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현안, 원칙ㆍ실리의 조화로 풀어야

(서울=연합뉴스) 노동 현장이 어수선하다. 지난달 말 전공노, 민공노, 법원노조 등 3개 공무원 노조가 통합해 조합원 11만명이 넘는 거대 공무원 노조가 생기고 통합공무원 노조가 민노총 가입을 결정하면서 밀려 온 파장 때문이다. 정부는 공무원의 정치투쟁을 우려하면서 지난 20일 전공노를 법외노조화하고 합법 노조로서 가졌던 지위를 박탈했다. 21일에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위원장이 만나 연대투쟁과 총파업을 경고했으며 이튿날 노동부는 전공노 위원장을 불구속 입건하는 강경책으로 맞섰다. 위법한 조항을 담고 있는 단체 협약과 관련해 국가형벌권이 처음 발동된 사례다. 이에 맞서 통합노조는 정부에 정면 대응할 것을 천명하고 나섰고 민주노총은 비정규직을 조직화해 투쟁할 것이라고 되받았다. 날선 공방이 오고가면서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지기만 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노동부가 공무원 노조에 칼을 댄 것은 공공부문에 만연한 불합리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노동부는 공직사회 노사관계가 후진적이며 이때문에 112개 공무원 단체 협약의 22% 이상이 현행 법을 위반하거나 상궤를 벗어나는 내용이라고 보고 있다. 선거 등을 의식한 지자체는 노사가 유착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국민적 감시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정부가 취한 일련의 조치가 통합노조의 민노총 가입에 따른 정치적 보복행위라고 비난하고 있다. 노동계는 정부가 노사 관계를 지배.개입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면서 조사 자체에도 응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대립의 바탕에는 내년부터 시행되는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복수노조 허용이라는 현안을 둘러싼 갈등이 깔려 있다. 우선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가 시행되면 조합원 100명 이하의 노조는 전임자 임금조차 감당할 수 없게 되고 나머지 사업장들도 조합비 대부분을 전임자 임금에 지출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운동은 말살된다는 게 노동계의 주장이다. 복수노조 허용에 대해서는 경영계의 반발이 적지않다. 경영계는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노조가입률이 급격하게 상승해 사회 갈등을 증폭시키고 노노갈등으로 막대한 생산차질이 생겨 기업이 파산하는 사례도 속출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 한마디로 원칙은 지키겠다는 것이다. 기업단위 복수노조 허용과 교섭창구 단일화,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는 말이다. 정부의 입장은 전임자 일부가 기업을 떠나 운동가로 활동하면서 노동 운동이 과격화되고 있으며 일부 특권화한 세력의 저항이 노동시장 유연화의 걸림돌이라는 판단에 근거하고 있다.

복수노조를 허용하고 전임자 임금지급을 금지하는 조항은 1997년 노조법에 도입됐지만 13년동안 3차례 유예된 끝에 내년부터 시행된다. 복수노조.전임자 문제와 관련해 노사정은 지난달까지 만나왔으나 지금은 한달 가량 대화가 중단된 상태다. 이번에 일련의 사태를 겪는 와중에 들린 한가지 다행스런 소식은 노사정이 조만간 다시 대화에 나선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는 법 시행 자체가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고 노동계는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를 거부하는 한편 전임자 임금문제는 법률로 규정하지 말고 노사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대화가 쉽게 풀리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노사정 모두가 진정성을 갖고 접근한다면 대타협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예컨대 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들이 합의한 타임오프제를 순차적으로 유연하게 적용하는 방법 등은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하다. 법적으로 규정된 노조활동을 유급으로 인정하는 타임오프제가 시행될 경우 현상태로는 전임자의 임금이 절반으로 깍이게 되지만 비율과 내용을 조정하는 형태의 타협이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정면충돌을 피하는 해법을 찾는 것이다. 원칙은 중요하지만 원칙을 지킨다며 실리를 포기하는 것은 때론 최선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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