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은 KT의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투자내역을 조사해야 한다


‘최순실 직격탄’ 맞은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앞날은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7월 청와대에서 열린 ‘창조경제혁신센터장 및 지원기업 대표 간담회’ 종료 후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청와대 홈페이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7월 청와대에서 열린 ‘창조경제혁신센터장 및 지원기업 대표 간담회’ 종료 후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청와대 홈페이지

박근혜 게이트와 연루 의혹… 운영 맡은 기업들 발 뺄 가능성

박근혜 정부가 출범 후 새 경제정책 슬로건으로 ‘창조경제’를 꺼내들었을 때 그 의미를 선뜻 이해하는 국민들은 많지 않았다. 공무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처의 한 장관은 정권 초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창조경제를 강조하면서도 “창조경제가 뭘 뜻하는지는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실 것”이라며 얼버무렸다.

안 그래도 ‘신기루’ 같던 창조경제는 박 대통령의 탄핵정국과 맞물려 실제로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였다. 박근혜 정권 기간 중 달성된 역대 최저 경제성장률, 역대 최고 실업률, 역대 최대 가계부채 등 창조경제의 처참한 ‘결과물’들을 굳이 거론할 필요도 없다. 창조경제에도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탓이다. 창조경제의 상징적 존재인 민·관합동 창조경제추진단의 과거 두 단장 중 차은택씨는 구속됐고,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검찰 수사를 받았다. 재계와 관가에서는 이미 창조경제를 대신해 ‘4차 산업’이라는 말이 통용되고 있다.

불똥은 창조경제혁신센터로 옮겨붙었다. 전국 18개 시·도에 설치된 혁신센터는 지방까지 창조경제를 실현할 ‘거점기지’로 마련됐다. 16개 대기업이 각 센터를 ‘전담마크’해 지역 스타트업(창업예비단계 기업) 발굴과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창조경제의 추락과 더불어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혁신센터의 태생적 문제점과 지속 가능성 여부 등을 들어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반면 지역경제와 스타트업 활성화 차원에서 선별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혁신센터 운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센터의 출범과정에서 기인한다. ‘청와대의 언급-대기업 집합-혁신센터 설립’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도화선이 된 미르·K스포츠재단의 설립과정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실제 혁신센터 설립계획 초안에는 대기업이 들어 있지 않았다. 그간 국정감사 등에서 공개된 자료를 토대로 재구성해 보면 정부는 2014년 1월 15일 열린 관계부처 회의에서 혁신센터 설립을 처음 공식화하며 “지역 기업인과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159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2015년까지 전국 17개 시·도에 센터를 설치할 예정“이라고도 덧붙였다.

두 달 뒤인 3월 7일 열린 회의에서 정부가 공개한 혁신센터 운영 확정계획안에서도 대기업 참여 문제는 언급되지 않았다. 계획안대로 진행돼 같은 해 3월 25일 대전에서, 4월 28일 대구에서 각각 창조경제혁신센터가 문을 열었다. 두 지자체 모두 지역 경제단체·학계 등이 연계해 주도하는 혁신센터 운영 사업계획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대기업이 등장한 것은 같은 해 9월 2일 열린 국무회의에서부터다. 박근혜 대통령은 ”17개(이후 18개로 확대) 창조경제혁신센터에 기업 전담지원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이틀 뒤인 4일 이석준 당시 미래창조과학부 차관(현 국무조정실장)이 전경련회관 3층 에머랄드룸에서 15대 대기업 임원과 전경련 이승철 상근부회장을 만났다. 이어 8일 뒤인 9월 12일 최양희 미래부 장관과 대기업이 참석한 간담회가 열려 대기업의 혁신센터 설립 참여가 사실상 확정됐다. 사흘 뒤인 9월 15일에는 박 대통령과 대구지역 전담기업 대표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이미 4월 말 출범했던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이 ‘다시’ 열렸다. 박 대통령이 대기업 참여를 언급한 지 단 2주 만에 일사천리로 일이 성사된 셈이다.

울며 겨자먹기로 혁신센터를 떠안은 기업들의 불만은 팽배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대통령이 전담해서 도와주라 하는데 거절할 기업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한때 재계에서는 ”혁신센터는 박 대통령 사진촬영지“이라는 자조가 나오기도 했다.

미르재단이 사업목적이나 운영체계 등이 불투명한 재단법인인 데 비해 혁신센터는 국비와 지방비가 함께 투입되는 엄연한 공공기관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최순실씨 소유로 추정되는 ‘태블릿 PC’에서 ‘창조경제혁신센터 홈페이지 구축안’과 같은 문건이 발견되면서 센터의 ‘순수성’도 의심받고 있다.

