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유출 위험 있는데도…스마트폰에 ‘앱’ 설치 안했다고 징계

개인정보 유출 위험 있는데도…스마트폰에 ‘앱’ 설치 안했다고 징계

등록 :2015-10-07 20:03수정 :2015-10-07 21:46

 

피죤·KT, 직원들에 위치앱 설치요구
거부하자 출장비 미지급·1개월 정직
피죤 영업직 노동자 김아무개씨는 지난 7월 회사 쪽에서 위치정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인 ‘에이아르(AR) 시스템’ 설치를 요구받았다. 회사 쪽에서 직원이 어느 거래처에 몇 시에 방문해 몇 시까지 머물렀는지 파악할 수 있는 앱이었다. 30여명의 영업직 노동자 중 노동조합원인 5명은 이를 거절했다. 김씨는 “실시간 위치정보나 통화내역 등 개인정보가 얼마나 빠져나갈지 알 수 없어 불안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회사는 김씨가 앱 설치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3개월 출장비 90여만원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위치정보 등 노동자의 개인정보에 회사가 접근할 수 있는 특정한 앱 설치 요구는 피죤만의 일이 아니다. 케이티(KT)는 지난 6월 회사의 앱 설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아무개씨에 대해 “성실의무를 위반했다”며 1개월 정직의 징계를 확정했다. 케이티도 지난해 10월 이씨에게 품질 측정 업무를 위한 앱 설치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씨는 앱을 설치하려고 하자 통화 정보, 달력, 주소록, 사진 등 업무와 관계없는 휴대전화 정보까지 접근을 허용한다는 공지를 보고 불안감에 앱을 설치하지 않았다. 앱을 설치하지 않아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던 이씨에 대해 회사는 1개월 정직 징계를 결정했다. 이씨는 정직 무효 확인 소송을 준비중이다.

이에 대해 피죤 관계자는 “직원들에 한해 자유로운 출퇴근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자는 것으로 사생활 침해 위험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케이티 관계자도 “무선통신 품질 측정 업무를 위해 필요한 앱으로 통상적인 앱 설치 때 요구하는 수준이고 업무 이외에 어떠한 개인정보도 수집하지 않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정책활동가는 “일반 앱은 당사자가 설치 여부를 결정할 선택권이 있지만 노사관계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는 그렇지 못하다”며 “노동자의 동의를 내세워 회사가 개인정보를 필요에 따라 열람할 위험이 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논란이 커지자 민주노총, 진보네트워크센터,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은 7일 기자회견을 열어 노동자의 정보인권 침해 우려를 제기하고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개인정보보호법은 본인의 동의 없는 개인정보 수집을 금지하고 있으나 현실에선 ‘을’인 노동자가 ‘갑’인 회사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진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특정 앱을 설치하려면 개인이 아닌 노조나 노동자의 집단적 동의를 얻게 하고, 고용노동부의 관리감독을 강화하도록 관련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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