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노동계급
|
조회: 639회
|
작성:
2016년 2월 11일 11:13 오후
2016년 경제동향과 노동운동
김승호(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 대표)
2016. 2. 9
1. 세계경제대불황은 극복되고 있는가?
1) 총괄: 추락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자본주의적 축적
(가) 제로금리 기조에서 마이너스 금리 기조로
● 자본주의는 이윤획득을 목적으로 하여 운영되는 경제체제다. 기업이 벌어들인 이윤의 일부는 이자로 다른 자본가에게 분배된다. 그러므로 이윤과 이자가 플러스 수준을 넘는 것이 자본주의에는 필수적이다. 다만 공황과 불황이 깊어지면 이 이윤이 낮아지고 이자도 낮아진다. 이것이 경제학의 상식이었다. 그런데 이번 대불황에서는 이윤율이 저하하자 각 나라의 중앙은행이 이자를 지불한 후의 기업가수익이 마이너스 수준으로 전락하여 기업이 파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자율을 아예 제로 수준으로 낮추었다. 더구나 근년에 들어 여러 나라 중앙은행들은 제로금리에서 나아가 마이너스 금리를 채용하고 있다. 이것은 자본주의 운행원리 자체에 대한 위반이다. 하지만 위기가 워낙 심각하다 보니 이렇게 은행에게 손실을 입혀서라도 기업을 살려서 파국을 막자는 비상한 대책이 강구되고 있는 것이다.
● 자본주의 세계의 기준인 미국의 기준금리는 그 동안 0~0.25%를 유지해 오다가 작년 12월 겨우 0.25%를 올려 0.25%~0.5%로 인상했다. 한편 유럽중앙은행에 이어 일본 중앙은행이 지난 1월 29일 예금금리를 +0.1%에서 -0.1%로 내리면서 마이너스 금리를 채택한 나라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4 가량을 차지하게 됐다. 2008년 금융공황 이후 금리를 마이너스로 가장 먼저 내린 곳은 덴마크로 2012년 예금금리를 마이너스로 낮췄다.(-0.75%) 그 후 2년 뒤인 2014년 유럽중앙은행(ECB)와 스위스 중앙은행이 예금금리를 각각 마이너스로 인하했다. 유럽중앙은행은 예금금리를 2014년 6월 -0.1%로 낮춘 이후 그해 9월 -0.2%로 추가 인하했다가 2015년 12월 -0.3%로 또 추가 인하했다. 스위스 예금금리는 -0.75%다. 2015년 초에는 스웨덴이 기준금리인 환매조건부채권(레포)금리를 마이너스로 내렸다.(현재 -0.35) 그리고 2016년 1월 일본중앙은행이 전격적으로 예금금리를 마이너스로 내렸다.
● 이렇게 은행금리가 마이너스로 전락하는 다른 한편에서는 국채금리 역시 마이너스로 굴러 떨어지고 있다. 독일, 핀란드, 스웨덴, 등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10년 물 국채금리가 0%대다. 일본은 0.044%로 마이너스 직전이다. 스위스는 마이너스다. 5년 물과 2년 물의 경우 마이너스인 곳이 허다하다. 5년 물이 마이너스인 경우는 일본, 스위스, 네덜란드, 독일,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핀란드, 벨기에, 프랑스, 체코, 스웨덴, 덴마크 등 12개국이다. 2년 물이 마이너스인 경우는 일본, 스위스, 스웨덴, 독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핀란드, 벨기에, 프랑스, 아일랜드, 덴마크, 라트비아, 체코, 슬로바키아, 스페인, 이탈리아, 루마니아, 크로아티아, 터키, 러시아, 남아프리카 등 21개국이다.
(나) 저성장/저물가 기조에서 마이너스 성장/디플레이션 기조로
● 자본주의는 자본축적을 숙명으로 하는 경제체제다. “축적하라 축적하라! 이것이 모세이며 예언자이다.”(<자본> 1권2장) 자본가계급이 임금노동자계급을 지배·착취하는 체제는 경제규모의 확대를 통해 소득의 증대를 제고해 주지 않고는, 즉 자본축적 메커니즘이 순조롭게 작동되지 않고는 노동자계급으로부터 동의를 받을 수 없다. 이런 동의 없이 강제만으로 정의롭지 못한 지배와 착취가 지속될 수 없다. 자본주의 국가가 경제성장에 초점을 두는 것은 진정으로 노동대중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 그런데 경제대불황 상황이 조성되면서 이런 자본축적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할 뿐 아니라 자본축적이 반대방향으로 진행되는 비상한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제로 성장을 거쳐 마이너스 성장으로,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을 거쳐 디플레이션(deflation)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 블룸버그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8~2009년 금융공황 당시 경기침체(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계속하는 경우)에 진입한 국가는 주요 57개국 가운데 각각 20개국, 27개국이었다. 이런 상황은 대대적인 재정지출과 양적완화 등의 경기부양책에 따라 다소 진정되었으나 2015년부터 다시 악화되고 있다. 같은 자료에 따르면 2015년 1~3분기에 2분기째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해 경기침체에 들어간 국가는 캐나다, 룩셈부르크, 브라질, 에콰도르,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6개국이다. 러시아는 작년도 경제성장률이 -3.7%라고 발표되었다. 이 자료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베네수엘라는 2014년 -4%에 이어 2015년에는 -10%로 추정된다. 일본, 싱가포르, 대만, 칠레, 남아공은 한 분기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3분기에 제로 성장을 기록한 나라도 프랑스, 노르웨이, 루마니아 등 3개국이다.
● 블룸버그 자료에 따르면 작년 4/4분기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 추정치가 전년동기대비 기준으로 마이너스인 나라는 스위스, 이스라엘, 태국, 싱가포르, 스페인 등 10개국이다. (같은 자료에 따르면 세계 97개 국가 중 지난해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나라는 19개국이다.) 4/4분기 물가상승률이 0%대인 국가는 그리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 대만, 미국 등 27개국이다. 유론존 전체로는 0.1%로 추산됐다. 집계 대상 81개국 가운데 물가가 1%도 오르지 않은 나라가 1/3을 차지한 것이다. 세계경제는 전반적으로 디스인플레이션 상태로 나아가고 있으며, 디플레이션이 확산되고 있다.
● 위에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나라들 가운데 러시아나 베네수엘라 같은 경우는 유가 하락이 주된 요인인데, 이로 인해 이 나라들에서는 마이너스 성장이 높은 인플레이션을 동반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세 자리 수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에 시달린 끝에 경제비상 사태를 선포했다. 반면 여타의 나라들에서는 제로 성장 또는 마이너스 성장이 디스인플레이션 및 디플레이션을 동반하고 있다. 이렇게 물가도 하락하고 실물경제의 규모도 축소되면 경제가 나선형을 그리면서 크게 추락하여 장기화할 위험성이 발생한다. 1990년대 일본의 자산 거품 붕괴 후에 진행된 장기복합불황이나 1930년대에 있었던 세계적 대공황/대불황과 같은 상황이 되는 것이다.
