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다 1% 탓?…20%의 ‘위선’을 벗기다

[책과 삶]다 1% 탓?…20%의 ‘위선’을 벗기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20 VS 80의 사회
리처드 리브스 지음·김승진 옮김
민음사 | 272쪽 | 1만7000원

<20 VS 80의 사회> 영문판 책의 표지. 원제는 ‘DREAM HOARDERS’였다. ‘꿈의 사재기꾼들’ 정도의 의미로 미국 사회 20%인 중상류층이 대입·부동산·인턴제도 등을 중심으로 ‘기회 사재기(Opportunity Hoarding)’를 통해 불평등을 대물림하고 있다는 비판을 담았다. 표지 속 거꾸로 뒤집힌 집은 주택공급 제한으로 만든 ‘좋은 동네’에 ‘좋은 학교’들이 자리 잡게 하고, 그 결과 집값은 더 올라 저소득층 진입을 제한하는 왜곡된 현실을 상징한다.

<20 VS 80의 사회> 영문판 책의 표지. 원제는 ‘DREAM HOARDERS’였다. ‘꿈의 사재기꾼들’ 정도의 의미로 미국 사회 20%인 중상류층이 대입·부동산·인턴제도 등을 중심으로 ‘기회 사재기(Opportunity Hoarding)’를 통해 불평등을 대물림하고 있다는 비판을 담았다. 표지 속 거꾸로 뒤집힌 집은 주택공급 제한으로 만든 ‘좋은 동네’에 ‘좋은 학교’들이 자리 잡게 하고, 그 결과 집값은 더 올라 저소득층 진입을 제한하는 왜곡된 현실을 상징한다.

“아메리칸 드림은 살아있지만
우리가 그 꿈을 사재기하고 있다”

1%와 99%의 대결 구도 내세운
기존의 불평등 프레임 벗어나
중상류층의 ‘특권적 위치’ 비판

상위 20%, 최상류층 ‘들락날락’
불평등 단층선 ‘20’에서 그어져
최전선은 교육이라는 성벽
부와 권력은 그 안에서 대물림

부동산 투기·입시 부정…
‘스카이 캐슬’이 꼬집었듯이
한국 사회의 현실도 판박이다

“‘1 대 99’가 아니라 ‘20 대 80’이 문제다.”

국가 경제는 늘 조금이라도 성장하는데 왜 사는 건 점점 더 어려워질까. 정권마다 ‘일자리 창출’과 ‘양극화 해소’를 외치는데 왜 부는 점점 더 편중되는 것일까. 정말 상위 ‘1%’의 탐욕과 독식이 원인일까.

<20 VS 80의 사회>에서 저자는 단호히 ‘아니’라고 한다. 단순히 슈퍼리치 1%만이 아닌 우리 사회 빈부의 불평등선을 가르는 주체는 상위 20%라고 말한다. 말 그대로 ‘1% 대 99%’의 대결구도가 아닌 상위 20%의 ‘중상류층’을 중심으로 불평등 문제를 살펴본 책이다. 미국 사회의 이야기인데도 책을 읽다보면 TV 드라마 <스카이캐슬>부터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논란까지 한국 사회의 현실이 겹쳐진다.

이 책은 2015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추진한 ‘529 대학 저축 플랜’ 개혁이 실패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리처드 리브스

리처드 리브스

부유층 가구가 주로 혜택을 입은 이 제도는 자녀의 대학 학비 용도로 돈을 붓는 장기저축 상품이다. 개혁안은 저축 플랜의 세제 혜택을 없애고, 그 재원을 공정한 세액공제 시스템을 확충하는 데 쓰는 합리적 내용이었다. 개혁안은 미국 민주당 유력 정치인들의 반발로 무산됐는데, 그들 지역구는 부유하고 교육 수준이 높으며 진보성향 계층이 주로 사는 곳이었다.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부유하고, 당락을 좌우할 만큼 숫자도 많은” 소득 상위 20%의 중상류층이 개혁을 무산시킨 것이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등 불평등 담론은 흔히 상위 1%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나머지 99%는 모두 비슷하게 불행한 처지로 여겨진다.

