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경제학 vs 노동의 경제학

자본의 경제학 vs 노동의 경제학

김승호  |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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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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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대 총선 전에는 온통 정치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더니, 정치만 잘되면 만사가 잘된다고 역설하더니, 총선이 끝나자마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온통 경제가 중요하다고, 이대로 가만두면 국가경제가 위험하다고 야단이다. 그래서 오늘은 경제에 대해 살펴보겠다.

이와 관련해 우선 강조하고 싶은 점은 나무만 보지 말라는 것, 나무를 보기에 앞서 숲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숲은 보지 않고 숲 속을 이리저리 헤매면서 나무만 살펴봐서는 좋은 답을 찾아낼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라는 숲을 보는 방법, 즉 경제학에는 크게 봐서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자본의 경제학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의 경제학이다. 경제학이 이렇게 두 종류로 뚜렷이 나뉘어지는 이유는 사회가 두 개의 적대적인 계급으로 극명하게 분열돼 있기 때문이다.

자본(가)계급은 자신의 경제학을 계급적 이해를 초월한 순수경제학이라고 포장하고 미화한다. 순수한 것이 불순한 것보다 훨씬 좋지 않은가. 반면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경제학을 정치경제학이라 이름 붙인다. 자신의 경제학이 노동계급의 이해를 표현하는 정치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당당하게 선포한다. 자본의 경제학보다 훨씬 솔직하지 않은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자타가 경제전문가라고 하는데, 그의 경제학은 자본의 경제학, 순수경제학이다. 그래서 그는 제 발로 민주노총을 찾아와서는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정치나 사회를 배제한 순수한 노동운동, 경제주의 노동운동을 펼치라고 계급적인 훈수를 둔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기이하게도 수구·보수는 물론이고 진보와 심지어 노동운동까지도 곧잘 노동의 경제학이 아니라 자본의 경제학으로 경제현상을 바라보고, 문제를 발견하고, 그에 대해 진단과 처방을 내리고 있다.

지금 정치권에는 해운·조선업 구조조정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던져져 있다. 그리고 한국은행이 ‘한국판(박근혜 식으로는 ‘선별적’) 양적완화’를 할 것인지 아닌지, 즉 해운·조선업 구조조정에 들어갈 돈을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 제공할 건지 국가재정을 투입할 건지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어떤 전문가는 양적완화라는 용어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하면서 ‘국책은행에 대한 중앙은행 출자’로 정확하게 말을 써야 한다고 역설한다. 비전문가로서는 뭐가 뭔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렇게 자본의 경제학자들은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생소한 전문용어를 만들거나 사용함으로써 대중으로 하여금 진실에 접근하기 어렵게 만든다.

해운·조선업이 위험하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2008년 미국발 금융공황으로 세계경제 대불황이 시작되면서 세계적으로 무역규모가 확대되지 못하고 따라서 선박 사용과 건조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지 못할 거라는 것은 뻔히 내다보이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아무런 대책을 강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빅3 조선사에 해양플랜트를 대대적으로 추진하면서 8조원대의 적자를 보게 방조했다. 아니 빨대를 대고 피를 빨아들이기만 했다. 5조원 적자를 낸 대우조선해양을 놓고 벌인 낙하산 인사와 이들과 국책은행과 정부부처들이 담합한 탐욕의 잔치가 그 극적인 사례다.

한국은 세계 경제위기의 예외로서, 외환위기도 극복했는데 이번에도 극복 못할 리 없다는 근거 없는 자만심이 그 배경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 진행되고 있는 세계적 규모와 세기적 차원의 경제대불황을 자본주의의 구조적이고 체제적인 위기로 보지 않고 때가 되면 회복되는 경기순환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는 자본의 경제학이 이런 자만심과 탐욕을 뒷받침했다.

자본의 경제학에서는 순환적 변동은 인정되지만 구조적·체제적 위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것을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 자본주의를 신비화하고 미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수년 전부터 영남지역 노동운동 활동가들에게 경제의 구조적·체제적 위기를 경고하고 그와 같은 사태가 왔을 때 노동운동이 그것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 대비하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대답은 경기가 좋기 때문에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노동운동도 자본의 경제학에 포섭돼 있었던 것이다.

요즘 초점이 되고 있는 해운·조선업 위기는 한국산업 전체 위기의 빙산의 일각이다. 자본계급도 해운·조선업만이 아니라 철강·석유화학·건설 등 5대 산업이 위태롭다고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위태로운 것은 5대 산업만이 아니라 자동차와 전자를 포함한 우리나라 산업 전체다. 그리고 금융을 포함한 경제시스템 전체다.

‘한국판 양적완화’니 뭐니 하는 것은 순전한 말장난이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지금 해운·조선업 파산으로 연쇄파산할 위험에 직면해 있다. 국책은행 파산을 막기 위해 ‘선제적’으로 구제금융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뒤늦은’ 해운·조선업 파산처리와 그에 따른 국책은행 구제금융이라고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 국책은행을 구제해야 할 정도로 한국 자본주의 시스템은 지금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해운·조선업 파산만 가지고도 이렇다면 그 다음은 말을 하나 마나다. 자본주의에서는 국민 혈세로 금융과 기업에 구제금융을 제공하고 국유화해도 답이 되지 않는다. 대우조선해양에서 보듯이 그 또한 악의 재생산이다. 고로 악보다 선, 이윤생산 대신 ‘필요의 생산’으로 변혁해야 한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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