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회장의 KT가 최근 네거티브 전략에 집중하면서 '아전인수(我田引水)'격 경영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경쟁사에 대한 비난 강도를 높이는 반면 제 허물 감추기에 급급하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황창규 회장의 위기의식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황창규 KT 회장. KT 제공
■ SKT 맹비난, KT 송년회는 성토의 장?
KT는 지난 18일 자사의 송년회 자리에서 경쟁사인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 추진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포문은 이번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한 임헌문 매스총괄 사장의 인사말로 시작됐다.
임 사장은 이 자리에서 "요즘 판을 바꾸겠다는 사업자 때문에 업계가 시끄럽다"며 "방송과 통신의 융합으로 판을 바꾸겠다고 하는데, 아직 방송통신 융합에 대한 틀이 명확하게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섣부른 결정은 통신·방송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오히려 독점을 강화해 요금인상, 통신 산업의 위축 등 부작용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도 믿지 않으면서 남까지 속이겠다는 의미의 '자기기인'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며 "과거에도 판을 여러 번 흔들어놓은 회사가 이번에도 스스로도 못믿을 말로 정부와 업계, 국민을 속이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맹수호 CR부문장 부사장도 이 자리에서 "SK텔레콤이 인수·합병의 근거로 내세운 글로벌 통신·방송 업체의 M&A에서 인수합병 대상 기업이 대체가 가능할 경우 인가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은 유료방송과 모바일 사업에서 대체가 가능하기 때문에 인수가 허용돼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마치 작정이라도 한 듯 이날 KT 임원들은 한 목소리로 SK텔레콤에 대한 성토에 열을 올렸다. 한 해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다짐을 도모하는 자리에서 경쟁사에 대한 비난만 늘어놓은 것이다.
■ 타사 맹비난 KT, 내부 단속은 나 몰라라
경쟁사에 핏대를 세우고 있는 KT는 자사의 과오에 유독 관대한 편이다.
20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KT 노사는 노조원들이 낸 특별 명예퇴직 소송에서 패소했다.
KT는 지난해 4월 근속 15년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특별 명예퇴직을 실시하고 올해 1월부터 임금 피크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는데 열흘 간 평균 51세, 근속연수 26년의 직원 8,300여명을 명예퇴직시켰다.
이 과정에서 KT 노조는 노조원들의 의사를 수렴하는 총회를 거치지 않고 밀실 합의로 사상 최대 명예퇴직을 통과시켰다. 앞서 올해 임단협을 앞두고 정리해고 조항(제37조)을 추가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노사 상생 이면에 커넥션이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노조가 사측보다 해고안을 먼저 제시한 이례적인 점에서 의혹이 일었다.
결국 타의로 회사를 떠나게 된 노조원들이 노조와 노조 위원장 등을 상대로 손해 배상을 청구하게 됐다. 2심에서 재판부는 "노조 위원장이 규약을 어기고 노조의 의사 형성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노조원들의 절차적 권리를 침해했으므로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앞선 1심에서도 "소수 노조원의 절차적 참여권을 실효성 있게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절차 위반 행위에 대한 민사 책임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판결이 나온 바 있다.
KT는 자사가 주장하는 공정 경쟁에 대해서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최근 KT가 대용량 파일을 배포할 때 활용되는 웹하드 서비스용 P2P 그리드서버의 인터넷 주소(IP)만 골라 차단했다는 주장이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제기된 것이다.
올 들어 KT는 지난 5월부터 10월까지 약 600만개에 육박하는 P2P 그리드 서버 IP를 차단해 왔다. 웹하드 사업자들이 P2P 그리드 서비스로 사용자 PC에 담긴 파일 목록을 가져가는 것은 유사 해킹 행위에 해당된다는 이유에서다.
관련 시민단체들의 경우 KT의 망 중립성 위반을 제기하고 있다. 망 중립성은 개방적이고 공정해야 한다는 인터넷 이용 원칙으로 현행법에 명시된 조항이다. 그러나 KT는 인터넷 사업자 중 유일하게 웹하드 서비스용 P2P를 차단하고 있어 망 중립성을 위반했다는 주장이다. 일부 시민단체와 법조계에서는 KT가 자사의 통신망을 오가는 패킷을 몰래 열어보는 것이 불법 행위에 해당한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KT는 고객과의 상도의마저 저버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지난해 대규모 고객 정보 해킹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정보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반응이다.