(다) 요동치는 세계 금융(더 정확하는 자본)/상품 시장
● 이상과 같이 경제상황이 악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자 주식, 외환 등 금융(자본)시장이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석유 등 1차산품 시장도 마찬가지다. 이는 세계경기가 기조적으로 회복이 아니라 후퇴하고 있으며, 산유국과 자원생산국들의 디폴트 위험이 커지고 있고, 중국경제의 하방 압력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미국에서 자국의 경제상황이 회복 국면으로 나아가지 못했음에도 자기중심적으로 무리하게 금리 인상을 단행하고 추가 인상을 예고한 것이 계기를 제공했다. 또 조지 소로스 같은 투기자본이 중국의 경착륙을 겨냥해 공공연히 공세를 편 것이 불을 지폈다. 여기에 1월 말 일본에서 자기중심적으로 마이너스 금리를 채택한 것이 불안정을 가속시키고 있다.
● 이에 따라 세계시장에 가격의 급등락이 반복되는 경련현상과 대폭 하락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1월에만 1331.52포인트 떨어졌다. 월간 하락 폭으로 역대 세 번째다. 상하이종합지수는 1월 622.62포인트 떨어졌다. 17.59%다. 일본, 영국 등에서도 5~10%대의 시가총액 감소가 있었다.
● 국제유가는 28%가량 폭락해 2003년 이후 최저치를 경신했다. 지난 1월 20일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26.19달러까지 떨어져 2008년 7월 고점(145달러) 대비 82%추락했다. 런던금속거래소에서 구리 3개월 선물의 거래가격은 톤당 4,443.0달러로 2011년 2월 10,190달러 대비 56% 폭락했다.
● 신흥국 통화가치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러시아 루불화 가치는 지난 2년간 미 달러화에 대해 절반 이하로 추락했다. 브라질 헤알화는 달러당 4.1552헤알로 작년 9월 23일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역대 최저치에 근접한 것이다. 지난 주 멕시코와 콜롬비아 페소화 등도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국채가격이 오르고 국채금리는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8일 캐나다 10년 물 국채금리는 1.143%까지 하락해 사상 최저를 경신했다. 미국 국채금리는 지난 20일에 작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2% 밑으로 떨어진 1.982%를 기록했다. 지난 14일 일본과 중국의 10년 물 국채금리는 각각 0.190, 2.70%로 역대 최저치를 경신했다. 한국과 대만의 10년 물 국채금리도 각각 1.99%, 0.97%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 이렇게 시장에 불안정이 조성되자 돈을 풀거나 회수해서(이자율을 낮추고 통화 공급을 늘이거나 또는 자국 통화를 사들여서) 자국 통화 가치와 주가를 안정시키려는 환율전쟁이 각자도생 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2) 지역별 위기 상황
(가) 세계경제의 절반인 선진국
<개괄>
● 금융공황으로 불황의 늪에 빠진 선진자본주의 경제권은 10년이 지나도록, 10조 달러에 가까운 양적완화로 경기회복을 꾀했지만 회복에 실패하고 있다.(미국만 1,2,3차에 걸쳐 4조 달러 규모) 오히려 디플레이션과 기업부도 위험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한편으로는 자본에 퍼주기인 양적완화를,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도를 높이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하고 있다.
<미국>
● 기관차 미국: 작년 초만 해도 미국경제가 회복되어 하반기에는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희망적인 예측이 언론을 지배했다. 그러나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미국경제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성장률은 느리고, 임금 상승률은 제한적이며, 오히려 디플레이션이 확산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연준(Fed)은 작년 12월 기준금리를 0.25% 인상하여 제로금리에서 탈출했으며(0.25~0.5%) 이것이 불안한 세계 금융시장 및 상품시장을 더욱 동요하게 만들었다. 예컨대 연준의 금리인상을 앞두고 저금리 자금이 회수된 것이 유가급락을 악화시켰으며, 중국의 위안화 절하 조치(금년 1월 6일 0.22% 절하) 또한 달러에 고정된 위안화의 가치가 동반상승하는데 대한 중국의 환율 방어조치였다. 이것이 또 일본의 금리인하 등으로 세계적 환율전쟁을 촉발하고 있다.
● 이런 세계시장의 불안정은 미국 자체에 대해서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부진 등 자체의 경기회복 동력이 허약한 데 더해 저유가로 인한 세일가스 산업의 침체와 금융여건의 악화(신용경색) 및 금융경제의 추락(주가 폭락)으로 미국의 실물경제가 다시 침체로 돌아설 것이라는 비관론이 높아지고 있다. 도이체방크의 미국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조지프 라르가나는 올해 미국이 경기침체에 빠질 가능성을 40%로 전망했다.
● 블룸버그 자료에 다르면 연방기금 금리 선물 시장에서 연준이 올해 기준금리를 더 올리지 않을 가능성이 60%라고 보도했다. 이렇게 되면서 금리 추가 인상은 포기되고 다시 인하되어 제로 금리로 돌아갈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다.
● 보다 심각한 것은 원유가격 하락으로 인한 미국 정크본드(고위험·고수익의 투기적 요소가 강한 증권) 시장의 붕괴다. 미국에서 정크본드에 대한 우려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데, 그 계기는 작년 12월 9일 미국 월 스트리트에서 유명한 투자회사인 서드 애비뉴 매니지먼트가 정크본드에 투자한 펀드에서 자금(약 7.9억 달러)의 인출을 동결하는 이례적 조치를 발표한 것이다. 또 11일에 미국의 한 헤지펀드가 정크본드에 대한 투자실패로 상환 정지를 발표한 것도 시장의 불안을 확대시켰다.
● 이와 더불어 미국경제의 펀드멘틀 자체가 취약하다. 2015년 미국의 수출 감소는 4.8%로 대공황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입은 저유가 영향으로 저년보다 3.1% 감소했다. 그 결과 무역적자 규모는 전년보다 4.6% 증가했다.
