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과 불안심리 그리고 명퇴의 기준

                 불확실성과 불안심리 그리고 명퇴의 기준

 

지난 달 말부터 무수히 떠돌던 명퇴조건에 관해 분분한 소문은 말 그대로 소문일 뿐이었다.  500주를 준다, 최고 90개월은 될 것이다 등등 무성했던 소문에 의해 엄청나게 부풀려졌던 기대심리는 막상 뚜껑이 열리자 이번에는 불안심리로 돌변하고 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 명퇴다, 앞으로 D고과가 30%이며 이들에 대해선 성과급이 없어진다,  명퇴 대상자가 안 나가면 8주짜리 KTTC 교육을 통해 반쯤 죽일 것이다 등등 온갖 불안한 소문이 횡행하고 있다.  뚜껑이 열리기 전에는 기대심리를 부풀리는 루머가, 뚜껑이 열리고 나서는 불안심리를 자극하는 소문이 돌고 있는 것이다.

 

본디 불확실성은 인간에게 불안을 낳는다. 이런 불안은 인간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생존하기 위해 생겨난 정신현상의 하나로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며 이러한 불확실성으로부터 오는 불안을 제거하려는 인간의 욕구로부터 인간의 합리적 이성과 그에 근거한 과학이 발달할 수 있었다.  문제는 합리적 이성을 넘어서는 불안이 지속될 때 인간의 불안심리는 극대화되고 이럴 경우 불확실한 것에 대한 맹목적 불안심리가 오히려 인간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불확실성과 불안심리가 인간을 맹목적으로 만들던 경험을 꼭 10년 전이었던 1999 12월 생생히 겪지 않았던가! 이른바 종말론과 그에 근거한 휴거 소동이 바로 그것이다. 

 

IMF 경제위기로 한국 사회는 전례 없는 커다란 시련에 직면했다. 거리에는 실업자와 노숙자가 즐비하게 늘어섰고, 구조조정으로 곳곳에서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렸다. 친지 간에 관행처럼 되어있던 빚 보증으로 인해 친지관계가 파괴되고, 일가족 자살이 속출하는가 하면, 가정이 곳곳에서 무너졌다.

 

우리 모두가 이것만큼은 내게 확실하다고 믿고 살아 온 가치, 가족이든, 친구든 직장이든 모든 게 불확실해지는 상황에서 사람들의 불안심리는 극대화되었다. 합리적 이성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도 충격적인 변화 앞에 확산되는 불안심리는 더욱 더 미래를 공포스럽게 믿는 이상한 심리현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한줌도 안 되던  종말론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1999 12 31로 모든 게 끝난다는 이 극단적 공포심이야말로 가뜩이나 불안한 사람들이 최후로 의지하는 불안심리의 결정판이었다. 

 

명퇴조건에 관한 뚜껑이 열리자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미래가 불확실한 만큼 다소간의 불안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이런 불안에 자극 받아 각자의 처지에 맞게 명퇴를 하든 더 다니든 자신의 진로를 합리적으로 모색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그럴 때 불확실성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양상은 불안이 합리적 이성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이 불안심리로 더 나아가 공포심리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매우 분명한 것은 불안 심리는 합리적 선택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많은 분들이 이번 명퇴가 마지막이고, 안 나가고 버티면 내년에는 아오지 강제노동수용소를 방불케 하는 개고생을 해야 하는 것처럼 불안해 한다.  그러면서 사실이냐고 내게 묻는다.  나의 답변은 한 결 같다. 명퇴는 불안심리에 의해 결정할 일이 아니다.  자신의 준비 정도, 즉 경제적 자산과 향후 씀씀이 규모, 그리고 퇴사 후 할 일 등에 의해 합리적으로 결정할 일이라는 것이다. 

 

1999년의 종말론처럼 마치 이번에 명퇴 안 하면 그 날로 KT에서의 삶이 끝날 거처럼 불안 해 할 일은 전혀 아니다.  향후 회사의 경영환경이 어려워지면 우리 모두가 분발하자고 마음을 잡어야 할 일이지, 그런 불안심리로 자신의 인생 진로를 결정할 일은 아니지 않는가!

