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주주대표소송 소액주주 승소 2026.10.13.자 확정

KT ‘쪼개기 후원’ 배상 확정···경영진 감시의무 위반 인정

주재한 기자2026. 10. 19. 10:38
황창규 4억5976만원 배상···구현모 8828만원 연대책임  
직접 가담 입증 없어도 내부통제 소홀 책임···SEC 제재금도 반영
박윤영 현 대표도 과거 500만원 후원···소액주주 측 공시 누락 지적

왼쪽부터 구현모 전 KT 대표이사(CEO) 사장과 황창규 전 KT 대표이사 회장. / 사진 = KT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KT의 불법 정치자금 ‘쪼개기 후원’ 사건과 관련해 황창규 전 회장과 구현모 전 대표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확정됐다. 지난달 파기환송심에서 배상 판결이 내려진 이후 양측 모두 재상고하지 않으면서 약 7년간 이어진 주주대표소송이 마무리됐다. 특히 황 전 회장은 불법 자금 조성에 직접 가담했다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았지만 이를 방지하기 위한 내부통제시스템 구축과 감시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배상책임이 인정됐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고등법원 민사11부(재판장 배준현 법원장)가 지난 9월 16일 선고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파기환송심 판결이 이달 13일 확정됐다. 판결정본 송달 이후 법정 재상고 기간이 지날 때까지 양측 모두 상고장을 제출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KT 소액주주 35명이 전직 경영진의 위법행위로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다며 제기한 주주대표소송이다. 2019년 3월 KT에 소송 제기를 요구했지만 회사가 응하지 않자 같은 해 5월 직접 소송에 나섰다. 1·2심에서는 모두 패소했으나 올해 1월 대법원이 판결 일부를 파기환송하면서 결과가 뒤집혔다.

◇직접 관여 없어도 감시책임···내부통제 실효성 따진 법원

사건은 KT 대외협력(CR) 부문 임직원들이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법인카드 등으로 구매한 상품권을 현금화하는 이른바 ‘상품권깡’ 방식으로 약 11억5100만원의 부외자금을 조성한 데서 비롯됐다. 이 가운데 약 4억원이 2년 10개월에 걸쳐 국회의원 후원회 등에 정치자금으로 송금됐다.

재판에서는 경영진이 이러한 자금 조성과 송금에 직접 관여했는지뿐 아니라 다른 임직원들의 위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감시의무를 다했는지가 쟁점이 됐다.

상법 제399조 제1항은 이사가 법령이나 정관을 위반하거나 임무를 게을리해 회사에 손해를 입힌 경우 배상책임을 지도록 규정한다. 이사의 의무에는 자신의 업무를 적법하게 수행하는 것뿐 아니라 회사의 다른 임직원들이 위법행위를 저지르지 않도록 감시하는 의무도 포함된다.

대법원은 올해 1월 15일 이 같은 법리를 근거로 기존 원고 패소 판결 일부를 파기했다. 경영진이 위법행위를 직접 지시하거나 실행하지 않았더라도 합리적인 정보·보고체계와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하고 제대로 작동하도록 관리할 의무를 위반했다면 손해배상책임을 질 수 있다는 취지였다.
수원고등법원은 KT 전직 경영진이 부외자금 조성과 정치자금 송금을 막기 위한 내부통제시스템 구축과 감시·감독을 소홀히 했다고 판단했다. / 사진=판결문 캡처

파기환송심은 구체적인 내부통제 실태를 따졌다. KT는 마케팅과 네트워크, 경영기획, CR 부문 등에 업무를 나눠 맡겼다. 정치자금 송금은 대관 업무를 담당하는 CR 부문 임직원들이 주축이 돼 이뤄졌고 그 과정에서 대표이사나 이사회에 관련 보고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러한 업무분담이나 보고 부재를 경영진의 면책 사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외자금 조성이 약 3년 5개월간 이어졌고 규모도 11억원에 달하는데도 경영진이 이를 확인하거나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에 주목했다.

단순히 내부통제 규정과 교육제도를 갖추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의미다. 위법행위를 사전에 방지하고 의심 정황이 발견되면 관련 정보를 수집·보고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황 전 회장과 구 전 대표가 이러한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운영하지 않고 감시의무를 소홀히 했다고 판단했다. 황 전 회장은 부외자금 조성과 정치자금 송금에 직접 가담했다는 증거가 없었지만 대표이사로서 회사 전체 업무를 감시할 의무를 위반한 책임이 인정됐다.