<유럽연합>
● 유로존과 유럽연합은 여전히 해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유로존은 최적통화지역 성립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채 정치적 프로젝트로 기획된 것이다. 그런 한계 때문에 경제위기가 왔을 때 유럽중앙은행이 미국 연준과 같은 소방수 역할을 하지 못해 왔다. 국채를 받고 본원통화를 공급하지 못한 것이다. 정치적 통합을 실현해서 재정통합과 은행시스템 통합을 하지 않고는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 이렇게 정치적 통합을 강화해야 할 때에 오히려 통합이 어려워지고 있다. 유로존은 남쪽과 북쪽의 경제력이 양극화되고 있어서 정치적 통합을 어렵게 하고 있다. 오히려 통합에 반대하는 극좌(손해 반대)·극우(퍼주기 반대) 세력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극우 세력의 준동은 난민문제와 테러문제로 더 심화되고 있다.
● 유로존뿐만 아니라 유럽연합 자체도 이완되고 있다. 영국은 유럽연합에서 탈퇴(Brexit 브렉시트)하는 문제로 씨름하고 있다. 영국은 이주민 복지혜택 제한, EU제정 법률 거부권, 비유로존 국가의 접근보장, 법무·내무 관련 사안 선택적 적용 존중 등을 요구해 왔다. 반면 유럽연합은 원칙적으로 반대의 입장을 취해 왔다. 그러나 브렉시트는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2월 초 영국과 유럽연합 사이에 영국이 유럽연합에 잔류하는 조건으로 영국의 자율권을 확대하는 내용의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합의안이 영국 국민투표에서 통과될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 유럽중앙은행은 2015년 3월부터 2016년 9월까지 월 600억 유로(총 1.14조 유로)의 양적완화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그와 함께 2014년 예금금리를 마이너스로 인하했고 최근에는 0.3%까지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로존의 경제성장률은 1%대 수준이고 물가상승률은 거의 0% 수준이다(지난 1월 0.4%). 지난 2월 초 드라기 총재는 “신흥국 경제성장 전망이 불확실한 가운데 유로존 경제에 하방 리스크가 증가하고 있다.”면서 추가 양적완화 정책을 펴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런 분위기를 놓고 경제분석가들은 ‘치명적 비관주의’라고 표현하고 있다.
● 영국 노동법 개악: 파업요건 강화와 대체인력 허용을 골자로 하는 노동법 개악이 추진되어 하원을 이미 통과하고(찬성 317 대 반대 284) 상원에서 심의 중이다. 집권 보수당의 사지드 자비드 기업장관은 “근로계층의 삶이 파업으로 방해받고 있다. 끝없는 파업의 위험을 중지시키겠다.”고 말하고 있다. 반면 제러미 코빈 노동당 당수는 “영국의 노동조합법은 이미 서유럽에서 가장 구속적이다. 일부 보수당 중진도 이 법안을 파시스트 독재의 것들로 비유한다.”고 응수했다. 영국 보수당 정부가 최우선 입법과제라며 2기 내각 출범 2개월 만인 작년 7월 의회에 제출한 ‘노동조합법 개정안’에 대한 여야의 평가다. 노조법 개정안은 파업 억제를 골자다. 보수당 1기 노동개혁은 재정 긴축의 하나로 공공부문 구조조정에 맞춰졌다. 이에 따라 영국 전체 취업자에서 공공부문 취업자가 2010년 21%에서 현재는 17%로 떨어졌다.(“<노동개혁> ‘노동유연성 세계 5위’ 영 정부, 격론 속 노조법 개정 추진” 「연합뉴스」 참조)
● 1월 18일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은 실업률이 10%를 넘는 자국 경제가 '비상상황'이라고 선언했다.
<일본>
● 일본은 1990년대 초 부동산과 주식 거품이 붕괴한 이래 25년 이상 장기복합불황의 늪에 빠져 있다. 10여 명의 수상이 바뀌면서 회복을 꾀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회복을 위해 적자재정으로 토건사업을 벌여온 온 결과 국가부채가 GDP의 250%에 이르고 있다. 세계 최고치다. 아베 정권이 들어서서 양적완화, 재정지출, 구조개혁이라는 3개의 화살로 경제를 회복시키겠다는 아베노믹스를 추진했으나 세계경제의 침체와 때 이른 소비세 인상이라는 정책 실패로 경제를 성장시키지도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지도 못했다. 드디어 지난 1월 29일 유럽에 이어 마이너스 금리를 채택했다.
● 일본은행은 마이너스 금리가 기대하는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에 추가적인 금리인하를 단행하겠다고 예고하고 있다. 일본은행은 물가상승률 목표 2%를 달성하고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2013년 4월부터 1년간 60~70조 엔의 자산을 사들이는 정책을 추진하다가 작년 10월 말에 연간 매입 자산을 80조 엔으로 확대하는 추가 양적완화를 취한 바 있다.
● 일본은 작년 12월 수출이 전년동기 대비 8.0%나 줄었다. 기업 실적도 악화되고 있다. 엔저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산유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의 상황이 악화되고 있고, 미국과 유럽 시장도 회복되지 않아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업 상황으로 은행 실적도 악화되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는 이런 은행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이다.
(나) 신흥시장
● 신흥시장이라는 말은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 같은 비교적 큰 규모의 자본주의 시장을 비롯하여 동남아국가연합(ASEAN)과 중남미 나라들과 같은 개발도상국들을 모두 포괄한다. 여기에 석유를 비롯하여 광물과 농수산물 등 일차산품을 생산하는 나라들을 모두 포괄하는지는 불분명하다. 여기서는 자원 생산국을 포함하여 선진자본주의 이외의 모든 자본주의 경제를 지칭하는 뜻으로 사용하겠다. 이 신흥국 경제권은 GDP규모 면에서 2013년에 이미 선진국을 추월했다.
<새로운 기관차 중국>
● 신흥시장은 디커플링(decoupling)이라는 말에서 보듯이 한동안 세계 대공황/대불황에서 벗어나 있는 듯이 보였다. 대표적인 나라가 중국이었다.
● 지금 그 중국이 경착륙 위험에 직면해 있다. 유수의 투기자본인 조지 소로스가 지금 중국 경착륙에 대해 도박을 하고 있다. 그는 1월 21일 다보스 경제포럼에서 “중국 경제의 경착륙은 사실상 피할 수 없다. 이는 전망이 아니라 현재 목격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원자재 가격 하락과 경쟁적 통화가치 절하, 중국경제 둔화 등이 세계적인 디플레이션을 야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소로스의 이런 발언이 없더라도 중국경제는 지금 매우 위험하다. 밖으로는 선진국과 신흥시장을 망라한 세계시장의 축소가, 안으로는 과잉투자로 인한 과잉시설과 부동산 거품 붕괴가 매우 위험하다. 막대한 부채를 바탕으로 한 중국의 투자중심 성장 모델이 한계를 맞은 것이다. 중국경제매체인 차이신(財信))은 지난 1월 체이신 제조업구매관리자지수(PMI)가 48.4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작년 2월 이후 11개월째 기준선인 50을 넘지 못한 것이다.(이 수치가 50을 밑돌면 경기위축, 웃돌면 경기확장을 의미한다.)