 

지난 달 말부터 무수히 떠돌던 명퇴조건에 관해 분분한 소문은 말 그대로 소문일 뿐이었다.  500주를 준다, 최고 90개월은 될 것이다 등등 무성했던 소문에 의해 엄청나게 부풀려졌던 기대심리는 막상 뚜껑이 열리자 이번에는 불안심리로 돌변하고 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 명퇴다, 앞으로 D고과가 30%이며 이들에 대해선 성과급이 없어진다,  명퇴 대상자가 안 나가면 8주짜리 KTTC 교육을 통해 반쯤 죽일 것이다 등등 온갖 불안한 소문이 횡행하고 있다.  뚜껑이 열리기 전에는 기대심리를 부풀리는 루머가, 뚜껑이 열리고 나서는 불안심리를 자극하는 소문이 돌고 있는 것이다.

 

본디 불확실성은 인간에게 불안을 낳는다. 이런 불안은 인간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생존하기 위해 생겨난 정신현상의 하나로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며 이러한 불확실성으로부터 오는 불안을 제거하려는 인간의 욕구로부터 인간의 합리적 이성과 그에 근거한 과학이 발달할 수 있었다.  문제는 합리적 이성을 넘어서는 불안이 지속될 때 인간의 불안심리는 극대화되고 이럴 경우 불확실한 것에 대한 맹목적 불안심리가 오히려 인간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불확실성과 불안심리가 인간을 맹목적으로 만들던 경험을 꼭 10년 전이었던 1999 12월 생생히 겪지 않았던가! 이른바 종말론과 그에 근거한 휴거 소동이 바로 그것이다. 

 

IMF 경제위기로 한국 사회는 전례 없는 커다란 시련에 직면했다. 거리에는 실업자와 노숙자가 즐비하게 늘어섰고, 구조조정으로 곳곳에서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렸다. 친지 간에 관행처럼 되어있던 빚 보증으로 인해 친지관계가 파괴되고, 일가족 자살이 속출하는가 하면, 가정이 곳곳에서 무너졌다.

 

우리 모두가 이것만큼은 내게 확실하다고 믿고 살아 온 가치, 가족이든, 친구든 직장이든 모든 게 불확실해지는 상황에서 사람들의 불안심리는 극대화되었다. 합리적 이성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도 충격적인 변화 앞에 확산되는 불안심리는 더욱 더 미래를 공포스럽게 믿는 이상한 심리현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한줌도 안 되던  종말론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1999 12 31로 모든 게 끝난다는 이 극단적 공포심이야말로 가뜩이나 불안한 사람들이 최후로 의지하는 불안심리의 결정판이었다. 

 

명퇴조건에 관한 뚜껑이 열리자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미래가 불확실한 만큼 다소간의 불안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이런 불안에 자극 받아 각자의 처지에 맞게 명퇴를 하든 더 다니든 자신의 진로를 합리적으로 모색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그럴 때 불확실성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양상은 불안이 합리적 이성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이 불안심리로 더 나아가 공포심리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매우 분명한 것은 불안 심리는 합리적 선택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많은 분들이 이번 명퇴가 마지막이고, 안 나가고 버티면 내년에는 아오지 강제노동수용소를 방불케 하는 개고생을 해야 하는 것처럼 불안해 한다.  그러면서 사실이냐고 내게 묻는다.  나의 답변은 한 결 같다. 명퇴는 불안심리에 의해 결정할 일이 아니다.  자신의 준비 정도, 즉 경제적 자산과 향후 씀씀이 규모, 그리고 퇴사 후 할 일 등에 의해 합리적으로 결정할 일이라는 것이다. 

 

1999년의 종말론처럼 마치 이번에 명퇴 안 하면 그 날로 KT에서의 삶이 끝날 거처럼 불안 해 할 일은 전혀 아니다.  향후 회사의 경영환경이 어려워지면 우리 모두가 분발하자고 마음을 잡어야 할 일이지, 그런 불안심리로 자신의 인생 진로를 결정할 일은 아니지 않는가!

이 글의 출처는 blog.paran.com/allnewkt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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