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이 이명박 정부 시절 친정부 성향의 ‘제3 노총(국민노총)’ 설립을 위해 국가정보원이 불법 자금을 지원했다는 사건 재판에서 위증을 한 혐의로 고발된 임태희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 대해 벌금 300만원에 약식 기소했다. 국정원의 민주노총 와해 공작의 피해자이자 이 사건을 고발한 조태욱 케이티(KT)노동인권센터 집행위원장은 검찰이 임 전 실장을 뒤늦게 솜방망이 처벌했다고 비판했다.
19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제2부(부장 김형원)는 지난 2019년 10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과 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차관 등에 대한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국고손실) 혐의 재판에서 위증을 한 임 전 실장에 대해 일부 혐의만 적용해 최근 벌금 3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앞서 검찰은 2011년 11월 제3노총인 ‘국민노총’ 출범에 이명박 정부 청와대와 국정원, 고용노동부가 초기 단계부터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수사해왔다. 검찰은 2018년 임 전 실장을 빼놓고 원 전 원장과 이 전 차관 등만 재판에 넘겼다. 2019년 10월 임 전 실장은 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①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차관으로부터 국정원 지휘부에 국정원 예산(특활비)을 지원하도록 요청받은 사실 ②이 전 차관의 부탁을 받고 국정원 예산 지원 요청을 당시 민병환 국정원 2차장에게 전달한 사실 ③이명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제3노총 출범 지원을 지시받은 사실 등을 부인했다.
하지만 2020년 2월 해당 사건 1심 재판부는 임 전 실장이 민병환 당시 국정원 2차장에게 ‘국정원에서 3억원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민 차장이 임 실장으로부터 제3노총 설립에 관련된 국정원 예산에 관한 요청을 받았다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으므로, 검사의 (임태희 실장의) 불기소 처분이 적정했는지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제기할 여지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한 해당 판결문을 보면, 2011년 4월 수석비서관회의와 같은 해 10월 국무회의에서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제3노총 구성과 관련한 질문을 하고, “시대에 맞는 노조가 나오면 좋다” 등의 언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임 전 실장은 진영곤 전 고용복지수석·이 전 차관과 함께 이 두 차례 회의에 모두 참석했다. 하지만 검찰이 국고손실 사건과 관련해 임 전 실장을 끝까지 불기소 처분하면서 임 전 실장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후 조태욱 위원장은 임 전 실장과 원 전 원장, 이 전 차관 등이 재판에서 위증을 했다며 고발했다. 하지만 검찰은 임 전 실장이 2019년 10월 재판에서 ‘이채필 전 차관으로부터 국민노총 출범과 관련해 국정원 예산 지원을 국정원 지휘부에 요청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 없다’, ‘이채필 전 차관의 부탁을 받고 민병환 국정원 2차장에게 국정원 예산을 고용노동부에 지급하도록 요청한 사실이 없다’고 증언한 부분(①,②)만 위증 혐의를 인정해 벌금 300만원의 약식명령을 했다. 약식명령은 정식 재판 없이 검사가 제출한 서면 기록을 심리해 법원이 벌금형 등을 내리는 절차를 의미한다.
반면 검찰은 임 전 실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제3노총 출범 지원을 지시받은 사실 등을 부인(③)한 혐의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했다. 한겨레가 확보한 임 전 실장 등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이유서를 보면, 검찰은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은 모두 임 전 실장이 아닌 진영곤 고용복지수석, 이채필 전 차관에 대한 것이었고,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 내용도 민노총 탈퇴와 제3노총 설립에 관한 상황 및 그에 대한 대통령의 견해를 밝힌 것에 불과해 제3노총 출범 지원에 관한 지시를 한 것이라 보기에 부족하며, 달리 임 전 실장이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제3노총 출범 지원에 관한 지시를 받았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했다. 아울러 원 전 원장과 이 전 차관 등에 대해서는 기소유예 처분을 했다. 검찰은 이들의 위증 혐의는 인정되지만 자신이 피고인인 사건 재판에서의 증언이라는 점과 윤석열 정부 시절 사면받은 점 등을 기소유예의 근거로 들었다.
이 사건을 고발한 조태욱 위원장은 이같은 검찰의 처분에 불복해 지난 15일 항고했다. 항고는 검찰이 불기소 처분한 사건에 대해 상급 검찰청의 판단을 다시 받아보는 제도다. 조 위원장은 “검찰이 과거 임 전 실장을 국고손실 혐의로 기소했다면, 경기교육감 선거에 출마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봐주기 수사로 교육감 선거에서 당선될 수 있게 했고, 4년 임기가 종료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벌금 300만원의 솜방망이 처분을 했다”라고 비판했다. 임 전 실장은 2022년 경기도교육감에 출마해 당선됐고,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했으나 낙선했다.
조 위원장은 국정원의 제3노총 지원 등 민주노총 와해 공작의 가장 큰 피해자다. 그는 지난 2008년 12월 케이티(KT) 노조위원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이후 조 위원장은 회사 쪽의 노조위원장 선거 관여 의혹 등을 제기했다. 케이티는 2010년 조 위원장을 이석채 전 케이티 회장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 등을 들어 해고했다.
하지만 2017년부터 진행된 원 전 원장의 국고손실 재판에서 조 위원장의 낙선에 회사는 물론 국정원까지 관여한 정황이 드러났다. 당시 재판에서는 문재인 정부 국정원이 과거 노조 파괴 공작 의혹을 자체 감찰한 뒤 검찰에 보낸 ‘수사참고자료’가 공개됐다. 이 자료에는 국정원이 2008년 케이티 노조위원장 선거 때 “강성후보 선거 전략 및 동향을 파악해 온건후보에 제공하고, 강성후보 낙선을 위해 사측의 노무관리 강화를 독려하는 등의 방법으로 온건후보의 당선을 지원”했다고 되어 있었다. 아울러 “민주노총 탈퇴를 설득하는 한편, 사쪽에도 인사·노무 제도 개선 등 노조 요구 사항을 수용하도록 설득”했다고 적혔다. 조 위원장이 출마했던 노조위원장 선거 개입과 그 이후 이뤄진 민주노총 탈퇴 공작을 국정원이 회사 쪽과 함께 주도한 정황이 확인된 것이다.
조 위원장은 “노조 파괴 공작 관련 국고손실 범죄자들에 대한 사면복권은 2022년 말부터 2024년까지 윤석열 전 대통령에 의해 신속하게 단행됐지만, 피해자는 2010년 해고 후 16년째 광화문에서 투쟁 중”이라고 말했다.
박지영 기자 jy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