● 중국에서 지금 금융(주식, 채권)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성장둔화에다 거품붕괴로 위안화 가치가 절하될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에 달러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어서다. 이를 제어하고자 중국 당국은 대대적으로 역외시장에서 위안화를 매입하고 개인의 외환 매입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한편 공개시장조작으로 막대한 규모의 유동성을 공급하여 금융시장 진정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조치들은 위험요소를 안고 있다. 예컨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위안화를 너무 풀면 위안화의 추가 약세가 일어날 수 있다. 위안화 가치의 급락을 막기 위해 역외시장(홍콩)에서 위안화를 계속 매입하면 외환보유고가 급격히 줄어든다. 그래서 환투기세력이 공격하고 있는 홍콩 시장이 불안하다.
● 중국은 이런 붕괴를 막기 위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대표적인 과잉시설, 과잉생산 부문인 철강업계는 이미 구조조정에 들어가서 50만 여명의 노동자가 일시적인 귀휴에 들어갈 것이라고 한다.
<브릭스: 러시아, 브라질, 남아공, 인도>
● 러시아는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3.7%로 세계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올해 또한 유가가 배럴당 25달러 이하로 떨어지면서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러시아 경제는 2014년 시작된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대 러시아 경제 제재와 국제유가 폭락으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루블화 가치가 2년 사이에 반 토막 이하로 폭락하면서 물가도 폭등했다. 작년 12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연율 12.9%였다. 이런 속에서 석유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국가재정 또한 그 상태가 극히 나빠졌다. 러시아는 재정의 절반 가량을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 이에 최근 러시아는 국영 항공사 아에로플로트와 다이아몬드 광산기업 알로사, 석유회사 로스네프트와 바스네프트, 러시아철도, 조선사 소브콤프로트, VTB은행 등 7개를 매각하려 하고 있다.
● 브라질은 지금 공공부채가 늘면서 재정상태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재정수지는 국내총생산대비 2% 적자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브라질 중앙은행에 의하면 지난해 국내총생산 대비 공공부채 비율은 66.2%에 달했다. 이 은행은 올해 이 비율을 70.7%로 예상했다. 일반적으로 이 비율이 70%를 넘으면 국가신용등급 강등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본다. 국제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와 피치)는 작년 9월에 이미 브라질 국가신용등급을 투기등급으로 내렸다. 무디스도 투기등급 강등을 검토하고 있다. 한편 성장률은 2014년 마이너스 2% 성장에 이어 2015년에 마이너스 3~3.5% 성장을 기록했다. 산업생산은 21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이는 가운데 작년 11월의 경우 전년동기대비 12.4% 감소했다. 또 중국 성장둔화와 원자재 수입 감소로 헤알화 가치는 50% 가량 폭락하고 물가는 11%나 급등하여 스태그플레이션을 보였다. 금년 들어 헤알화 가치는 계속 폭락하고 있어 모라토리엄(채무 지불유예) 또는 디폴트(채무 불이행)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렇게 되자 다량의 달러 표시 채무를 가진 기업들의 헤알화 표시 채무가 급증했고, 이런 재무구조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브라질 국영석유회사인 페트로브라스를 비롯한 대기업들의 자산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부채에 의존해 성장해 온 자본축적 모델의 말로다.
● 아프리카 경제대국인 남아공이 브라질의 전철을 밟고 있다. 중국의 경기침체 및 원자재 수요 감소로 인한 원자재 값 하락으로 재정상황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고 성장 둔화로 소비와 일자리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전체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원자재의 가격 하락으로 3.4분기 성장률이 0.7%에 그쳤다. 이는 전년동기 대비로는 4.5%, 줄어든 실적이다. 이 나라 주력 산업인 광산의 침체로 실업률은 25%에 달하며 물가상승률도 4.5%에 이른다. 이런 펀드멘틀의 취약성과 미국의 금리인상을 예상한 달러 강세로 인한 자본이탈로 이 나라 통화인 랜드화의 가치가 급락하고 있다. 랜드화 가치는 작년 1년 동안 달러 대비 24%나 하락했다. 남아공 경제의 불안이 계속되자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작년 12월 남아공 국가신용등급을 투기등급 바로 위인 BBB-로 강등했다. 지난 10년 간 저금리로 막대한 달러 부채를 쌓았거나 자본을 투입하여 붕괴 위험에 처하고 있는 신흥국 그룹(브라질, 러시아, 터키)에 남아공도 가세하게 되었다.
● 인도는 브릭스(BRICS) 나라들 가운데 유일하게 호조를 보인다고 얘기돼 왔다. 심지어는 중국을 대신해 세계 자본주의의 기관차 노릇을 할 거라고 애기돼 왔다. 그러나 세계시장의 추락하는 속에서 인도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인도에서도 새해 들어 증시가 급락했고 환율이 급등했다. 이렇게 된 데는 중국 경기둔화로 촉발된 신흥국 금융시장의 불안이 큰 영향을 끼쳤지만 그것만이 아니라 인도 자체의 문제 또한 중첩되어 영향을 끼쳤다. 인도의 수출은 지난해 11월까지 12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였고 지난해 4월부터 11월 사이 수출은 17.2% 감소했다. 또 인도의 산업생산지수는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166.6을 보이며 전년 동월대비 3.2% 감소했다. 산업생산지수가 이 같은 감소폭을 보인 것은 2011년 10월 이후 처음이다.
<자원수출국>
● 선진자본주의권의 지속되는 불황과 중국의 성장률 하강에 따른 수요 축소로 석유를 비롯한 자원의 가격이 폭락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이들 나라의 국민경제가 공황 직전 상태에 있다. 대표적인 나라가 남미의 베네수엘라와 브라질,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와 남아공, 유라시아의 러시아 등이다. 이들의 국가부도(디폴트 또는 모라토리엄)는 시간문제다. 이 자원수출국들의 상황에 대해서는 브릭스 나라들을 고찰하면서 일부 언급했다.
