께 도입됐다.

원하는 ‘업무’ 보다는 마음에 드는 ‘윗사람’ 고르기로 제도 변질

21일 KT 전·현직 직원들에 따르면, 10여년전 도입된 사내인재마켓시스템이 최근 KT의 이른바 패거리문화를 양산하고 있다. 직원들이 자신이 원하는 ‘업무’를 고르는 게 아니라 마음에 드는 ‘윗사람’을 선택하는 데 이 제도가 활용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따라 거의 대부분의 직원들이 ‘라인’잡기에 여념이 없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실제 본인을 윤경림 계열이라고 밝힌 A팀장은 지난달 말 CEO 후보에 올랐다 주총 직전 윤 사장이 CEO후보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힌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팀장에서 팀원으로 강등당했다고 전했다. A 전 팀장은 윤사장이 CEO후보에 오르자 주변으로부터 기획팀이나 비서실 등 요직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인사를 자주 건네 받기도 했다.

KT의 또다른 현직 B 팀장은 “CEO 인선이 늦어지면서 그룹 전반의 인사가 사실상 올스톱 상태”라며 “사내인재 마켓시스템이 자신에게 적합한 직무를 찾는 것이 아니라, 정년 때까지 자신을 지켜줄 상급자, 곧 줄(line)을 고르는데 활용되고 있는 면이 있다”고 토로했다.

특히 경력직으로 KT에 입사한 C 팀원은 “예전 같으면 일부 부·팀장들이 소위 잘나가는 임원을 중심으로 줄서기를 했다면, 지금은 입사 초년병부터 잘 나갈만한 부·팀장을 향해 줄대기에 여념이 없다”고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제도 도입 당시 기대했던 직원의 전문성 개발은 고사하고, 거꾸로 직원들을 사내 정치에 끌여들이는 등 직원들을 더욱 더 무능하게 만들고 있다는 한탄이다.

일각에서는 KT의 줄대기 문화 병폐가 인사제도 탓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오히려 CEO의 리더십 부재가 직접적 원인이라며, 여기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정년을 5여년 남겨 둔 D직원은 “전임 구현모 사장의 경우, 한마디로 리더십이 부족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리더십이 결핍된 구 전 사장이 KT의 이같은 인사 병폐를 만든 장본인이라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 회사를 그만둔 전직 KT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조직 내부에 능력있는 인재가 새로운 CEO가 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들이 상대적으로 외부 정치적 협상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있어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지 못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석채, 황창규 등과 같은 굵직한 외부 인사가 차라리 새로운 CEO로 영입돼 어수선한 조직을 추스르는 게  일련의 내부 문제들을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차선의 방안이 될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