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회사가 만든 노조에 철퇴 내린 사법부

[왜냐면] 회사가 만든 노조에 철퇴 내린 사법부 /조세화

등록 :2016-06-06 19:31

 

 

대법원은 지난 5월27일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발전노조)이 동서발전 주식회사와 당시 대표이사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사건에 대해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확정했다. 원심인 서울고등법원은 동서발전이 2010년 초부터 발전노조가 민주노총에서 탈퇴하도록 지배·개입하고, 나아가 친사용자적인 기업별 노동조합 설립을 계획해 조합원들의 집단적 탈퇴를 유도한 행위에 대해 헌법상 단결권 등을 침해한 불법행위라고 판단하고 동서발전 등에 7000만원 손해배상금을 인정한 것이다.

동서발전은 2010년 2월 발전노조의 임원선거에 개입해 민주 후보를 낙선시키고, 급기야 발전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해 일부 조합원들을 포섭해 ‘발전노조 탈퇴 및 기업별 노조 전환 총회투표’를 시도(이른바 플랜A)했으나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부서별로 조합원들을 배, 사과, 토마토로 분류해 성향을 분석하고 중립지대에 있는 ‘사과’(겉은 빨갛고 속은 하얀) 조합원들을 집중적으로 포섭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대표이사는 “민주노총 탈퇴로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무산된 점에 대한 실망이 큼”이라고 평가하면서 중단하지 말고 계속 추진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회사 관계자 중 일부는 당시 지식경제부, 청와대 등 정부기관을 접촉하거나 진행 내용을 보고한 정황도 포착됐다.

이에 따라 회사는 다른 방법을 고안해내는데, 그것이 바로 발전노조 조합원들을 탈퇴시켜 친사용자적인 노동조합을 설립한다는 것이었다(이른바 플랜B). 여기에 동원된 것이 인사고과와 이에 따른 원거리 전보 등과 같은 인사상 불이익(근무형태 변경, 기피 보직 부여, 사업소 이동, 인센티브 철저 배제 등)이다. 회사는 조합원들이 발전노조에 잔류하면 계속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차별적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 결과 2011년 1월20일을 전후해 6800여명이던 조합원 수가 1000여명으로 급감했다. 법원은 단편적인 사실보다 대표이사까지 직접 나서서 지속적으로 발전노조의 붕괴를 노린 일련의 흐름을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은 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를 이유로 회사 쪽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이다. 그런데 회사가 기업별 노조 설립에 관여했다는 관점에서 보면,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선고된 유성기업노조의 설립무효확인사건과 유사한 면이 많다.

회사가 노동조합에 개입해 친사용자적인 노조를 만드는 행위는, 노동법의 취지를 고려할 때 타인의 생명·신체를 직접 위협하는 행위에 비견할 만하다. 헌법과 노조법은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최소한의 힘의 균형을 보장하기 위해 근로자의 단결권을 보장하되, 노조가 사용자와의 관계에서 자주적이고 독립적으로 설립, 운영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복수노조가 허용된 상황에서 회사가 이를 기화로 이른바 ‘어용노조’를 수단 삼아 헌법상 노동3권의 이상을 유린하려는 시도가 계속되는 형편이라면, 이를 신속하게 차단·원상회복해야 한다. 또 ‘중대한 기업범죄’로 취급되도록 강력한 제재의 근거를 마련하는 등 법적·제도적 장치를 심각하게 고민할 때다.

조세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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