● 유가하락으로 산유국들만이 위기에 처한 것이 아니다. 유가하락으로 초국적 에너지 기업들도 줄줄이 부도의 위기에 처해 있다. 영국의 메이저 석유업체인 BP는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이 1억 9600만 달러로 2014년 같은 기간에 비해 91%나 떨어졌다. 미국의 2위 업체인 세브론도 지난해 4분기에 5억 8800만 달러의 손실을 내 13년 만에 적자를 기록했다. 외환보유고가 바닥난 산유국들도 하나둘 외환지원을 요청하고 있어 디폴트 재현이 우려되고 있다. 세계 6위 석유수출국 나이지리아는 지난 2월 1일 세계은행(WB)과 아프리카개발은행(ADB)에 35억 달러의 긴급자금 대출을 요청했다. 아제르바이잔도 세계은행과 IMF에 40억 달러의 긴급자금 대출을 요청했다. 이들은 모두 유가하락으로 자국 통화가치가 급락하자 외환보유액을 이용해 환율 방어에 나서다가 외화가 바닥나 긴급자금을 요청하는 처지가 됐다. 시장 관계자들은 이 두 나라에 이어 베네수엘라와 브라질, 에콰도르, 앙골라 들이 조만간 긴급자금을 요청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이런 긴급요청과 함께 이들 산유국들은 초긴축 정책을 펴고 있다. 걸프 지역 산유국들은 부가가치세, 법인세, 소득세가 없는 무세금 정책을 포기하고 있다. 에너지 보조금을 폐지하거나 삭감하고 유류 값을 올리고 있다. 이로써 ‘세금이 없고 기름이 물만큼 싼’ 좋은 시절이 종말을 고하고 있다. 또한 자존심을 접고 알짜 자산 판매에 나서고 있다. 최대의 석유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자국의 원유생산을 도맡고 있는 아람코의 기업공개를 추진하고 있다. 아프리카 최대의 산유국인 나이지리아는 기록적인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최대 10억 달러 규모의 유로본드를 매각할 계획이라고 하다. 나이지리아는 수출의 대부분과 재정의 3분의 2를 석유에 의존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도 국유 에너지 기업의 자산을 매각해 자금을 확보할 계획이다. 또 앞서 얘기했듯이 러시아는 7개 대형 국영기업 매각을 추진하고 있고, 브라질의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그라드는 최근 151억 달러 규모의 자산을 내년 말까지 매각할 것이라고 밝혔다.
● 베네수엘라는 극히 위험하다. 지난해 국내총생산은 -10% 감소했다. 국가재정의 90%를 원유수출로 충당하는 베네수엘라는 재정수입이 68%나 감소하여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의 20%까지 늘어났다. 인플레이션은 140%를 넘었다. 볼리바르화 가치는 암시장에서 지난 1년 사이에 81% 떨어졌다. 공황을 방불케 하는 살인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이다. 이에 베네수엘라 정부는 지난 1월15일 전격적으로 ‘경제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베네수엘라는 러시아, 이란 등과 감산 협의를 위한 긴급회의를 추동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정치적 관계로 볼 때 성사되기 어려워 보인다. 이렇게 감산협상이 실패하여 수요부족과 공급과잉으로 유가가 계속 하락하면 베네수엘라는 디폴트가 아니라 혁명정부와 석유산업을 초국적 자본에 팔아넘기려는 부르주아 세력 사이에 내전 상태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석유공급 과잉은 이런 경제제재 해제와 미국의 석유수출 허용이 가세하면 더 심화될 것이다. 미 의회는 지난 연말 오일쇼크로 1975년 실시해 온 석유수출 금지를 해제하는 법을 확정했다.
● 유가하락은 산유국만 위기에 몰아넣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증시하락으로 직결되어 세계 금융시장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유가하락은 초국적 에너지 기업들의 수지를 악화시킬 뿐 아니라 산유국들로 하여금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석유달러를 회수하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세계적으로 물가와 실물생산이 동시에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을 재촉하고 있다. 석유가 하락은 지대를 줄여 기업과 가계의 이윤몫과 임금몫을 증가시킨다. 그러나 지금의 세계 경제는 임금몫이 다소 늘어도 소비를 크게 늘이지 못하고, 이윤몫이 늘어도 투자를 크게 늘리지 못하는 상황이다. 가계에 빚이 너무 많고 기업에 시설의 과잉이 너무 많아서다.
(다) 한국
● 한국 예외론은 성립하는가? G20회의를 주최하던 이명박 정권 당시 한때 그런 얘기가 있었으나 최근에 와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세계대공황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속에서 7% 경제성장과 10년 내 4만 달러 소득(747)을 공약하고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이 대한민국 정치의 수준이다. 그것도 부족해서 세계대불황의 한 가운데서 4% 성장률과 4만 달러 소득(474)을 공약하고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은 더욱 기이하다. 부정선거로 당선되었다고 해도 이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 2016년에 접어들면서 한국경제의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다. 성장률은 2012년, 2013년에 이어 2%대(2.6%)를 기록하고 있고, 물가상승률은 0%대를 기록하고 있다. 2015년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0.7% 상승했다. 지난해 초 담뱃값 인상에 따른 물가상승 효과(0.59% 포인트)를 빼면 사실상 물가상승률은 0.1%에 그친다. 이런 낮은 상승률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의 0.8%보다 낮은 것이며, 물가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65년 이후 최저치다. 저유가가 물가상승폭을 낮춘 핵심 원인이다. 국내 경기 부진과 증가가 더딘 것도 물가상승폭을 억제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위에 본 성장률 통계는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국내총생산의 절반을 차지하는 수출액이 2015년 연율로 8% 가까이 감소했는데(물량으로 0.4% 증가) 수출이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수출주도형 경제에서 전체 경제가 플러스 성장을 할 수 있는가? 정부 통계로도 제조업은 1.4% 성장에 그쳤다. 이런 상태에서 정부가 부동산 거품을 조성하고 코리아블랙프라이데이로 소비를 진작시키는 등 경기부양책을 펼쳤다고 해도 2.6% 성장했다는 통계를 경제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수치로 간주하기 어렵다. 중국 통계를 그렇게 간주하기 어렵듯이. 그런 의미에서 한국경제는 기술적으로는 아니지만 사실상 디플레이션 상태로 간주된다.
● 중국경제가 경착륙하지 않고 질서 있게 연착륙하더라도 한국경제는 위험하다. 안으로는 낮은 노동소득과 소비력으로 내수가 얼어붙어 있는데다 인위적으로 부양된 부동산 거품이 붕괴할 때 부채의 실질부담이 높아져서 소비력이 폭락하는 부채-디플레이션이 올 수 있다. 밖으로는 수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브릭스 나라들과 자원수출국들에서 경기가 줄줄이 추락하고 재정과 외환에서 연쇄부도 사태가 일어날 위험성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경제는 세계 자본주의 시장에 가장 깊이 통합되어 있는 경제이므로 세계 경제가 침체할 때 그 파급효과를 가장 직접적으로 그리고 가장 크게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세계적으로 디플레이션 악순환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자본주의는 1997년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다. 1월 수출액은 작년 대비 18.5%나 감소했다. 이번에는 단가만이 아니라 수출물량도 감소했다. 수출물량이 5.3% 감소했고, 수출단가가 14% 하락한 결과다. 2015년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4.2%를 기록했다. 1998년 이후 17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1981~1996년 8.4%에 달하던 가계소비 증가율은 2003~2014년 2.4%로 크게 감소했다.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비정규직과 해고되거나 은퇴한 노동자들의 취업형태인 영세 자영업자가 늘어나면서 초래된 결과다.
