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깨어나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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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15년 12월 14일 5:54 오후
현 정권의 증세는 없다……
이 말이 현 정권의 정체성을 모두 대변한다고 보면 된다. 현 정권을 알 수 있는 최고의 키워드란 얘기다. 그러면서도 서민들이
느껴야 하는 체감 증세는 분명하게 있었다. 물불 안 가리고 거두는 상품과 서비스들에 붙는 간접세중심의
증세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작년의 연말정산 파동을 통해서도 그 정체성의 진실이 확인 됐으며, 이 과정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동의가 있었음도 확인 됐다. 이를 통해
현 정권과 새민련의 진정한 색이 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증세 하지 않음은 초기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자 즉, 보수들에게 있어선 최고의 선물인 것이다. 지금과 같이 부가 극도로
편중된 상태에서의 증세는 곧 가진자들의 부담으로 돌아간다고 보면 틀림 없다. 상위 10% 계층이 세금의 2/3 이상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증세는 곧 그들의 부담이 되는 것이다.
이런 얘길 할 수도 있다. 세금이 줄면 없는 자들도 좋지 않느냐 라는 생각인 것이다. 틀리진
않다. 하지만 세금이 늘면 이에 따라 늘어나는 복지향상에 비해 증세 액수는 크지 않다는 것이다. 복지향상으로 인한 혜택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세는 커녕 우린 노동자들에게 많은 증세가 있었다.
보수란? 초기자본주의
즉,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자들이다. 시장을 우선시 하고
정부의 권한을 최소화하여 세금을 적게 내길 원하며 결과적으로 복지축소의 길을 걷게 한다. 복지 혜택이
줄어든 상태에서의 노동자들은 줄 세우기식 관리 대상자로 전락하여 비 인간적이고 비 문화적인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해고는 곧 사망을 의미하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하라는 대로 다 해야 하기 때문이며, 해직 후 정부로부터의 지원도 미미하기 때문이다. 진흙탕 싸움화된
정글과 같은 시장에서 사실 승자는 이미 현 기득권 층으로 지정돼 있다는 것이며, 단지 시장은 그것을
합리화 시켜주기 위한 과정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과 시간이 지속되다 보면 부의 양극화 현상이
발생한다. 계속되는 기업의 구조조정과 합리화 작업으로 노동자의 고용불안정과 소득 감소현상이 필연적으로
발생돼 소비가 줄고 이어 생산이 줄어 기업이 도산하고 실업자가 양산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게 되면서 경제성장이 2.5%아래로 내려가게 되면 이는 경제 구성 세포들이 죽어가서 그 동력마저 상실되는 심각한 지경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이를 두고 뉴스에 자주 등장한다
진보란? 증세를
우선으로 한다. 증세를 하면 결국 가진 자들이 세금을 많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 거둬들인 세금은 부의 분배와 복지 향상을 위해 사용된다. 이를
실천한 게 바로 신자유주의가 들어서기 전의 후기자본주의다. 1929년 대 공황을 겪으면서 케인즈에 의해
도입된 개념인 것이다. 이 체제 하에선 시장보다는 정부의 역할이 강조된다.
우리나라를 보자! 새누리당은
저금리로 돈을 풀어 전세를 월세로 전환시키면서 무주택자로 하여금 급등한 분양아파트를 사도록 토끼몰이를 하였다. 월세를
내느니 더 싼 이자를 내면서 이 참에 집도 마련하겠다는 생각을 유도했으며, 감세정책을 표방했으면서도
노동자들에겐 연말정산 충격을 안겨줬던 것이다. 이것도 모자라 노동악법을 들고 나와 노동자의 해고를 기업
마음대로 하게 하려 하니 한참 밑도는 수준 이하의 관련 복지로는 노동자들에겐 죽으라는 말과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새민련 또한 새누리2중대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였다. 연말정산 파동 관련 법을 조용하게 통과시켜 줬다는 점에서 그 감출 수 없는 보수
근성을 보여준 것이다. 이 사실로 새누리당 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일종의 배신감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슈화라도 시켰으면 시위라도 했을 텐데 그 기회마저 없애버린 당시 새민련을 용서할 수 없다.
카드 빚을 못 갚고 생활 비가 없어 자살한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을 보고 보수와 진보의 시각 차는 현격하다.
보수는 이를 두고 개인의 준비부족과 불찰을 이유로 삼는다. 하지만 진보는 사회가 잘못돼 발생한 문제라고 얘기를 한다.
자본가가 보수를, 그리고
노동자가 진보를 선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본가가 진보를 선택하는 것을 우린 건전한 보수라
부른다. 하지만 노동자가 보수를 선택하는 것은 설명할 수 없는 이해 불가한 사항이라고 한다. 하지만 무지라는 말로 설명이 가능하다. 그래서 극 보수주의자들은
그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국민들의 귀와 눈을 가리게 하고 더하여 세뇌까지 시도한다. 이를 위해 언론을
통제할 뿐만 아니라 줄 세우기를 강화하여 인터넷마저 접할 시간과 여유를 주지 않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는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는 대상이 아니다. 시기에 맞춰 국민투표로 이를 선택하면 바로 복지선진국가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극 보수와 극 진보까지 포함되면 안 된다.
적당한 줄세우기는 경쟁력강화로 이어진다. 과도한 분배는 거꾸로 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가난을 불러올 수 있다. 그러니
상황에 따라 진보와 보수는 선택돼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나? 이젠 스스로 그 정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린 지금 노동조합을 강화시켜 복지를 통한 분배 실현에
총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곧 우리의 경제가 망할 수밖에 없는 절대 절명의 기로에 서 있다. 가진자의 욕심이
극한을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노동자 권리 확보는 곧 대한민국을 구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