구 전 대표 역시 이사로 재임하는 동안 감시의무를 소홀히 했다고 판단됐다. 특히 2016년 9월 정치자금 1400만원을 직접 송금한 행위에 대해서는 감시의무 위반과 별도로 법령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책임도 인정됐다.

재판부는 “피고들은 각 대표이사와 이사로서 재임하는 동안 이 사건 부외자금 조성 및 정치자금 송금과 관련하여 감시의무를 게을리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손해배상 범위에는 부외자금 조성 자체로 발생한 손해와 더불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제재로 KT가 부담한 금액 일부까지 포함됐다.

재판부는 부외자금 관련 손해액에서 반환 금액 등을 고려하고 황 전 회장의 책임을 30%, 구 전 대표의 책임을 20%로 제한했다. SEC 제재금 관련 손해에 대해서도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금액을 각각 6억원과 2억4000만원으로 정한 뒤 같은 책임비율을 적용했다.

이에 따라 SEC 제재금 관련 배상액은 황 전 회장 1억8000만원, 구 전 대표 4800만원으로 산정됐다. 이를 부외자금 관련 배상액과 합산한 금액이 최종 확정된 손해배상액이다.
박윤영 KT 대표이사의 2021년 8월 검찰 진술조서 일부. KT 기업경영본부장 시절인 2016년 9월7일 국회의원 5명의 후원회에 각각 100만원씩 총 500만원을 송금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 사진=시사저널e

◇박윤영 현 대표도 후원 진술···소액주주 측 “소송 공시 누락”

이번 사건의 수사기록에는 박윤영 현 KT 대표이사의 정치후원금 송금 사실도 등장한다.

2021년 8월 작성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박 대표는 기업경영본부장이던 2016년 9월 7일 국회의원 5명의 후원회에 각각 100만원씩 총 500만원을 송금했다고 진술했다. 당시 KT 본사에 설치된 은행 ATM을 이용해 자신의 계좌에서 돈을 이체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 가운데 신경민 당시 의원 후원회에 송금한 100만원은 같은 해 10월 반환됐다. 박 대표는 검찰 조사에서 해당 후원회 측과 연락한 뒤 돈을 돌려받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박 대표는 이 사건으로 기소되거나 유죄판결을 받은 당사자는 아니다. 이번에 확정된 주주대표소송의 피고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박 대표는 지난해 12월 KT 차기 대표 후보로 거론되는 과정에서 관련 의혹이 제기되자 인터넷신문사 뉴스웍스와 인터뷰에서 “정치자금법 관련 사안은 검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았는데 검찰에서 불기소 결정했다”고 밝혔다. 500만원에 대해서도 회사에 전액 반환했고 개인적으로 유용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한편 소액주주 측은 KT가 이번 소송의 진행 경과를 투자자들에게 충분히 알리지 않았다는 문제도 제기했다.

KT가 지난 8월 제출한 2026년 반기보고서의 ‘중요한 소송사건’ 항목에는 이번 주주대표소송이 기재돼 있지 않다. 다른 손해배상소송과 행정소송의 진행 상황은 소개하면서도 올해 1월 대법원이 황 전 회장과 구 전 대표의 배상책임을 다시 판단하도록 파기환송한 사실은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다.

조태욱 KT노동인권센터 집행위원은 “소액주주들이 제기한 주주대표소송은 보고서에 담지 않고 있다”며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까지 중요한 소송사건 항목에서 빠진 점을 지적했다.

다만 주주대표소송은 회사가 직접 피고가 되는 일반적인 손해배상소송과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보고서에 기재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공시의무 위반을 단정할 수는 없다.

조 집행위원은 이번 판결 확정에 대해 “소액주주들 35명을 모아 주주대표소송의 첫 관문인 소제기청구서를 KT에 보낸 후 약 7년 6개월이 지나 원고 승소 판결이 확정되고 보니 감회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불법경영으로 회사에 엄청난 손실을 초래하였다면 해당 경영진은 형사처벌뿐 아니라 민사 손해배상 책임까지 부과된다는 점을 각인시켜 정도경영을 확립하려는 목적으로 추진했다”며 “그 목표를 일정하게 달성하였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우리사회가 재벌 대기업의 정경유착과 불법정치자금 관행에 대해 경종을 울린 사건으로 기억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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