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먼저 올레 브랜드를 출시해 젊고 창의적인 혁신 기업의 이미지로 변했고 기업에서 일하는 방식과 기업 문화에서도 혁신을 이뤘다. 이제 누구도 KT에 근무하며 KT 배지를 달고 다니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일이 없어졌다.”
주주총회장에 등장한 이석채 KT 회장이 이 같은 평가를 내놓자, 한 쪽에서는 박수 갈채와 함께 환호하는 목소리가 쏟아졌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석채 물러가라”며 야유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보안 요원들이 주총장 안팎에 대거 배치돼 삼엄한 경비 속에서 KT사원들로 의혹을 받고 있는 수백여 명의 주주들이 주총장을 가득 메웠고, 밀려난 일부 KT 해직자들과 시민단체, 소액주주들은 강력 반발했다. 양측의 고성이 오갔고 보안 요원의 통제로 실랑이가 벌어졌으며 경찰이 출동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석채 KT 회장의 연임 등을 결정하는 16일 주총은 경제·산업부 기자가 아니라 사회부 기자가 필요할 정도로, 공방이 심했다.
주총 의장을 맡은 이석채 회장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동 KT연구개발센터에서 열린 제30기 정기주주총회에서 일부 주주들의 반대 의견을 묵살하고 신속하게 안건을 처리했다. 이 회장이 “상법 336조 2항에 의거해 의사진행을 방해하면 주주총회 질서유지를 위해 발언 정지 또는 퇴장을 명할 수 있다”면서 안건을 올리자, 주총장 앞자리에 앉아 사원으로 의혹을 받고 있는 주주들 수십여 명이 발언을 신청해 찬성 의견을 밝혔다.
한 주주가 “주주 회의에 감동 받았다. 그런 뚝심이 주주로서 회장님을 믿는 것 같다”며 “탄성과 기립박수로 강력히 동의한다”고 말하자, 300여 좌석을 대다수 차지한 주주들이 기립해 박수를 쳤다. 또 다른 주주들도 “우렁찬 기립 박수로 통과시킬 것을 재청한다”고 잇따라 발언했다. 이날 주총에서 가장 핵심 사안인 회장 연임 안건은 설명부터 처리까지 불과 8분 만에 끝났다. 이어 이 회장은 “여러분을 모시고 일하는 것이 일생의 가문의 영광”이라며 웃음을 보였지만, 주총장 뒤편에 있어 발언 기회조차 얻지 못한 소액 주주들은 “이석채는 물러가라”며 목청을 높였다.
연임 안건 이외의 나머지 6개 안건도 이 회장이 안건을 올리면 앞자리에 앉은 수십여 명의 주주들이 “원안대로 처리해주실 것을 적극 동의한다”고 목청을 높이며 지지 발언을 해, 일사천리로 처리됐다.
▲ 서울시 서초구 KT연구개발센터에서 열린 KT주주총회. 300여 석 좌석 대다수를 차지한 사측이 동원한 사원으로 의혹이 제기된 주주들 모습. 최훈길 기자 chamnamu@
이석채 회장은 ‘재무제표 승인’ 안건에서 “KT가 비즈니스 모델이 굳건하고 새로 보는 넓은 안목과 글로벌 네트워크가 비교할 수 없이 지금이 강하다”며 “작년 한해 유감스럽게도 그런 능력 십분 발휘했지만 정부 당국의 규제로 인해 날라간 것이 적어도 4천 억원”이라고 밝혀, 방송통신위원회의 통신 요금 인하 등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그러자 조태욱 KT인권센터 조태욱 집행위원장은 재무제표에서 재작년의 총부채가 13조2539만 원에서 지난해 14조7196만 원으로 증가한 것을 두고 “이 회장 취임 이후 부채가 확대되는 양상”이라고 지적했다. 조 위원장은 “이 회장이 통신과 비통신 사업 비율을 50대 50으로 하겠다고 밝히면서 문어발식으로 확장을 하고 거기에 현찰이 들어가면서 부채가 확장되고 있다”며 “유동성 위기가 심화되고 (부동산)자산까지 매각하고 있다”고 KT 재정의 문제를 지적했다.
