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없는 신입사원

직장을 구할 땐 취업만 되면 인생이 확 풀릴 것 같지만 막상 회사에 들어가도 매순간이 위기이자 고비다. '생존'이란 숙제는 신입사원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이 숙제를 풀 수 있는 열쇠가 애사심(愛社心)이다. 애사심은 사회에 첫발 딛은 새내기 직장인에게 생존을 넘어 성공까지 보장할 수 있는 막강한 아이템이다.

애사심이라면 거창한 것 같지만 회사를 나처럼 생각하면 쉽다. 나를 생각하듯 회사를 아끼는 게 애사심의 출발이다. 웬만한 회사에서 자사 제품 애용은 상식. 경쟁사 제품을 쓰거나 그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은 금기다.

#사례1

국내 굴지의 기업 L전자에 입사한 P씨. 아직 회사 분위기도 익숙지 않고 모든 게 서툴렀지만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만은 충만했다.

마침 신입사원 환영회를 겸한 체육대회가 공지됐다. 집에서 행사 장소가 멀었던 김씨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너무 오래 걸리겠다' 싶어 부모님차를 가져가기로 했다.

그는 일찌감치 출발했다.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옷매무새와 머리에도 신경을 썼다. 여유 있게 도착한 그는 차에서 내리다 선배들과 마주쳤다.

"안녕하십니까!"

씩씩하게 인사했지만 돌아오는 눈빛은 냉랭했고….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김씨를 잠시 후 한 선배가 불렀다.

"너, 차가…"

아뿔싸. 부모님의 차는 르노삼성의 SM5였다. P씨 회사에게 숙명의 라이벌인 S사의 차를 보란 듯이 몰고 오다니…. 다행히 선배들은 '몰라서 그랬겠지'하며 P씨를 이해했고 그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주차장 구석으로 차를 옮겨 세웠다.

L전자 주차장엔 르노삼성차를 찾아보기 어렵다. 임원들에게 제공되는 차량도 대부분 현대·기아차다. 정해놓은 규정은 아니지만 이미 공감대가 형성돼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여긴다.

P씨는 "사내에서 S그룹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LG처럼 영문 약자인 에스에스(SS)로 부른다는 사실을 그 때 알았다"며 "신입사원이 애사심도 없더라는 평가를 들을까봐 한동안 긴장하고 지냈다"고 한숨을 돌렸다.

물론 그는 이 경험을 교훈삼아 능력과 함께 애사심을 적극 발휘, 회사 생활을 잘~ 하고 있다.

금기사항에 얽힌 에피소드는 소비재·유통 업종에 많다. 관련 제품이 평소 입고 먹고 즐기는 것들이다 보니 사소한 '실수'도 눈에 잘 띈다.

#사례2

스포츠의류 업체에 취직한 K씨. 회사 특성상 복장이 자유로웠고 외부 업무가 없는 날은 '추리닝'에 운동화 차림으로 출근하는 직원이 적잖았다.

평소 양복체질이 아니라고 느꼈던 K씨로선 반가운 일. 운동화를 신고 출근한 어느날, 복도에서 마주친 임원이 그를 불러 세웠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싸늘한 기운.

"자네, 신발이 그게 뭔가"

K씨는 당황스러웠다. '운동화도 괜찮다고 했는데…복장 불량이란 얘긴가' 생각했지만 다음 순간 K씨는 아차 싶었다. 그는 경쟁 브랜드의 로고가 큼지막히 박힌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그는 "처음엔 꼭 자사 제품만 착용하라는 게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하지만 자기가 일하는 회사에서 만드는 제품을 본인이 먼저 선택하고 좋아하지 않으면서 소비자에게 권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요즘엔 쉬는 날에도 자사 옷과 신발을 이용하는 게 자연스럽다.

이처럼 애사심은 사소한 데에서 출발한다. 김인권 LG패션 홍보팀장은 휴대전화의 벨이 5번 이상 울리기 전에는 전화를 안 받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휴대전화 통화연결음(컬러링)을 LG패션의 대표 브랜드인 '헤지스'의 광고음악으로 설정했다.

전화를 건 사람이 조금이라도 이 노래를 오래 듣게 하려고 전화를 바로 받을 수 있어도 잠시 기다린다. 김 팀장은 "업무시간조차 그러지는 않는다"며 "퇴근 후에 지인들이 전화를 하면 그러긴 한다"고 해명(?)했다.

의류 뿐 아니라 주류업체 직원들의 자사제품 애용은 소문이 났다. 기분 좋은 술자리, "왜 ○○○ 술을 안 가져오느냐"고 주인을 타박하는 손님이 있다면 십중팔구 그들은 주류회사 직원이다.

이 같은 애사심은 쉽게 전염된다. 해당 회사와 밀접하게 관계를 맺는 업계도 애사심 대열에 동참하게 된다. '사장님 실종사건'도 그 중 하나다.

#사례3

국내 대표적인 홍보대행사의 K사장. 고객사(클라이언트)에 대한 애사심이 남달라 '더블에이'의 홍보를 맡았을 때 복사용지는 무조건 더블에이 제품을 썼다. '썬키스트'의 홍보를 대행할 때 회사 냉장고에 넣어두는 음료수는 100% 썬키스트 제품으로 채웠다.

이런 K사장이 B위스키의 홍보를 맡았다. 술 이름이 다소 길었지만 누구를 만나건 얼마나 바쁜 상황이건 그 브랜드를 절대 줄여 말하지 않아 직원들은 "역시…"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회식날, 술이 거나하게 돌고 장소를 옮겨 양주를 마실 차례가 됐다. 순간 어느 직원이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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