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에서 바라본 kt

`수급이 재료에 우선한다`는 증시 격언이 있다. 수급은 수요와 공급, 재료는 호재와 악재를 말한다. 신기술 개발이나 수출 계약 같은 호재가 생겼어도 주식을 팔려고 대기하는 사람이 많으면 주가가 좀처럼 오르지 않는다는 얘기다. 손절매를 불사하겠다는 투자자들이 두껍게 매물벽을 형성하고 있다면 주가는 뒷심을 발휘하지 못하고 연거푸 팔자세력에 부딪혀 고꾸라지곤 한다.

이 같은 논리는 부동산 시장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며, 어쩌면 소비자들의 심리구조나 기업의 생존논리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부를 재편하는 파괴적인 외부충격이나 혁신적인 사업 변화로 기존 매물벽이 다 해소됐을 때 비로소 바닥이 보이고 자산가치가 치솟아 오를 성장동인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글로벌 비즈니스 세계에선, 기존 사업의 한계에 갇혀 있지 않고, 가장 강한 분야를 살려 과감히 벽을 뚫고 나가 진화에 성공한 사례가 적지 않다. PC제조 회사로서 몰락 위기에 처했다가 소프트웨어회사와 솔루션회사로 진화한 IBM, 소프트웨어 디자인 분야 강점을 아이팟 아이폰으로 치고 나간 애플, 가축사료(상품)에서 가축 건강 진단 키트(서비스)와 가축 치료 백신(솔루션)까지 일관성 있게 진화한 네덜란드 헨드릭스 등이 그렇다.

성장동력을 찾느라 머리를 싸매는 한국 정보기술(IT)미디어 업계도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 때 성장을 가로막는 벽이 무엇인지 찾고 이를 해소하는 봄날 대청소를 벌이면 어떨까.

마침 한국 최대 IT미디어 그룹인 KT가 이동통신 자회사인 KTF와 합병하면서 변신에 나섰고, 경쟁사인 SK텔레콤, LG 통신 계열사들이 틀을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 최대 포털인 네이버도 신사업을 찾기 위해 조직을 나눴다.

빅뱅이 방송 쪽보다 통신 쪽에서 더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외형 변화만으로 내부 벽 속의 매물벽이 사라질지 의문이다. KT의 경우 운칠기삼을 대신해 `운 11, 기 -1`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업연(업무로 엮인 네트워크) 문화, 중소기업인들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슈퍼 갑` 문화 등을 청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특히 SKLG에 비해 떨어지는 1인당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살빼기가 절실하다. 구글 MS 노키아 등 세계 톱기업 가운데 최근 감축하지 않은 곳이 없다. 물론 요즘 같은 엄동설한에 돈 안 되는 사업부서는 털어낼 수 있어도 인력을 내치는 건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인력을 재배치하고 임금을 차등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충분히 기회를 주고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삼진아웃제도 대안이다.

IT미디어 시장 토대를 살리기 위해선 방송과 통신 경계를 잇는 벽 속의 걸림돌들을 청소해야 할 것 같다.

방송ㆍ통신 콘텐츠, 모바일 인터넷이 컨버전스 시장의 성장동력으로 각광받지만 한국은 방송사나 이동통신사, 인터넷포털의 우월적 지위가 중소 콘텐츠 회사들을 고사 직전으로 내몬다. 기존 대형 IT미디어 기업들의 협업을 무시한 폐쇄적인 전략이 비리를 낳을 여지까지 만드는 거대한 매물벽인 셈이다.

콘텐츠와 소프트웨어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IT미디어 관련 법과 제도도 해소되어야 할 무거운 짐이다. 변하지 않아야 할 논리만 99가지 양산해내는 관료 문화도 답답한 먹구름이다. 벤처 기업들이 꽃을 피워내는 IT미디어 생태계 살리기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도 늘려야 한다. "IT 과잉 투자 때문에 촛불집회 같은 부작용만 생기더라"는 식의 일차원적 사고는 젊은이들의 창업정신 발육을 막고, IT가 창출해낸 수 많은 지식 인력을 썩히는 가장 두꺼운 매물벽이다



현장의 목소리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