2. 이 위기의 경과와 원인 및 처방
1) 위기의 경과
● 이 위기는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 사태로, 이른바 미국 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IT 거품붕괴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직접적으로만 해도 미국 금융시장의 붕괴는 2006년 중반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거품 붕괴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로 인해 2007년 여름 세계적으로 신용경색이 오기 시작했으며, 2008년 3월 베어스턴스 같은 월가 유수의 투자은행이 파산했다.
● 이와 같이 투자은행들의 재정상태가 위험해지던 중에 리먼 브라더스, 메릴린치 등 거대 투자은행(월가 3,4위)과 AIG 같은 거대 보험회사들이 줄줄이 파산하면서 이른바 미국 발 금융위기가 초래되었다. 1,2위의 투자은행인 골드만 삭스와 모건 체이스도 일반은행을 포괄하는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여 각각 100억, 25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그러나 이 공황은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고 선진자본주의 권역 전체에서 동시에 진행되었다. 유럽의 많은 투자은행들도 월가에 투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영국도 2008년 2월 투자은행인 노던록 은행의 파산과 국유화에 이어 10월에는 500억 파운드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8개 은행을 부분-국유화했다.
● 이후 이 위기는 2010년경부터 유럽 여러 나라들의 재정위기로 심화되었다. 유럽 나라들은 위기에 처한 은행을 구제하기 위해 다량의 국채를 발행했는데, 이 국채들의 가격이 폭락하여(국채금리가 폭등하여) 더 이상 국채를 발행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런데 트로이카라 불리는 IMF(국제통화기금), ECB(유럽중앙은행), EU(유럽연합)으로 이루어진 채권단이, 특히 유럽중앙은행(ECB)의 실세인 독일이 미국의 중앙은행(Fed)처럼 이 국채들을 무조건 구입해 주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구제를 반대한 이유로 도덕적 해이를 들었지만 유럽연합 전체의 위기 극복보다 자신들이 보유한 채권의 회수를 우선시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이탈리아, 아일랜드 등 여러 나라들이 재정위기에 직면했으며, 그 가운데 그리스가 가장 심각했다. 이 과정에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그렉시트. Grexit)와 유로존의 붕괴 위험성까지 우려되었다. 결국 그리스의 좌파연합 시리자 정부가 강도 높은 긴축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트로이카가 그리스에 구제금융을 제공하여(탕감은 해 주지 않았다.) 그리스 국가부도와 그렉시트 위기를 봉합했다.
● 지금 이 위기는 미국 발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에 이어 제3라운드에 접어들고 있다. 이번 대공황 초기에 많은 부르주아 경제 전문가들은 탈 동조론(Decoupling)을 내세우면서 이번 위기가 선진국에서 발생했으며 신흥시장 나라들은 성장 동력이 활발하므로 이 동력에 의거, 세계 자본주의 경제가 머지않아 회복될 거라고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는 전례 없이 하나로 긴밀하게 통합되어 있다. 그 결과 선진자본주의 권이 장기간 회복되지 못하자 이 경제권에 소비재와 석유를 비롯한 1차 산품을 공급하던 신흥시장과 자원공급국들이 수출부진으로 인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수출부진은 수출 단가 폭락과 물량의 저하의 양면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이 대공황 3라운드는 이미 많이 진전되어 있는 과거형이고 또 현재진행형이다.
● 이러한 신흥시장의 침체와 붕괴는 세계시장의 축소에 기인한다. 2007년에 시작된 세계대공황의 파장이 지체되었지만 이들 경제권에 쇄도하고 있는 것이다. 즉 탈 동조론은 사실에 의해 부정되고 있다. 그러면 이 신흥시장의 후퇴와 붕괴는 거꾸로 선진자본주의 경제권에 동조를 일으키지 않을 것인가? 이번에도 일각에서는 또 탈(脫) 동조론을 펴고 있다. 선진자본주의 경제권에 별반 커다란 파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선진자본주의 권이 직간접적으로 이 신흥시장들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고 또 상품을 수출하고 있기 때문에 신흥시장의 후퇴와 붕괴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건 선진자본주의 경제권에 심각한 파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위에 보았듯이 이런 동조 효과는 이미 현실에서 작용하고 있다.
● 만약 이런 동조화가 작동한다면 이번에는 그야말로 전 지구적인 범위에서 공황과 불황이 도래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1930년대의 대공황/대불황처럼 금융부문과 함께 실물부문의 공황이 함께 맞물려 본격적인 파국이 초래될 것이다. 그 파국은 금융(자본)시장 및 부동산과 원자재 시장의 과잉투기 거품의 붕괴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2) 부르주아 계급의 원인진단과 처방
● 많은 부르주아경제학자들은 이 위기가 자본주의의 현재의 축적방식 또는 패러다임 때문에 일어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자본축적 방식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원인진단의 표현형태는 참으로 가지가지다. 대표적인 것들만 예로 들어보자.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21세기 자본론>의 저자인 피케티의 ‘세습 자본주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며 뉴욕 타임스 칼럼리스트인 폴 크루그만의 ‘사악한 자본주의’, 반세계화운동가 나오미 클라인의 ‘재난 자본주의’(Disaster capitalism), 『1945년 이후 자본주의』의 공동저자인 앤드류 글린 교수의 ‘고삐 풀린 자본주의’, casino 자본주의, 주주 자본주의, 미국식의 월스트리트 자본주의 등등.
