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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국내 이동통신 3사들이 ‘탈(脫)통신’을 외친 것과 달리, 매출 대비 연구개발(R&D)비 비중은 최저 0%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3사 독점 구도인 통신사업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새 먹거리로 수익을 창출하겠다고 했지만, 말로만 탈통신을 공언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통신사들은 업종 특성상 망 구축 등을 위한 설비투자비(CAPEX)와 마케팅에 큰 비용이 쏠려있어 나타나는 일종의 ‘착시효과’라고 설명한다. 벌어들이는 수익에서 CAPEX 집행 비중을 보면 20~30%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기존 통신업을 유지하기 위한 투자로, 탈통신의 연장선상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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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통신 외친지 10년 넘었는데…R&D 투자 ‘뒷걸음질’
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KT는 올해 1분기 R&D 비용으로 511억원을 지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분기(575억원)보다 11.13% 감소했다. 같은 기간 매출 대비 R&D 비중은 0.67%로, 전년보다 0.02%포인트 하락했다.
KT의 매출 대비 R&D 비중은 2014년 2.57%를 정점으로 지난해까지 6년 연속 감소하고 있다. 2015년 1.25%로, 전년 대비 반 토막 난 데 이어 2017년 0.72%로 주저앉았다. 이후 지속해서 0%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현 추세라면 올해 역시 감소세를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SK텔레콤도 마찬가지다. 올해 1분기 R&D에 1033억원을 지출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1119억원) 대비 7.68% 줄어든 것이다.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은 2.52%에서 2.16%로, 0.36%포인트 감소했다.
SK텔레콤의 경우 최근 10년 동안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은 2% 안팎을 유지 중이다. 2011년(1.85%)과 2015년(1.88%)을 제외하고는 2% 초반의 비중에서 등락을 거듭했다. 2011년을 기점으로 3년은 비중을 늘린 후 다음 해에 줄이고 다시 3년은 확대하는 추세를 나타냈다.
LG유플러스의 매출 대비 R&D 비중은 줄곧 ‘0%대’로 나타났다. 올해 1분기 0.42%로 전년(0.40%)보다 소폭 올랐다. 1분기 기준 금액으로는 189억원이다. 연간 기준으로 보면 매출 대비 R&D 비중이 1% 문턱을 넘은 적이 없다. 최근 10년 동안 가장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은 높았던 것은 2012년 0.7%다. 이후 0.4~0.6% 수준에 그치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4년 연속 0.4%대다.
통신사들은 10년 전부터 ‘탈통신’을 외치며 새 먹거리 창출을 공언해왔다. KT는 정보기술(IT) 서비스 기반의 ‘S.M.ART’, SK텔레콤은 ‘산업 생산성 증대(IPE)’을 내세웠다. 국내 통신 3사 중 매출 대비 가장 적은 R&D 비중을 보인 LG유플러스는 통신업의 상징인 ‘텔레콤’을 사명에서 지워버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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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신업계 ”설비투자, 고려해야 착시효과”…설비투자액은 통신업 투자
국내 통신사들은 “망 사업자다 보니 설비 투자를 비롯, 마케팅 비용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R&D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어 보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 국내 통신업계가 쏟아붓는 설비투자비(CAPEX)는 연간 7조~8조원 수준이다. 지난해 역시 국내 통신 3사는 이 같은 규모의 설비투자를 단행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처럼 CAPEX에 투입된 비용이 사실상 R&D 비용과 다를 바 없다는 주장도 통신업계에서 나온다. 국내 통신업계 1위 SK텔레콤의 지난해 매출(11조7466억원)을 고려하면 CAPEX 비중은 약 20%에 해당한다. 이는 국내 주요 정보기술(IT) 업체로 꼽히는 네이버의 지난해 기준 매출 대비 R&D 비중(25%)과 맞먹는 수준이다. 다만 절대적 금액만 놓고 보면 SK텔레콤은 4000억원대 수준으로, 1조원이 넘는 네이버와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LG유플러스와는 10배 이상 격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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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3년 동안의 통신사 CAPEX 규모를 보면 줄거나 유지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SK텔레콤와 KT는 올해 CAPEX 가이던스(목표치)를 지난해 수준으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SK텔레콤은 2조2053억원, KT는 2조8700억원을 지출한 바 있다. 이는 2019년과 비교해 각각 24.48%, 11.88% 감소한 것으로 모두 두 자릿수나 빠졌다. 이에 따라 올해 전년 기조를 유지한다는 것은 사실상 규모를 늘리지는 않겠다는 계획으로 풀이된다. LG유플러스 역시 올해 CAPEX 가이던스로 2조2000억원을 제시했는데, 지난해 제시한 2조5000억원과 비교해 12% 줄었다.
통신사들은 5세대 이동통신(5G) 세계 최초 상용화 첫해였던 2019년 네트워크 집중 투자에 따른 기저효과를 CAPEX 감소의 주원인으로 꼽았다. 5G 초기였던 만큼 설비 투자 비용이 들었기 때문에 2020년 CAPEX가 줄어든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통신사들이 외친 탈통신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국내 통신사 한 관계자는 “최근에는 외부 기업에 대한 지분 투자 등 협업도 많아지고 있는 추세로, 이 같은 형태도 일종의 R&D 투자로 볼 수 있다”면서도 “통상의 제조업과 달리 신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매출 대비 R&D 비중은 적어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