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노인들이여 대문 밖으로 행군하라

엄상흠씨(75)는 손자의 재롱을 볼 나이에 4개 직업을 갖고 있다. 월·수·금요일에는 결혼정보회사에서 커플 매니저로 활동한다. 화·목·토요일에는 상조회에서 회원을 모집한다. 주말에는 결혼식 주례를 보고 시간이 날 때 인터넷 매체 ‘실버넷’ 기자로 활동한다. 돈보다는 건강을 지키고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해 바쁜 노후 생활을 즐기고 있다.

엄씨는 10년 전 자신이 운영하던 예식장 사업을 정리했다. 당시 65세였다. 사업을 정리한 뒤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며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던 그는 이내 지루함과 공허함을 느꼈다. 여생을 이렇게 보내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그는 경험과 인맥을 살려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내 하고 있다. 그는 “일이라는 것에는 단순한 돈벌이 이상의 의미가 있다. 평균 수명도 길어진 지금 좀 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오래 일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종은 진 병원 정신과 과장은 “은퇴 등의 이유로 일을 하지 않게 될 경우 경제적으로 넉넉해도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여기에 늙고 나약해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쉽게 알코올 의존증이나 우울증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픈 일을 찾아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엄씨와 달리 대다수 고령층은 다시 직업을 갖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대부분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고령층이 다시 직업을 갖기 위해 도움을 받을 만한 기관들에는 어떤 곳이 있을까?

우선 노동부에서 운영하는 ‘고령자 인재 은행’이 있다. 현재 전국에 있는 48개 센터에서 고령자들을 위한 취업 상담 및 알선을 주로 하고 있다. 일부 센터는 일자리 개척 동아리도 운영한다. 5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며 주로 육아 도우미 및 간병인, 경비원 등의 단순한 소일거리를 알선받게 된다. 이곳을 통한 취업자는 2005년 3만여 명이었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늘어 지난해 6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눈높이 조절하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 찾아야

서울시가 운영하는 ‘고령자취업알선센터’ 23곳도 이용할 수 있다. 서울시에 주소를 둔 55세 이상 고령자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는데, 60~70대의 노인들이 주를 이룬다. 가까운 센터를 찾아 이력서와 희망 직무를 등록하면 일련의 훈련을 거쳐 직업을 추천받을 수 있다. 과거에 비해 고학력자의 신청이 늘어나고 있다. 경비원, 주차 관리원, 광고모델, 설문조사원에 맞는 직무 훈련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이 가운데 설문조사원 교육 과정은 고학력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연륜을 살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주부나 대학생에 비해 더욱 깊이 있는 설문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참여 기업들의 반응도 좋다. 교사나 연구원을 지낸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다. 서울시 중앙고령자취업알선센터의 윤형준 과장은 “예전 경력에 매달려 직업의 귀천을 따져서는 취업하기 힘들다. 노후에 직업을 선택할 때에는 과거의 경력이나 학력보다는 재미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라고 충고했다.

자신의 고급 경력을 활용하고 싶다면 ‘중견전문인력고용지원센터’의 문을 두드려볼 수도 있다. 이 센터는 노동부의 지원을 받아 한국노총과 경영자총협회가 공동 운영하는 기관으로, 고급 인력의 무료 재취업 교육 및 알선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중소기업 이상 기업체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과장급 이상의 경력을 가진 자(신청 자격은 표 참조)로서 50세 이상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지난해 서울과 광주로 나누어 2개소를 중심으로 운영했고, 올해 지역별로 4곳 정도 더 신설될 예정이다. 이곳에 등록하면 컨설턴트로부터 상담 및 각종 취업 교육 서비스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면접 및 이력서 작성법 등 실무적인 부분은 물론 심리적인 상담도 받을 수 있다. 주로 중소기업의 영업 총괄, CFO(최고재무책임자), 경영 기획 관리, 컨설팅 분야 등에 취업을 하게 되는데 지난해 전체 신청자 2백75명 중 1백20명이 취업에 성공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나이가 젊은 50대 중·후반의 중년층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것은 단점으로 꼽힌다. 중견전문인력고용지원센터의 임수정 선임 컨설턴트는 “지난해 65세의 고령자가 등록한 지 세 달 만에 취업에 성공하기도 했다. 고령일수록 자신이 건강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당당한 태도와 어느 정도의 눈높이 조절은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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