● 이들의 공통된 견해는 이번 경제위기가 영미 식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축적 방식 내지 축적체제에 그 원인이 있을 뿐, 자본주의 그 자체에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이번 위기에 대해 자본주의가 아닌 그 무엇이 아니라 자본주의이되 신자유주의 축적방식이 아닌 다른 축적방식을 처방으로 내놓고 있다. 그 대안적 축적방식의 이름 또한 가지가지다.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라는 책에서 주장하는 ‘복지자본주의’, 장하성 교수의 ‘정의로운 자본주의’, ‘괜찮은(decent) 자본주의’(세바스티안 둘리엔 외), ‘포용적 자본주의’(EL 로스차일드의 여성 최고경영자 린 포스터 드로스차일드), ‘다른 자본주의’(필립 코틀러) 등. 이렇게 이름은 다르지만 내용적으로는 공통적으로 시장과 함께 국가가 큰 경제 주체가 되어 자본의 이윤추구를 규제하고 노동자에게 복지를 제공함으로써 불평등을 완화한 자본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 이처럼 거시경제적인 데서 원인을 찾지 않고 미시적으로 기업이나 기업가 지나치게 탐욕을 추구한 결과 양극화가 일어나고 위기가 왔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앞의 것이 제도나 구조에 원인이 있다고 본다면 이것은 개인의 의식과 행위에 원인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대안은 자본주의 기업이나 기업가가 가치관이나 생활방식을 바꾸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이윤을 자본으로 전환시키지만 말고 가난한 자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자본주의 4.0’(시사주간지 타임의 에디터 아나톨리 칼레츠키)이 있다. 이것은 <조선일보>가 대대적으로 선전한 것이기도 하고, 같은 내용을 다른 용어(‘창조적 자본주의’)로 세계적인 거부인 마이크로 소프트 회장 빌 게이츠가 2008년 다보스 포럼에서 주창한 것이기도 하다. 이런 자선은 금융투기의 대명사인 조지 소로스나 워런 버핏 같은 투기꾼들이 이미 실천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을 대안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의 용어는 다양하다. ‘박애 자본주의’(매튜 비숍과 마이클 그린), ‘따뜻한 자본주의’, ‘기독교 자본주의’, ‘착한 자본주의’, ‘친절한 자본주의’ 등등. 이런 처방들은 병 주고 약 주자는 데도 미달하는, 병 주고 어루만져주자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 여기에서 조금 나가서 기업경영 방식을 바꾸는 것을 처방으로 내놓은 의사들도 있다. 기업이 이윤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기업경영을 변화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의 이익이나 공유가치를 창조(Creating Shared Value)하는 '자본주의 5.0'(조동성 서울대 교수)이 그런 경우다. 그러나 공동이익이나 공유가치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윤을 추구하는 점에서 여전히 자본주의이다. 생명 가치를 중시하자는 이어령의 ‘생명자본주의’, 고객의 이해관계를 중시하는 ‘깨어 있는 자본주의’(concious capitalism. 홀푸드마킷의 창업자 존 매키), 주주만이 아니라 노동자도 챙기자는 ‘구성원 자본주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등이 이런 종류에 속한다.
● 그 밖에 ‘산촌 자본주의’(모타니 고스케 외), ‘골목 자본주의’, ‘홍익 자본주의’(대통령 후보 강지원), ‘천재 자본주의’(진화인류학자 하워드 블룸), ‘새로운 자본주의’(우메어 하크) 등 별의별 수식어를 붙인 가진 자본주의가 주창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대안들은 모두 사람이나 연합한 인간들이 아니라 물질적 존재인 자본의 주인인 자본주의를 폐지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시키자고 주장하는 점에서 한결같다.
● 그러면 이런 원인진단과 처방은 어느 정도 객관적 타당성이 있는가? 첫 번째의 거시경제적 처방은 크게 보아 케인스주의 제도·정책이나 유럽식의 사회민주주의 제도·정책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세계경제 대공황/대불황에서 이 나라들도 예외가 아니다. 재정위기에 처한 남유럽 나라들도 사회민주주의 정책을 펴 오지 않았는가? 사회민주주의의 모범생이라 할 북유럽의 스웨덴이나 덴마크는 과연 이번 위기에서 비껴나 있는가? 복지국가의 원조인 영국은 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가?
● 두 번째 처방인 자선은 비판할 가치도 없다. 세 번째 처방인 개별 기업이나 자본이 이윤만을 추구하지 말고 구성원과 고객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나 더 넓게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자는 대안은 새로운 점이 있다. 그러나 개별 자본이 진정으로 이윤획득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목적으로 한다면 기업의 소유·경영권을 사적으로 독점할 이유가 없다. 삼성의 기업이념이 ‘21세기 초일류기업으로 인류사회에 공헌’이라고 되어 있지만 반도체 백혈병 사건에서 보듯이 사회에 공헌하기는커녕 사회적 책임조차 방기해 왔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려면 그 주체도 사회적이어야 하고 따라서 사회적으로 소유·경영되어야 할 것이며 자본주의를 넘어서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진정성이 없는 이야기이고, 초국적 기업들의 홍보전략에 불과하다.
3) 진정한 원인과 처방
● 자본가들이 공론장인 세계경제포럼에서 이미 2012년 첫 프로그램은 경제 전망 세션이 아니라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토론회’였다. 거기에서 자본가들은 이번 경제위기의 원인이 현존 자본주의에 있다는 진단을 내린 바 있다. 그래서 <매경>은 이 해 5월 다보스포럼을 보고하는 책을 내면서 『다보스 포럼, 자본주의를 버리다』라고 이름을 달았다. 그해 6월 강만수 전 재경부장관은 이번 위기가 1930년대 "대공황보다 더 어렵고 오래 갈 것이며, ... 어떤 이는 자본주의는 끝났다고 한다."라고 발언하여 시선을 끌었다. 물론 이들 모두 자본주의의 지속 불가능성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고, 이번 경제위기는 현존 자본주의의 모순에서 발생한 위기이며 따라서 현존 자본주의는 지속 불가능하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들은 현존 자본주의 패러다임에 대한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 자본주의에는 착취라는 불의가 존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축적이라는 숙명이 내재하고 있다. 자본은 축적하지 않고는 존립할 수 없다. "축적하라 축적하라 이것이 모세이며 예언자이다."(<자본>1권 24장) 이렇게 자본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자본주의는 근원적으로 과잉축적과 과잉생산의 문제를 발생시킨다. 자본을 축적하게 되면 즉 이윤을 자본으로 전환시키게 되면 노동자와 자본가가 소비하는 부분은 총생산물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자본주의 경제는 사회적 생산을 사적으로 수행하기 때문에 무정부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에 따라 주기적으로 경기변동이 발생한다. 그리고 위의 두 가지 계기가 중첩될 때 공황과 불황이 발생한다. 그런데 자본이 축적하는 과정에서 장기적으로 볼 때 한편에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와 그에 따른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가 진행되며, 다른 한편에서는 이것을 상쇄하고자 착취를 강화하는 노력이 경주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노동자의 궁핍화와 빈부양극화가 심화된다. 이런 경향들이 장기간에 걸쳐 누적될 때 공황을 계기로 단순한 불황이 아니라 구조적 불황, 구조적 위기가 도래한다. 물론 그 구조적 위기를 낳는 구조적 모순의 구체적 내용은 매개의 위기 때마다 다르다. 이른바 공급 측인 이윤율 저하에 방점이 있을 수도 있고(1970년대의 경우) 수요 측인 노동자의 궁핍화에 방점이 있을 수 있다.(현 위기의 경우) 특히 구조적 위기를 낳는 두 가지 모순이 중첩되고 그 심도가 깊을 때 대공황과 대불황이 발생한다. 이런 대불황은 경제내적 방법으로는 극복되지 않는다.