하지만 저자는 20%의 중상류층은 다수 대중과 같은 배를 타지 않았다고, 실제로는 상당히 유리하고 특권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를테면 1979년에서 2013년 사이 미국 상위 20% 가구 소득 총합은 4조달러 늘었는데, 하위 80%는 3조달러 정도 늘었다. 4조달러 중 3분의 1을 상위 1%가 가져가긴 했다. 그렇긴 해도 바로 아래의 19%가 가져간 소득 증가분도 2조7000억달러에 달한다. 상위 20%도 최상류층을 공격하는 데 목소리를 높이지만, 실제로는 이들 계급을 경계로 불평등의 단층선이 그어져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20%가 자신들 아래 80%와 격차를 벌리면서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위선’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적 주장이다.

1%와 20%는 분리된 존재도 아니다. 최상류층은 상위 20%가 ‘들락날락하는 집단’이라는 것이다. 미국 통계조사에서 연소득 25만달러 이상 가구는 매년 인구의 2% 언저리였는데, 살면서 이 급간에 1년이라도 속한 사람이 인구의 20%나 되며, 이러한 ‘일시적 최상류층’ 대부분은 평생 20% 속에 머문다는 것이다. 저자는 “상위 1%는 ‘그들’이 아니라 ‘우리들’ 중 잘나가는 시기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한다. 마크 저커버그(하버드대, 의사 부모) 같은 신흥사업가들의 배경만 떠올려도 어느 정도 수긍가는 얘기다.

한국에서도 부동산은 <20 VS 80의 사회>가 지적하는 것처럼 ‘기회 사재기’ 수단이다. 지난해 말 기준 중간소득 가구가 서울 상위 20%에 해당하는 강남권 아파트를 사려면 한 푼도 쓰지 않고 33.3년을 모아야 한다. 부동산이 계층 이동을 막는 진입장벽이 된 것이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강남의 아파트단지.<br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한국에서도 부동산은 <20 VS 80의 사회>가 지적하는 것처럼 ‘기회 사재기’ 수단이다. 지난해 말 기준 중간소득 가구가 서울 상위 20%에 해당하는 강남권 아파트를 사려면 한 푼도 쓰지 않고 33.3년을 모아야 한다. 부동산이 계층 이동을 막는 진입장벽이 된 것이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강남의 아파트단지.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상위 20%가 그어놓은 불평등의 최전선은 ‘교육’이다. 저자는 중상류층 자녀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진출하는 25살까지 교육을 중심으로 기득권을 지키는 성벽이 높아진다고 진단한다.

중상류층의 고소득은 고학력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상위 20%는 준비된 자녀 계획으로 시작해 육아와 학교부터 구별된 길을 가게 된다. 수천달러의 교육컨설팅을 거쳐 명문대에 입학하고, 소득 수준이 비슷한 배우자를 만나 ‘동류 짝짓기’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가구 간 소득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실제 통계로도 확인된다. 자산 상위 20% 가구에서 태어난 아이 중 절반(44%)은 성인이 돼서도 상위 20%에 속하며, 학력의 경우도 부모 학력 상위 20% 가구에서 태어난 아이의 절반(46%)이 그와 비슷한 학력을 갖는다.

저자는 기회의 불평등에 대해 다음과 같은 언급을 인용한다. “운동장은 평평한지 몰라도, 어떤 아이들은 밤과 주말에 미리 연습해 경기에 대비한다… 능력의 피라미드는 부와 문화 자본의 피라미드를 반영하게 되었다.” 그들은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자기가 3루타를 친 줄 안다”.

중상류층이 누리는 지위는 ‘기회의 사재기’를 통해서도 얻어진다. 책에서 강조하는 이 개념은 중상류층이 수단을 가리지 않고 교육, 대입, 인턴과 고소득 일자리 등 성공의 기회를 독차지한 채 자녀들에게 사회적 지위를 대물림한다는 것이다.

