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채 KT사장, 정만원 SK텔레콤 사장에 첫 승

이석채 KT사장, 정만원 SK텔레콤 사장에 첫 승

통신업계 라이벌인 KT와 SK텔레콤의 신임 CEO들이 펼친 첫 번째 정면대결에서 이석채 KT 사장이 정만원 SK텔레콤 사장에게 일방적인 승리를 거뒀다.


이 사장이 추진한 KT와 자회사 KTF 합병인가 신청을 공정거래위원회가 26일 조건 없이 승인했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의 2차 심사가 남아있긴 하지만 업계에서는 KT와 KTF의 통합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취임회견을 통해 양 사의 합병을 반드시 저지하겠다고 밝혔던 정 사장으로서는 큰 타격을 입게 됐다.


두 사람은 행시 선후배 사이의 대결로도 관심을 모았다. 이석채 KT 사장은 1969년 행시 7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경제기획원 예산실장과 차관을 거쳐 정보통신부 장관, 대통령 경제수석을 지냈다.
1996년 PCS 사업자 선정 당시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됐으나, 2006년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작년 말 오랜 공백을 깨고 KT 사장에 선임돼 통신업계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정만원 SK텔레콤 사장은 1977년 행시 21회 출신이다. 1994년 통상산업부 구주통상과장을 지내다 선경그룹(현 SK그룹) 경영기획실 이사로 영입됐다. SK네트웍스 사장을 거쳐 올 초 SK텔레콤 사장으로 부임했다.

두 사람의 업무 스타일은 정반대다. 화끈한 성격의 이석채 사장은 수년 동안 지지부진했던 KT의 숙원사업들을 단번에 해결했다. 전격적으로 KT-KTF 합병 인가를 신청해 공정위의 승인을 받았다. KT그룹에 회장직을 도입하는 방안도 전광석화처럼 처리했다.

본사 임직원들은 대거 영업 현장으로 내보냈다. 갈수록 쪼그라드는 유선전화 사업에 연연하지 않고, 인터넷 전화를 적극적으로 육성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기로 했다. 그야말로 거침없는 행보다.

KT 내부에서는 외부 출신인 이 사장의 등장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도 있었으나.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역대 사장 중에 추진력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이 사장이 KT 사장 임기를 마친 뒤 공직에 진출할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KT의 수익성을 높여 경영능력을 인정받는 것과 동시에 국민들의 편익도 고려해 대내외적인 이미지를 제고해야 한다.

반면 정만원 SK텔레콤 사장은 치밀한 성격처럼 철저히 실리 위주의 행보를 취하고 있다. ‘OK캐시백 카드’로 돌풍을 일으킨 ‘마케팅의 귀재’답게 멤버십 제도를 강화하고, 수익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다. 올 초 신년회에서 정 사장은 “아무리 멋있는 사업도 돈을 벌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며 실적이 좋지 못한 일부 사업부 임원들을 공개적으로 질책하기도 했다

정 사장은 지난 1월21일 KT가 KTF와 합병 신청서를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하자 부랴부랴 기자회견을 열어 ‘합병 반대’를 외쳤다. 정 사장은 방통위, 공정위 등에 합병의 부당함을 호소했으나 별로 호응을 얻지 못했다.

SK텔레콤과 함께 KT-KTF 합병반대 행동에 나섰던 다른 통신업체들도 “정 사장이 처음부터 방향을 잘못 잡았다”고 비판하고 있다. KT가 정부와 어느 정도 교감이 이뤄진 상태에서 합병을 신청했는데, 정 사장이 무조건 반대를 외치는 바람에 정부측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것이다.

“KT-KTF가 합병하면 통신요금을 파격적으로 내릴 것이기 때문에 업계가 혼란해질 것”이라는 SK텔레콤의 반대 논리는 오히려 합병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공정위는 “KT와 KTF가 합병하면 통신요금이 내려가는 등 경쟁을 촉진하고 소비자 편익이 확대될 것”이라며 이석채 KT 사장의 손을 들어줬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차라리 합병을 받아들이되 공정경쟁을 해치지 않도록 인가조건을 강화해달라고 주장하는 것이 합리적이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1라운드가 이석채 사장의 승라로 끝났지만, 이런 추세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KT가 KTF와 최종 합병하게 되면 이동통신, 인터넷전화, IPTV, 무선인터넷 등 주요 통신 분야에서 SK텔레콤과 정면으로 맞부딪친다. 정만원 SK텔레콤 사장이 어떤 반격 카드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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