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소리] “회사의 철저한 보복…KT에는 민주주의가 없습니다”

 

“KT에는 민주주의가 없습니다”

6년 전 KT 노동조합 위원장 선거로 나섰던 임현재(53)씨의 말이다. 임 씨에 따르면 KT에서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불리는 노동조합 선거, 직원들의 투표가 철저하게 회사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조금이라도 상식적인 민주주의를 요구하면 회사는 끝까지 보복해 재기불능을 만들었다. 임 씨는 최근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KT는 변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KT(자료사진)
KT(자료사진)ⓒ제공 : 뉴시스

후보선정부터 선거운동·투표·개표까지 손에 쥐고 흔드는 KT,
“노동조합은 회사의 적극적인 조력자”

지난 2009년 KT는 KTF를 합병했다. 점차 커지는 무선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13년 전 분리했던 KTF를 다시 불러들인 것이다. 임현재씨는 합병 당시 KTF 노동조합 위원장이었다. 회사가 합병되면서 노동조합도 통합됐고 이 과정에서 임 씨는 KT 노동조합 부위원장이 됐다. 민주노조인 KTF에서 활동했던 임 씨에게 KT 노동조합은 매우 이상한 곳이었다. 임 씨는 “당시에도 KT 노동조합이 어용노조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 내부에 들어가 보니 정말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직원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가는 정리해고, 명예퇴직, 직군통합변경 등을 노동조합이 “회사가 하는 일”이라며 앞장섰다. 그사이 5천여 명이 명예퇴직을 당했고 무기계약 형태의 새로운 직군이 만들어졌다. KT의 민주노총 탈퇴도 이즈음이었다. 직원의 피해를 보호하고 대변해야 할 노동조합은 회사의 적극적인 조력자였다.

백미는 노동조합 선거였다. 노조를 대표하는 위원장을 회사가 선정했다. 선거철이 되면 ‘회사에서 아무개를 위원장으로 공천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돌았다. 임 씨는 한 노조 간부에게 “회사가 임 부위원장을 공천했다고 들었다. 축하한다”는 인사를 받아 황당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2011년 10월경, 위원장 선거가 다가오자 당시 김구연 위원장이 노동조합 핵심간부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차기 위원장에 당시 부산본부위원장이었던 정윤모(현 위원장)를 선정하고 “잘 도와서 선거를 치르라”고 지시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정윤모 위원장 후보는 당시 각종 불법과 편법을 저질렀다. 자기 유리한 대로 선거 규칙을 바꾸고 상대 후보를 돈으로 매수했다. 후보로 출마했던 임 씨는 온갖 불법이 판치는 선거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거부했다. 정윤모는 위원장에 당선됐고 길고 긴 회사의 ‘보복’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펜치 한 번 안 잡아본 신사업 개발 팀원을 AS 기사로,
할 말 하는 직원들의 유배지 CFT까지, “철저한 보복”

2011년 말, 부정선거가 끝나고 임현재 씨는 노동조합을 떠나 현업으로 복귀했다. 회사는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그가 돌아간 부서에서는 ‘직장 내 왕따’를 당했다. 발령은 받았지만, 업무가 없었다. 누구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밥도 같이 먹지 않았다.

노동조합 간부를 하기 전, 임씨는 ‘무선 신사업 개발부서’ 소속이었다. 당시만 해도 신기술인 ‘지능형·통신형 네비게이션’ 서비스를 구축했다. 하지만 회사는 ‘직장 내 왕따’ 1개월을 거치게 한 뒤, 그를 영업부로 발령 냈다. 휴대폰, 인터넷을 판매하는 부서였다. 한 달 동안 업무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회사는 한 달 뒤 또 발령을 냈다. 이번엔 AS 부서였다. 참다못한 임씨가 관리자에게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이냐”고 항의했지만, 관리자는 “아시지 않느냐”고만 말했다. “아시지 않느냐”는 관리자의 말 속에는 ‘회사의 지시가 있어서 나도 어쩔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관리자는 ‘고객 불만이 많아지면, 인사 조처를 감수하겠다’는 각서도 요구했다. 새로 온 임 씨에게 AS 업무를 가르쳐주지 않았고 다른 직원들에게는 “돕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KT 보복의 전형적 수법”이 시작된 것이었다.

“인터넷, TV가 되지 않는다”는 고객들의 고장신고가 접수되면 그가 현장에 나가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때로는 전봇대에 올라가 장비를 수리하고 내려와야 한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임 씨는 “펜치 한 번 잡아본 적 없었는데, 눈앞이 캄캄했다”고 회상했다.

그때 그를 도와준 건 관리자의 눈을 피해 몰래몰래 자신을 도와준 동료들이었다.

“KT에 좋은 사람들 정말 많습니다. 현장에 나가면 동료들한테 전화가 와요. ‘잘 돼 가고 있냐’고. 쉬운 건, 전화로 가르쳐 주고, 어려운 일은 자기 하던 일 멈추고 와서 대신 고쳐주고 가고는 했죠. 그분들 없었으면 전 벌써 해고됐을 겁니다”

KT(자료사진)
KT(자료사진)ⓒ제공 : 뉴시스

그렇게 AS 부서에서 2년 동안 근무했다. 일도 익숙해져 “전봇대 위에서 담배 한 대 피울 수 있게” 됐고 당시 부장급 직원이었던 그가 “아마 전국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AS 기사일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여유도 찾았다.

회사의 보복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4년 임씨가 근무하던 AS 업무가 분사되고 줄 업무가 사라지자 회사는 KT 직원들의 ‘유배지’라고 불리는 CFT(Cross Function Team, 통합지원부서)로 발령 냈다.

명예퇴직을 거부한 직원 중 ‘민주’성향의 직원들을 보내 ‘허드렛일을 시키는 부서’가 바로 CFT였다. 그곳에는 2011년 민주노조 건설을 위해 함께 출마했던 동료들이 있었다.

임현재씨는 “KT의 보복은 철저했다”고 말했다. 그와 함께 노조 선거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직원들은 대부분 임씨와 비슷한 보복을 당했다. 집에서 100km 떨어진 지점으로 발령을 받거나 지금까지 해오던 일과는 아무런 관련 없는 부서로 배치 받는 일도 흔했다.

임씨는 “욱해서 그만둘까”도 생각했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고 말했다. 그는 “어머니에게 회사 잘 다니고 있다”고 거짓말했던 것이 지금도 큰 상처로 남았다. 아내의 “열심히 잘 해보라”는 격려가 있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임 씨는 “KTF에서 함께 근무하던 동료가 눈물을 흘리면서 ‘제발 당신을 위원장으로 추천한 서명용지에서 내 이름을 빼달라’고 하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며 “지금이야 말로 KT가 변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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