● 이런 대공황에 도달하면 자본주의에는 그야말로 대책이 없는 상황이 초래된다. 지금이 바로 그런 상황이다.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10년이 넘게 불황이 계속되고 있고, 자본주의 사상 초유의 비정상적인 양적완화와 제로금리로도 부족하여 마이너스 금리라는 극약 처방이 행해지고 있다. 또 이런 치명적인 처방에도 불구하고 위기는 계속 확대·심화되어 거시경제적으로는 경제성장과 물가가 동시에 마이너스를 보이는 디플레이션 위험이, 미시경제적으로는 은행과 기업의 줄 파산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자본주의 경제에서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의 파산 위험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고용과 임금을 손쉽게 삭감하려는 노동시장 구조개악이 추진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노동조합의 파업권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입법이 시도되고 있다.
● 한편 국가부채 비중이 높은 나라들에서 국가부도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통화를 발행하여 재정적자를 지원할 수 없는 유로존 나라들에서 그러하다. 베네수엘라, 나이지리아 같은 산유국들의 경우 재정 수입 급감으로 국가재정 파산 위험이 높이지고 있다. 또 국제수지 악화로 환율이 폭등하고 인플레이션이 폭주하며 외국자본이 빠져 나가고 외환이 고갈되는 국가 디폴트 위기가 높아지고 있다.
● 그러므로 이 위기에 대한 참다운 대안은 자본주의 안에서만 찾아서는 안 된다. 그 동안에도 이미 자본주의 너머에서 경제의 대안을 구해야 한다는 논의들이 있어 왔다. 앙드레 고르는 『에콜로지카』라는 책에서 탈 성장의 생태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로나 골드는 ‘사랑과 나눔의 『공유경제』’를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 공유경제 공동체에서는 도움을 청하는 행위가 부끄러운 행위가 아니며 오히려 공동체에서 ‘나눔의 장’을 만드는 긍정적인 행위라고 의미를 부여한다고 한다. 또 유명한 미래학자인 제러미 리프킨은 2008년 금융위기로 2차 산업혁명이 종말을 고한 이후 자본주의가 쇠퇴하고 사물인터넷에 기반한 협력적 공유경제의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 대공황』의 저자 라비 바트라는 대공황과 전쟁을 거친 다음 동양사상에 입각한 사회시스템이 등장하고 인류의 황금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 사상가들의 대안이나 전망은 아직 큰 동의를 얻지는 못하고 있다. 유토피아적이기 때문이다.
● 하지만 이들은 대안이나 전망을 이미 실패한 자본주의 내부가 아니라 그 너머에서 구하려 하고 있는 점에서, 부후한 자본주의에 대한 변호론이 아니라는 점에서 진정성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진정성이 있고 현실성도 있는 대안인 사회주의가 본격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때다.
● 자본주의의 대안에 대해 검토하기에 앞서 자본주의의 위기가 어떤 사태를 만들어 낼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는 역사적 경제형태로서의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물질적 존재인 자본주의로서는 사람들의 경제적 삶이 정상적으로 영위되지 못하면서 지금처럼 다른 패러다임이나 다른 경제형태로 대체되지도 못할 때 자신의 존속을 위해 파괴적인 방향으로 나가게 된다. 안으로 자유민주주의에서 파시즘으로, 밖으로는 전쟁으로. 이것은 1930년대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에서 이미 경험된 바 있다. 이런 방향으로의 사태 전개는 이미 진행 중이다. 세계적으로 극우 정치세력이 약진하고 있다. 2월 1일자 <조선일보>는 히틀러의 『나의 투쟁』 책 광고를 전면광고로 실었다. 박정희에 관한 책 『박정희 경제강국 18년』광고와 함께! 또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약소국들에 대한 침략전쟁이 확대되고 있고, 선발 제국주의 나라들의 후발 자본주의 강대국들을 향한 패권 쟁탈전이 격화되고 있다. 경제위기가 더욱 악화되어 제2차 추락이 일어나 공황이 전 지구적으로 동시에 진행되고, 또 부동산과 금융의 거품 붕괴만이 아니라 실물경제의 거품 붕괴까지 겹쳐서 진행될 경우 이 같은 파괴적 힘들이 대대적으로 방출될 것이다.
3. 노동운동이 나아갈 길
● 이러한 대공황/대불황 사태로 인한 피해자와 희생자는 한 마디로 말해 노동계급이다. 위기에 의한 고통은 계급적으로 다르게 부담된다. 고통분담은 허구다.
● 노동자가 계급적으로 결집하여 단결하지 않고는, 기업별이든 산업별이든 총연합이든 그 어떤 단결도 총자본에 대해 유효한 대응력이 되지 못한다. 계급은 최대한 넓게 잡아야 한다. 흙수저만이 아니라 동수저, 은수저도 임금노동자라면 프롤레타리아계급이다.
● 한국 노동계급 운동의 일차적 과제는 민간파시즘을 저지·분쇄하는 것이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실현하되 기존의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보수적 태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런 부르주아 민주주의 또는 부드러운 파시즘 하에서 절대다수 노동자들은 무권리 상태였다. 대안의 민주주의는 부드러운 파시즘에 불과한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아니라 진정한 민주주의인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여야 할 것이다. 노동계급의 권력인 동시에 의회주의를 극복한, 노동대중의 참여와 결정이 보장되는, 민주주의여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노동자의 단결의 자유가 보편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개별 사용자를 상대로 한 기업 내의 파업만이 아니라 정권과 정부를 상대로 하는 정치파업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노동조합은 정치에 관한 한 선거와 투표의 자유만 허락받고 있다. 2016, 2017년 권력교체기에 이런 정치혁명을 실현하지 못하면 한국의 노동계급은 민간파쇼 체제 안에서 오랜 겨울을 겪게 될 것이다.
● 이런 정치지형의 혁명적 변화를 기초로 해서 천민자본주의 경제와 사회를 변혁하는 길로 전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독점재벌이 해체되어야 할 것이다. 그 다음의 전진은 대중의 계급의식과 역량이 발전하는 정도에 따라 역동적으로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런 담대한 도전 없이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려고 해 봐야 지켜질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의 이러저런 축적방식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위기 상황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부르주아계급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연명을 위한 수단으로 파시즘과 전쟁을 마구 휘두르는 것이다.
● 그러므로 이제 노동운동은 민주화 이후 한 동안 품속에만 간직해 두었던 노동해방·인간해방의 기치를 다시 꺼내 들어야만 한다. 지금이 바로 그렇게 할 때다.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