실제로 KT는 자사의 와이파이 이용권 구매 시 소액결제 진행 과정에서 주민등록번호 13자리를 모두 입력하도록 하고 있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의 와이파이 이용권은 생년월일과 이름, 휴대전화 번호만 입력하면 되는 것과는 대조적인 상황이다.
■ 탄력 잃은 황창규호, 위기의식 팽배
이러한 황창규 회장의 아전인수격 경영은 심각한 위기의식에서 발로됐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 KT 제공
현재 SK텔레콤에 무선 사업자 1위를 내준 KT는 유선 사업자 부문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SK브로드밴드(330만 가구)와 CJ헬로비전(420만 가구)이 통합되면 단순 수치상 750만 가구에 육박하는 가입자를 확보하게 된다. 올레tv와 스카이라이프를 운영하는 KT와 약 100만 가구 차이도 나지 않는 상황이다. 순식간에 유선 1위 사업자 자리를 뺏길 위기에 놓인 것이다. 때문에 KT는 SK텔레콤을 상대로 집중 포화를 날릴 수 밖에 없는 셈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KT의 위기의식이 내부까지 팽배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는 황창규 회장이 취임한 이후 인건비 절감을 내세우며 조직 슬림화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8,000여명의 명예퇴직을 통한 대규모 인원 감축을 진행했고 통신 경쟁력 강화라는 취지를 내세워 KT렌탈·KT캐피탈 등의 비 통신 계열사를 정리하는 등 고강도의 조직 개편을 단행해 왔다. 그러나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지급된 퇴직금만으로 약 1조원이 집행됐고 이는 고스란히 지난해 실적에 반영되는 악수로 작용했다.
특히 최근 신상필벌과 혁신을 취지로 내세운 임원 인사에서 주요 측근을 비서실장에 임명하는 등 연임을 위한 포석을 깔아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황 회장의 임기는 2017년 정기주총일까지로 약 1년여만을 남겨두고 있다.
내부의 호응 여부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최근 KT 사내망 블라인드 게시판에는 지난 9월 기자간담회 이후 감상문을 작성하라는 황 회장의 지시가 있었다고 전해지면서 직원들 사이 큰 혼란을 부추기기도 했다.
청년희망펀드 참여 방식에도 논란이 일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KT 임직원이 청년희망펀드에 자발적으로 동참한다고 밝혔지만, 내부에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KT와 KT노동조합이 임금 65만원 정액 인상을 골자로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을 합의한 이후 임직원들의 급여 일부를 청년희망펀드에 기부하게 한 것은 줬다 뺏는 꼴이라는 입장이다. 포스코가 임원진의 기부로만 청년희망펀드를 모집한 것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더불어 3만원대를 유지하던 KT의 주가도 황 회장이 취임한 이후 18일 기준 현재 2만8,850원까지 떨어져 내부 분위기는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황 회장은 CEO 인사말을 통해 "고객을 위한 가치 창출이 곧 kt의 성장이라는 믿음으로 최고의 품질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여 고객가치 1등 기업이 되겠다"며 "주주에게는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주주가치 1등 기업, 국가와 사회에는 ICT 기반 융합서비스를 통해 성공스토리를 만들어 글로벌 시장을 창출하겠다"고 밝혔으나 실제로 주가·고객 신뢰도 하락의 위기 국면에 빠진 상황이다.
때문에 기가 인프라 구축 및 스마트에너지, IoT, 자율주행차, 인터넷전문은행 등 당면과제를 앞둔 황창규호 KT의 승부수가 네거티브와 구조조정이 돼서는 안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증권가의 한 애널리스트는 "KT는 민영화 된 지 오래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조직 투명성에 대한 의문을 달고 다닌다"며 "여기에 과도한 몸집 줄이기와 네거티브로 일관해 온 KT가 내년부터 어떠한 원동력을 통해 실적 개선에 나설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채성오기자 cs86@sporbiz.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