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운동가 신 진 구

[655] 농민운동가 申振求(신진구)

 

 

소에게 풀을 뜯기며 유소년기를 보낸 고향산야

 

마을 앞 개천에서

어린이들은 멱을 감고

아낙네들은 빨래를 한다.

인경산과 구려산 골짜기에서

만들어져 내려온 시냇물이다.

붐앙골 습지에서 정화되어

거울 속처럼 맑다.

봄에는 뒷산에 진달래와 벚꽃이 곱고

여름에는 시냇가 버드나무 숲이 깊고

가을이면 앞산에 길게 새빨간 불꽃이 일고

겨울이면 눈이 내려 온통 산야가 하얗다.

겨울이 되면 초록은 실색, 추악한 색채로 변하나 

자연은 바로 눈을 내려 그 산야를 덮는다.  

돌봉산 기슭 마을 앞 갱변에는

여름이면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다.


학교에 갔다 돌아오면

책보를 벗어 던지고  

동무들과 산과 물가에 나가 놀다

해질 무렵이면 풀을 뜯기려

소를 몰고 풀을 찾아 다닌다.

내 몸의 몇배가 되는 소가

‘이랴 어저저저’ 하며

고삐를 채면 잘도 움직여 준다.

소가 풀을 우득우득 뜯을 때

나는 그 향기는 매우 좋고

고개를 이리 저리 돌릴 때

나는 워낭소리 또한 참으로 맑다.

소와 놀다 보면 재미 있어

늦게 귀가하다 꾸중을 듣기도 한다.

겨울에는 할아버지와 여물을 썰고

사랑부억에서 소죽을 쑨다.

여물은 한번 썰면 몇시간씩 작업을 해야 하므로

어린 나이에 매우 곤욕스럽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행복했던 시절이다.  

돌아가신 조부가 생각 날 때는 

그 시절을 생각한다.

그리고 소를 생각한다.

소는 과거 농촌에서

생산수단이자 주요 소득원이었다.

소로 농삿일을 하고

송아지를 키워 목돈을 마련,

자식들의 학자금으로 썼다.

나도 그렇게 학교를 다녔다.

농부이신 조부에게 소는

반려자와 같은 존재였다.

사람이 불민해 

손자를 볼 나이가 되어서야

조부의 참 모습이 그려진다.

 

소의 뿔은 무기가 아니다.

그냥 장식 품일 뿐이다.

암소의 뿔은 수소의 그것보다

한층 더 겸허하다.

편안히 누워서 눈을 지그시 감고

반추하는 소의 모습을 보면

편안함이 저절로 느껴진다.

인간에게도 사색의 반추를 

요구하는 것 같다.

20여 식구의 가장인 조부(신진구)는 

소처럼 근면하게

흙처럼 거짓없이

평생을 이곳 농촌에서 행복하게 살며

다른 사람들보다 한발 앞선 생각으로  

지붕 개량,

농로 개설,

농지 정지,

품질 개량,

산림 녹화 등

농촌의 근대화를 이끈

숨은 농민운동가였다.

 

최근 배웠다고 하는 놈들의
이념을 앞세운 치졸한 밥그릇싸움을 보면서
나의 조부야 말로
인류애를 실천한 훌륭한 어른이었음을
새삼 느끼게 한다.  

똥걸레같은 정치꾼들을 보면서

더욱 그렇게 생각한다.

노동운동을 한다든가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을 보면

그 언행이 참으로 혐오스럽다.

자기들만을 생각한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다.

정글에서 사냥하는

짐승들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나의 조부는

내 자식보다는 남의 자식을,

우리 식구보다는 이웃을,

집 일보다는 동네 일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시는

큰 어른이셨다. 

 

<저술가 한재 신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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