기회의 사재기는 크게 대학 입학, 부동산, 인턴 제도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작가는 주택 공급을 제한하는 ‘배타적인 토지 용도 규제’가 중상류층이 그들만의 주거지를 유지하도록 해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지적한다. ‘좋은’ 동네에는 역시 좋은 학교들이 자리 잡고, 그 동네 집값은 더욱 오른다. 가난한 사람들의 진입 가능성이 더욱 낮아지고, 다른 계층과의 사회적 분리로도 이어진다. “비싼 집값을 통해 자녀에게 좋은 학교에 다닐 기회”를 사주는 것이다.

불공정한 대학 입학 제도도 중상류층이 누리는 특혜다. 동문 자녀 우대가 대표적이다. 예컨대 프린스턴대의 경우 동문 자녀면 미국 수능 SAT에서 총점의 10%를 더 얻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에서도 부모의 배경이나 직업, 인맥이 다양한 경로로 대입 수시전형에 영향을 미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수능 점수도 높다는 상관관계는 이미 알려졌다. 중상류층 자녀들은 정시로나 수시로나 앞서가는 셈이다.

중상류층 자녀가 직장인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도 기회 사재기는 작동된다. 바로 인턴이다.

중상류층 자녀들은 자라면서부터 ‘수준 있는’ 일자리들을 보고 듣게 되고, 좋은 인턴 자리를 얻는 데는 인맥이나 배경이 작용한다. 진보적이었던 오바마 시절 백악관에서도 명문대 출신, 상류층의 아들·딸들이 인턴으로 일했고, 진보적 성향이었던 마이클 블룸버그와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도 그들 자녀를 뉴욕시 인턴으로 들이기 위해 ‘이해관계 충돌 심사위원회’가 ‘특별 면제’를 내려줬다. 애초 공공기관이나 국제기구 무급 인턴은 가정이 넉넉하지 않으면 도전조차 어렵다.

[책과 삶]다 1% 탓?…20%의 ‘위선’을 벗기다

저자는 책에서 “아메리칸 드림은 죽지 않았다. 살아있지만 중상류층인 우리가 그 꿈을 사재기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개천에서 용이 날 수는 있다. 그런데 개천물이 말라가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20 대 80 현상은 한국 사회에서도 비슷하다. 오피니언 리더를 자처하는 지식인과 사회 지도층이 재벌과 부자들을 앞다퉈 비판하지만, 말과는 달리 자신들 이익을 챙기고 자녀들에게 특권을 물려주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입시 부정 등으로 모습을 바꿀 뿐이다.

책에선 미국 연간 가구 소득 11만2000달러 이상을 상위 20% 선으로 제시한다. 지난해 한국장학재단의 소득분위 자료에선 9분위의 월소득 인정액 하한선이 약 904만원이었고, 10분위는 약 1356만원이었다. 가구 연소득으로 1억원 언저리면 상위 20%인 셈이다.

‘범강남’이나 ‘마용성’에 사는, 상위권 대학을 졸업한 전문직이나 고소득 직장인들을 떠올려볼 수 있겠다.

20%가 불평등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당사자들로선 쉽게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대학 입시에서 자녀들을 조금 밀어주는 것, 인턴 자리를 잡아 전문직의 세계를 맛보게 돕는 것, 주택 밀도를 낮게 유지하겠다고 말하는 후보에게 투표하는 식의 사소한 일들이 모여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책의 저자 리처드 리브스는 영국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브루킹스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며, 워싱턴 인근의 부유한 동네에 산다. 역시 20%에 속하는 저자는 ‘우리가’ 이기심을 희생해야 하고, 비난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책에선 미국 상황에 맞춘 제언들을 하면서 중상류층의 ‘각성’을 촉구한다. 더 나은 사회로의 변화를 위해선 “꿈을 사재기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제안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8302046015&code=960205#csidx3f3841f0d80a261bda0fed329639999




언론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