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티(KT) 황창규 전 회장 재임(2014년 1월~2020년 3월) 시절 회삿돈으로 상품권을 사서 되팔아 조성한 현금을 임직원 이름으로 다수의 여야 국회의원에게 수백만원씩 후원금을 나눠 준 사건(이하 ‘쪼개기 후원’)에 대한 검찰 수사가 최근 재개됐다. 수사 결과에 따라 구현모 대표이사(사장)의 거취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7일 검찰과 케이티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는 지난 6일 쪼개기 후원(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과 관련해 케이티 김아무개 상무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했다. 검찰 관계자는 “(같은 팀에 배당됐던)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와 옵티머스 펀드 사기 사건 등이 정리되면서 케이티 건을 들여다보게 됐다. 공소시효는 충분히 남아 있다”며 “김 상무 조사 내용은 언급할 수 없다”고 밝혔다.앞서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2018년 케이티 전직 임원 제보를 토대로 케이티 회장 비서실 등을 압수수색하고 황 전 회장 등 관련 임직원들을 소환 조사한 뒤 기소 의견(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검찰에 넘겼다. 당시 경찰 수사에 따르면, 황 전 회장 등은 2014년 5월부터 3년여 동안 회삿돈으로 상품권을 샀다가 파는 방식으로 현금 11억여원을 만들었다. 이 중 4억3천여만원은 여야 국회의원과 총선 출마자 등 99명에게 수백만원씩 후원금 명목으로 흘러갔다. 다수의 임직원 명의로 후원금을 보낸 터라 ‘쪼개기 후원’이란 지적을 받았다.특히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이 사건을 조사 중인 것도 중요한 변수다. 미국 증시에 주식예탁증서(DR)를 상장한 케이티가 기업 가치에 영향을 주는 쪼개기 후원으로 수사 대상에 오른 사실을 제때 공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상장기업의 해외 불법행위를 처벌하는 ‘해외부패방지법’(FCPA) 위반 혐의도 미 증권거래위는 들여다보고 있다. 조사 결과에 따라선 상당한 금액의 과징금을 물어야 할 수 있다.
케이티는 지난달 19일 공시한 ‘2020회계연도 사업보고서’에 미 증권거래위 조사 사실을 공개하며 “조사에 협조하고 있다. 현시점에서 조사 결과(잠재적으로 결과가 나올 시기나 조건, 최종 비용, 개선 조치, 지불해야 할 돈, 다른 민형사상의 책임 포함)가 어떨지는 알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한 케이티 전직 임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검찰이 불기소 처분했는데 미국이 과징금 부과를 결정하면 검찰은 ‘케이티 봐주기’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또 검찰이 기소하면 미국은 반드시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케이티가 사실상 외통수에 걸려들었다는 뜻이다.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케이티 경영진은 후폭풍에 휘말릴 공산이 크다. 쪼개기 후원이 이뤄지던 시기 구현모 대표가 황 전 회장의 비서실장과 경영기획부문장을 지낸 탓이다. 구 대표가 지난해 초 취임 이후 검찰 출신을 영입하는 등 법무실 강화에 나선 배경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지난해 2월 케이티 이사회는 구 대표를 최종 후보로 선정한 뒤 “임기 중 법령이나 정관을 위반한 중대 과실이나 부정행위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이사회의 사임 요청을 받아들인다는 조건을 달았다”고 밝힌 바 있다. 구 대표가 쪼개기 후원 혐의로 형사처벌될 경우 이사회 사임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는 취지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이정우 케이티 상무(홍보담당)는 <한겨레>에 “(이사회와 구 대표가 맺은 경영계약서에 담긴 해당 조항은) 대표 재직 전에 발생한 사안에 대해선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