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채 KT 회장 “세상 움직이는 건 명분과 신상필벌 … 느슨한 조직 싹 바꿀 것”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26일 저녁 만난 이석채(64·사진) KT 회장은 더욱 편안하고 자신 있는 표정이었다. 자회사 KTF 합병의 방점인
임시 주주총회를 마침내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그는 합병이란 승부수로 대표 취임 두 달여 만에 회사 비전 수립과 조직 장악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을 듣는다. 화려한 관료 경력에 저돌적 추진력이 보태져 ‘장관급 최고경영자(CEO)’란 별명도 얻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시작일 뿐임을 강하게 시사했다. “통합 KT의 승부처는 개인고객 사업이 아니라 기업 시장이 될 것”임을 처음 밝히며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느슨하고 주인의식 부족한 조직을 확 바꾸겠다”고 강조했다. 또 유·무선 융합에 대한 의지를 거듭 피력해
통신·미디어 업계 전반에 회오리바람을 몰고 올 것을 예고했다.

◆대의명분과 창조적 파괴

- KT·KTF 합병 성사를 위해 숨돌릴 틈 없이 뛰었다.

“장관 시절에도 그랬다. 꼭 해야겠다 싶은 게 있으면 다른 부처 서기관까지 만났다. 경제기획원 예산실장 때도 손수 만든 브리핑
자료를 들고 뛰어다녔다.”

-‘합병은 국민을 위한 것이며 실패하면 국가 경제도 어려워진다’는 말을 거듭했다. 이로 인해 ‘기업가인지 정치인인지 모르겠다’는
뒷말도 나왔다.

“공직자 시절에도 (당시 위치보다) 더 높고 넓은 차원의 일을 찾곤 했다. 합병 건도 마찬가지다. 기존 무대에서 성장이 불가능한 기업은
새 무대를 찾아야 한다. 때마침 기술 발달로 유·무선 융합 시대가 열렸다. KT뿐만 아니라 IT업계 전체에 새 무대가 생긴 것이다. KT가
그런 흐름을 타면 국가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또 합병의 당위를 그런 식으로 설명하지 않으면 논의가 업계 내 이전투구로 비쳐질 수
있다.” 

-일종의 전략적 선택이었단 뜻인가.

“어떤 일이든 큰 그림부터 그려야 한다. 대의명분을 선점하면 유리한 위치에서 주변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각론에 집착하기보다
큰 흐름에 비춰 어디로 가는 게 맞는지 따져야 얘기가 진전된다. 사실 큰 그림에 따라 세상을 이끄는 건 정치인 몫이다. 그래서
 (공직자 시절) 공무원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취임과 동시에 합병 작업을 시작했는데.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합병 문제를 빨리 마무리지어야 새 일이 가능하다 싶었다. 조셉 슘페터의 표현대로 KT엔 ‘창조적 파괴’가
시급했다.”

-합병이란 대형 이슈로 복잡다단한 KT 조직을 단시일에 꿰뚫은 듯하다.

“본능대로 움직인 거다. 정부에 있을 때도 그런 식으로 일했다. 야구에서 타자가 마운드에 서면 계산보다 본능에 따라 방망이를
휘두르지 않나.”

◆기업 시장이 성장 동력

-합병 후 인력 구조조정은 없나.

“없다. 특히 요즘은 일자리 나누기가 화두 아닌가. 하지만 옛 KT 사업부문에서만 연 1조원 이상의 이익은 나야 한다. 방법은 생산성
향상뿐이다. 일 못하면 먼저 동료들 눈총을 받는 조직이 돼야 한다.”

-KTF의 급여 수준이 모기업 KT보다 높은데.

“합병 후에도 KTF 직원 처우를 끌어내리지 않겠다. KTF는 합병 후 ‘개인고객 부문’으로 가게 될 텐데, 사업 부문마다 급여 격차가
나는 건 글로벌 기업에선 흔하다. 삼성전자만 해도 성과에 따라 부문별 급여가 크게 다르지 않은가.”

-어떤 사업으로 유·무선 융합 시대를 열려 하나.

“그건 기밀이다(웃음). 다만 기업 시장에 굉장한 가능성이 있음을 말하고 싶다. 교육·수송·공장 가동 등 산업 각 분야에 와이브로
(초고속 휴대인터넷)·네스팟(무선랜)·쇼(3세대 이동통신) 결합 서비스를 제공하면 어떨까. 기업 생산성은 올라가고, KT의 글로벌 시장
진출 가능성은 커질 것이다. 이를 위해 와이브로와 이동통신을 넘나드는 듀얼 단말기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아울러 네트워크로 연결된
 각종 기기 간에 온갖 정보가 넘나드는 ‘머신 투 머신(Machine to Machine)’ 비즈니스도 유망하다고 본다.”

-‘KT 직원은 주인의식이 약하다’는 비판을 계속해 왔다.

“KT 조직 문화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있다. 요는 ‘주인 없는 회사’란 점이다. 사장이 갈릴 때마다 뭐가 자꾸 바뀐다. 이런 조직에선
아무리 열심히 해도 티가 안 난다. 비단옷 입고 밤길 걷는 격이다. 그러면 내부 관계에 능한 사람만 잘나가게 된다. 그래서 나는 NHN
얘길 자주 한다. 그 회사 직원들은 주인의식이 굉장히 강하더라.”

◆인센티브와 읍참마속

-묘안은 뭔가.

“세상을 움직이는 건 인센티브다. 하지만 상 주기보다 더 어려운 게 벌 주기다. 읍참마속(泣斬馬謖) 고사처럼 잘못하면 단호히 처리할
줄도 알아야 한다.”

-KT에 와서도 그 원칙을 적용해 봤나.

“몇 번 했다.”

-인사 혁신을 위한 별도 조직이 있나.

“준비 중이다. ‘올바른 신상필벌’을 프로그램화하려는 것이다. 사장도 잘못하면 비판받아야 한다. 사내 ‘잡 마켓’도 만들려 한다. 특정
부서에 자리가 비면 평소 그 일을 원한 직원에게 우선적으로 기회를 주려 한다.”

-고사를 자주 인용한다. 어떤 책을 주로 읽나.

“잠들기 전에 역사서를 즐겨 읽는다. 사마천의 『사기열전』 같은 중국사 책이 좋다. 왕안석 같은 정치인 얘기가 흥미롭다.”

이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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