최근 통신서비스 매출이 15조1990억 원에서 14조6770억 원으로 3.4% 감소하는 등 통신사이면서 통신 사업이 아니라 부동산 매각 등 다른 부문에서 매출을 얻고 있어, 최근 안팎에서 KT가 통신사로서의 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지적을 정면으로 거론한 것이다.
그러나 이석채 회장은 “(부동산 매각)그 돈을 딴 데 썼나. 스카이라이프 합병하고 OTS(올레TV스카이라이프)에 투자해 가입자가 150만 명이 늘었다”고 반박했다. 이 회장은 이어 “OTS 수도권 가입자를 800만, 1000만 명으로 올려 우리 만든 (통신)상품과 결합해 맥아더가 인천 상륙하듯 반전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라며 “더 나은 안이 있으면 말씀해 달라”고 응수했다.
▲ 이석채 회장이 주주총회장에 등장하자, 주총장 뒤편에서 소액주주들, KT해고자들, KT새노조 조합원, 시민단체 회원 등이 이석채 회장의 퇴진을 촉구하는 문구가 새겨진 종이를 들었다. 최훈길 기자 chamnamu@
이 회장이 ‘강수’로 맞서자, 앞 자리에 앉은 주주들은 앞다퉈 발언을 신청했고 “의장님께서는 더 이상 토론을 중단하시고 본 안건을 원안대로 통과시킬 것을 적극 건의한다”며 목청을 높였다. 안건이 처리되자 이 회장은 “16년 전에 정보통신부 장관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다. KT와 KTF 분할을 했는데 똑같이 퇴진하라는 소란이 있었다”며 “저는 이런 것과 운명이 연결된 것 같다”며 웃음을 내보이기도 했다.
KT 이사를 선임하는 안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잇따라 제기됐다. 소액주주 모임에서 온 한 주주는 “2010년 10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내부 비리로 총20명이 사퇴하기로 약속했는데 이춘호 이사만 사퇴서를 안 냈다”며 이춘호 이사(EBS 이사장)를 두 번이나 선임하는 이유를 물었다. 김윤옥 여사의 지인인 이춘호 이사는 2008년 여성부 장관 내정자로 지목됐지만 투기 의혹으로 자진사퇴한 뒤 EBS 이사장, KT 사외 이사를 맡아왔다.
조태욱 위원장은 사외이사 내정자로 올라온 김응한 미시간대 경영학 석좌교수에 대해 “국적이 미국국적”이라며 “KT가 글로벌 기업이기 때문에 외국 국적이 이사가 맞다고 하지만, 대부분 나라는 (통신사 이사를 외국인으로 선임하지 않아)통신 주권을 보호하고 있다”며 이사 선임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석채 회장은 이춘호 이사를 두고 “신문, 보도와 진실과 엄청난 차이가 있다”며 “이춘호 이사님을 본 적 있습니까. 같이 일해본적 있습니까. 굉장히 고결한 분”이라고 주장했다. 앞 자리에 앉은 한 주주가 “김흥한 이사는 그동안 역할을 충분히 하셨고 능력과 자질이 충분하다”고 말하자, 이석채 회장은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돼 원안대로 승인됐다”며 안건을 처리했다.
이 회장은 “통신료를 정부가 나와서 깎는 곳이 나라가 없고, (외국은 트래픽)프리라이딩 없는 종량제”라며 “통신 네트워크를 구비하는데 몇 조를 썼는데 이걸 이용하면서 얼마든지 써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트래픽 프라라이딩에)주주 여러분 돈이 들어간다”며 “통신회사들을 밟아도 되는 것처럼 하는 사람에게 그게 사실이 아님을 알리는데 (주주 여러분이)힘을 모아주시길 부탁한다”고 말하며 이날 80분간 진행된 주총을 마무리했다.
조태욱 위원장은 “예상되는 각본대로 사측이 인원을 동원해 회의가 진행됐다”며 “중요한 연임 건은 반대 의견을 듣지 않고 처리하면서 나머지 안건에 대해 문제를 지적하는 주주들에게 발언권을 줬다는 것은 면피를 얻기 위한 것일뿐”이라고 밝혔다. 조 위원장은 “직원들의 고혈을 짜내고 주가도 반토막 낸 이 회장은 사퇴해야 옳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