이 때문에 미래부가 국회에 상정한 내년 혁신센터 운영지원 예산안도 통과되는 데 진통을 겪었다. 통상 혁신센터 한 곳당 연간 40억~60억원가량의 운영비가 필요하다. 야당에서는 ‘최순실 예산’이라는 비판과 함께 내년 예산에 대한 대폭 삭감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논란 끝에 경기불황 시국에 지역경제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 등을 고려해 미래부가 올린 안에서 36억원이 깎인 436억5000만원이 편성됐다. 그럼에도 일부 지자체는 혁신센터 운영에 부정적이어서 서울(20억원)과 전남(10억원)의 경우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혁신센터 운영에서 전담기업이 하는 일은 멘토링 및 기술지원 외에 크게 재정지원, 투자유치, 판로지원 등 세 가지다.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이 최근 공개한 ‘창조경제혁신센터 대기업 기부금 현황’ 자료(9월 기준)를 보면 기업별로 많게는 100억원 이상 혁신센터에 기부금을 제공했다. 기업들 상당수는 기부금 외에도 자체 재원 출연을 통한 투자펀드 조성 등에 나서고 있어 혁신센터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은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투자유치와 판로 문제는 창업자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기도 하다. 정부나 산별협회, 지자체 등이 주최하는 투자설명회도 있지만, 굴지의 대기업이 주선하는 투자설명회의 경우 ‘흥행’이 보장되고 대기업과의 제휴를 통한 판로개척도 모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성과도 일부 나와 11월 25일 기준 전국 혁신센터에서 지금까지 1528개의 기업이 창업했다. 창업을 통해 1928명이 신규 채용됐고, 3047억원의 투자유치, 2072억원의 매출 증대가 이뤄졌다. 현재도 각 센터별로 10여개의 보육기업이 입주해 ‘창업의 꿈’을 키우고 있다.

일련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혁신센터의 지속 가능성을 바라보는 전담기업들의 시각은 엇갈린다. 우선 통신·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 업종 기업의 경우 혁신센터 운영에 긍정적이다. KT(경기), 네이버(강원), 카카오(제주) 등은 공개적으로 ”계속 운영할 의향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국내 스타트업 상당수가 서비스 관련 업종이라는 점에서 대기업의 이해관계가 함께 맞아떨어진 결과다. 네이버 관계자는 ”기업들마다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발굴하고 성장동력으로 키워나가는 게 큰 과제“라며 ”우수한 아이디어와 기획력을 가진 스타트업과의 제휴를 통해 충분히 동반성장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황창규 회장 취임 이후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가져온 KT는 혁신센터 운영을 계기로 올 5월 ‘스타트업 사업지원 3대 전략’을 발표하고 그룹 차원의 지원에 나서고 있다.

반면 제조업 기반 대기업들은 상대적으로 혁신센터 운영에 소극적이다. 제조업 부문 한 대기업 관계자는 ”스타트업들의 창업분야와 사업부문 간 연관성도 떨어지고, 센터 운영 결과 별다른 성과나 효과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마음 같아선 운영을 그만하고 싶어도 일단 정부 눈치가 보이니 당분간은 유지를 해나가기는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지나치게 성과나 형식에 집착하는 점도 대기업이 혁신센터 운영을 꺼리게 만드는 요인이다. 혁신센터를 운영 중인 ㄱ사 관계자는 ”지난번 혁신센터 설립 1주년 기념 보도자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부로부터 ‘성과 창출에 신경 쓰라’는 취지의 전화가 많이 왔다“며 ”혁신센터의 내실보다는 성과 부풀리기에 집착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센터를 운영하는 ㄴ사 관계자는 ”정부가 센터를 얼마나 발전적으로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비전’보다는 센터가 입주할 건물 크기나 시설, 투자규모 등 ‘보여지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인다“고 밝혔다.

조기 대선이 예정된 상황에서 차기 정권이 혁신센터를 계속 이어갈지 여부는 현재 불투명하다. 대권후보인 박원순 서울시장은 창조경제를 비판하며 내년도 서울센터 운영예산 삭감을 주도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도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대기업 주도로 운영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며 센터 운영에 거부감을 나타낸 바 있다. 혁신센터 운영실무를 총괄하는 미래부만 해도 차기 정부 집권 후 해체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자체의 경우 일자리 창출이나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라도 대부분 혁신센터 유지를 원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혁신센터를 일괄 폐지하거나 기존대로 18개 모두를 끌고가는 것보다는 선별적으로 통·폐합해 운영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한종호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장은 ”서울이나 수도권에 비해 지방은 창업 기반과 환경이 굉장히 척박하고 열악하다“며 ”지역인재 발굴과 경제활성화를 위해서라도 기업이 의지가 있고 운영이 잘 되고 있는 곳은 지금처럼 가는 게 맞다고 본다“고 밝혔다.

임정욱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대표는 ”차기 정권이라도 스타트업 정책을 총괄하고 끌고갈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기존에 마련된 혁신센터들이 관련 경험과 기반을 제공할 수 있다“며 ”다만 특정 대기업이 어느 한 곳을 전담해서 지원하기보다는 기업들이 보다 자율적이고 선택적으로 스타트업 지원에 나설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미래부 전성배 대변인은 ”서울·전남 센터의 경우 추가로 국비를 지원해서라도 내년 운영에 차질이 없도록 할 것“이라며 ”센터와 관련된 여러 지적과 비판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문제점이 있다면 개선해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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