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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의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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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13일 11:57 오전
배신의 정치, 사정정국, 공안통치와 그 귀결
김승호(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 대표)
‘배신의 정치’라는 말이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달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손수 작성한 원고를 읽으면서 사용한 말이다. “정치적으로 선거수단으로 삼아서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긴 배신의 정치” 운운 한 것이다. 이 모습을 보며 생각난 말이 “사돈 남 말 한다”는 옛말이었다.
박근혜 정권은 2012년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을 그동안의 양적 성장에서 질적 발전으로 전환하고, 성장의 온기가 온 국민에게 골고루 퍼지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제민주화를 실현해야 한다고 굳게 믿습니다. 국민 여러분과 함께 경제민주화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당의 색깔을 빨간색으로 바꿨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이 약속을 파기했고, 이 경제민주화를 뒷받침 했던 김종인 씨는 박 대통령 곁을 떠났다. 이렇게 박 대통령은 국민을 철저하게 배신했다. 그러므로 ‘배신의 정치’의 주인공은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아니라 박 대통령 자신이다.
박근혜 정권은 지난해 세월호 사태로 위기를 겪었다. 올해 들어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꺼낸 카드가 사정정국이다. 간신히 국무총리를 인선한 후 박근혜 정권은 이완구 총리로 하여금 사정의 칼날을 뽑게 했다. 그 첫 번째 대상으로 지목된 인물이 성완종이었다. 그는 억울하다면서 자살했으며, 자기가 자금을 준 사람들의 명단을 적은 메모를 남겼다. 그로 인해서 이완구 총리와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검찰 조사를 받았으나 구속되거나 처벌받지 않았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조사도 받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국무총리 자리에 경찰 출신 이완구 다음에 검찰 출신 황교안 법무장관을 승진, 임명했다. 온갖 비리의혹이 있었음에도 간신히 청문회를 통과한 황교안 총리는 취임 일성으로 “부패척결은 성역 없이 이뤄질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는 “반부패 개혁을 확실하게 추진해 우리나라가 올바른 국가로 성숙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자생하는 구조를 과감하게 제거하겠다”고 밝혔다. 이완종 총리가 하려다가 실패한 사정정국을 계속 밀고 가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황교안 국무총리의 그 말을 믿게 하려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비롯해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부터 철저하게 수사해서 처벌해야 한다. 더불어 부패 중의 부패인 대선자금부터 수사해야 한다.
그러므로 ‘배신의 정치’니 ‘부패척결’이니 하고 목청을 높이고 있지만 국민들에게는 적반하장소리로 들린다. 그 결과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급락하고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 기관의 발표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고 보는지 잘못 수행하고 있다고 보는지 질문한 결과 32%가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59%는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8%는 의견을 유보했다. 20대에서는 긍정 대 부정이 9% 대 80%였고, 30대에서는 16% 대 78%, 40대에서는 26% 대 63%, 50대에서는 42% 대 51%였다. 60세 이상에서만 긍정이 부정보다 많아서 63% 대 29%였다.
이 수치를 어떻게 독해해야 할까. 국민의 절대다수가 이 정권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은 하나마나 한 말이다. 젊은 세대일수록 긍정이 낮고 20대에서는 극도로 긍정이 낮은 것은 노동계급의 자녀들의 거의 전부가 이 정권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즉 노동계급의 의식상태가 청년 세대의 의식상태라는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고 읽어야 한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은 노동계급에 대해 공안통치를 실행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은 며칠 전 408일 동안의 굴뚝 농성을 마치고 땅을 밟은 스타케미칼 차광호 씨를 구속시키려 했다. 기자들의 인터뷰에도 응하지 못하게 입을 틀어막고, 폭력적으로 구급차에 밀어 넣고, 경찰이 지정한 병원에서 고작 30분 검진한 뒤 “건강상 아무 문제가 없다”는 의사의 판정을 받아내고는 경찰서 유치장에 가뒀다. 경찰은 검진하러 데려간 병원에서도 수갑을 풀지 않다가 동료들과 의사의 항의를 받았다. 그는 지금 체중이 많이 빠져서 몰라보게 여윈 모습이다. 가슴에 가끔 통증이 있고, 심리적으로도 치료를 요한다.
다행히 법원 실질심사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돼 그는 지금 구금에서 풀려나 병원에서 정밀검진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검찰이 차광호 씨의 구속을 강하게 추진한 사실이 확인됐다. 차씨만이 아니라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민주노총 대구본부장과 사무처장, 건설노조 대구지부장 등이 최근 구속됐다. 이에 이 지역 노동자들은 박근혜 정권의 정치행태를 공안통치라고 부르고 있다.
공안통치의 말로는 항상 비극적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김영삼 의원을 제명하고 부마사태를 무력 진압하려다가 궁정동 안가에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죽음을 맞았다. 공안통치와 함께 유신통치도 끝장났다.
전두환 정권은 1986년 말 ~ 87년 초 공안통치를 펴다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을 일으켰고, 결국 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5공은 막을 내렸다. 노태우 정권 역시 1991년 초 공안통치를 펼치다 명지대 학생 강경대 군을 죽게 했고, 한진중공업노조 박창수 위원장을 죽였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그 후과로 김영삼 씨에게 정권을 물려줘야 했고, 6공도 군부독재도 끝장이 났다. 박근혜 정권도 다르지 않다. 공안통치를 계속한다면 말로는 비극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