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 ‘쪼개기 후원’ KT법인 위헌 신청 ‘기각’···法 “정경유착 단절 위한 것”
작성자: 최종관리자 | 조회: 149회 | 작성: 2023년 2월 10일 10:43 오후‘쪼개기 후원’ KT법인 위헌 신청 ‘기각’···法 “정경유착 단절 위한 것”
- 주재한 기자(jjh@sisajournal-e.com)
- 승인 2023.02.10 16:35
“법인에 유리한 활동한 정치인 선거 통해 책임 물을 수 있다”는 KT 주장에 “설득력 떨어진 옛날 논리” 일침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항소심도 벌금 1000만원 ‘유죄’ 판결
구현모 대표도 정치자금법 조항 위헌법률심판 제청한 바 있어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비자금을 조성해 국회의원들에게 ‘쪼개기 후원’을 한 혐의로 기소된 KT가 법인의 정치자금을 전면적으로 금지한 정치자금법 조항은 위헌이라며 제기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정경유착을 막기 위한 입법 배경과 헌법적 원칙을 설명하면서, 1심과 마찬가지로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이규홍 조광국 이지영)는 10일 KT법인이 정치자금법 제31조 2항이 위헌이라며 제기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기각했다. 이 조항은 ‘누구든지 국내․외의 법인 또는 단체와 관련된 자금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KT는 이 조항이 법인의 정치자금 기부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형사처벌하고 있다며, 이는 법인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 결사의자유, 정당 활동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할 뿐 아니라 명확성과 평등성의 원칙에도 반해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원심은 위헌·무효인 조항을 전제로 유죄로 판단했다며 이는 법리를 오해해 판단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법인의 정치자금기부 통한 정치활동이 민주적 의사형성 과정을 왜곡하거나 선거의 공정을 해하는 것을 방지하고, 1인 1표 1가치라는 민주주의 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며 “법인 구성원의 의사에 반하는 정치자금기부로 법인 구성원의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는 것을 방지하고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 정당 운영의 투명성 재고 측면에서도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법인이 내부의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을 거쳐 기부를 할 수 있다’는 KT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법인, 특히 정치적 영향력 큰 재벌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기업집단의 특성을 살펴보면 주식 소유가 특정한 주주나 가족 집단에 집중돼있고 총수 개인 또는 가족이 기업집단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드러난 정경유착 비리가 대부분 재벌그룹 총수의 자의적 의사결정과정에 비롯된 것에 비춰보면 법인의 정치자금 기부 과정 논의가 기업의 내부적·민주적 의사결정을 거쳤다고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특히 재판부는 ‘법인에게 유리하게 입법 활동을 한 정치인의 경우 다음 선거를 통해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KT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 옛날의 논리다”고 꼬집었다.
재판부는 “전통적 정치적 해결 과정이나 선거를 통해서 심판하는 그러한 과정은 오랜 기간 지속돼온 불법적 정치 자금 제공 관행으로 상당 부분 무력화됐다”며 “이를 근절하기 위해 강력한 입법 조치 필요하다는 전국민적 공감대는 2002년 특정 사건을 기화로 형성되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서 국회가 스스로가 법인의 정치자금 기부를 전면으로 금지한 조항을 입법하게 됐다”며 “이러한 입법 과정을 보면 정책적으로 (정경유착을 막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이미 설득력 떨어진 옛날의 논리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과거 같은 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을 인용해 법인의 특수성과 개인의 상대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국가권력을 개인이 악용한 과거의 일부 경험, 당선된 후보자가 자기에게 크게 기여한 단체나 법인에게 이익을 준 경험 등을 볼 때 개인이 법인과의 경쟁에서 자신의 의사를 온전히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며 “법인의 지속성, 개인에 비해 강한 자금 동원력을 고려할 때 모든 법인을 규제 대상으로 삼는 것이 입법의 필요 범위를 넘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 “정치자금 수수가 부정부패와 연결됐던 과거의 통렬한 반성에서 입법이 비롯된 것이므로 입법자의 자의적 판단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법률이 침해최소성 원칙을 위배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법인의 정치자금 기부를 전면적으로 금지한 외국 입법례가 없다는 KT측 지적에 대해서도 “각 나라의 정치풍토나 제도, 국내기업의 특성에 따라 맞춤형으로 정해질 부분이다”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울러 법익의 균형성 문제에 대해서도 “법인의 정치자금 기부를 제한하더라도 법인은 국고보조금이나 여러 제도를 통해 정당활동의 자유를 보호받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관련된’ 부분이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대법원은 법인이 기부 자금 모집·조성에 주도적·적극적으로 관여함으로써 모집·조성된 자금을 법인이 처분할 수 있거나 적어도 이와 동일시 할 수 있을 정도의 자금이어야만 법인과 관련된 자금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며 “법률적 해석으로 명확성 원칙 문제를 해결해 왔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정치자금법 31조2항에 대한 KT의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기각했다. 나아가 31조 1항(외국인, 국내·외의 법인 또는 단체는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다)에 대한 KT의 위헌 주장은 ‘각하’했다.
재판부는 공소가 제기되지 않은 법률에 대한 위헌 여부는 당해 형사사건의 전제가 될 수 없으며, 이 형사사건은 특히 법인이 직접 정치 자금을 기부해 기소된 게 아닌, 정치자금법 단서 조항에 따라 임직원의 위법행위로 법인이 기소된 사건으로 전제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1심 판결에 대한 양형부당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원심은 직접적 위반자인 공동 피고인들의 여러 정상 부분, 법인의 자금 운용 상황, 정치자금 기부 방법 등을 따져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며 “이 양형이 부당하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KT 전직 임원 맹아무개 등 4명은 법인 자금으로 상품권을 매입한 뒤 되팔아 현금화하는 방식으로 비자금 11억5000만원의 부외자금(장부에 기록되지 않는 자금)을 조성해 그 중 4억3790만원을 19·20대 국회의원 99명에게 360회에 걸쳐 불법 후원금으로 건넨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100만∼300만원씩 금액을 분할하고 임직원·지인 명의로 후원한 것으로 조사됐다.
KT법인도 범죄발생시 행위자 뿐 아니라 소속 법인에 대해 형을 과하도록 정한 양벌규정에 따라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황창규 당시 회장은 검찰 수사 단계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았으며, 현재 대표이사인 구현모 사장 등 당시 임원 10명은 명의를 빌려준 혐의로 약식 기소돼 벌금형을 받은 뒤, 정식재판을 청구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구 대표는 법인과 마찬가지로 범죄의 전제가 된 정치자금법 조항이 위헌이라며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