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출 목적 노동자 괴롭힘, 이대로는 안 된다 이상권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 이상권 승인 2017.12.12 08:00 ▲ 이상권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 필자는 얼마 전 손해사정회사에 근무하는 노동자의 구제신청 사건을 대리했다. 6개월 만에 직무변경을 포함한 강등이 두 차례나 이뤄진 사건이었다. 상담 내용을 정리해 보니 굳이 노동자 편을 들지 않더라도 위와 같은 인사명령을 내릴 필요성이 납득되지 않았다. 사건을 대리한 노동자는 굴지의 손해보험회사에서 오래 근무했고 능력도 인정받은 듯했다. 기존 회사에서 정년이 남아 있었음에도 지금 근무하는 회사의 대표가 더 오래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으니 같이하자고 제안해서 큰 폭의 연봉 삭감을 감수하고 이직하게 됐다. 사실상 스카우트 제의였다. 현 회사 대표는 이직을 제안하면서 이 사건 노동자가 기존 회사에서 오랜 기간 훌륭하게 수행하던 ‘품질관리’ 업무를 맡아 줄 것을 부탁했다. 1년반 정도 품질관리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던 중 갑자기 회사는 다른 업무들을 추가로 부여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는 해당 업무를 1인이 전담하고 있는 다른 회사들의 예를 들면서 추가 업무 부여가 부적절하다고 항의했으나 회사는 감사에서 팀장으로 직책을 강등하고 일반팀 팀장 업무로 직무 내용도 변경했다. 회사는 위 인사명령에 이어 6개월 만에 팀장에서 팀원으로 두 번째 강등처분을 내렸다. 두 번째 강등처분이 황당한 것은 이 사건 노동자가 팀장을 맡고 있는 기간 동안 팀 실적이 꾸준히 개선됐고 다른 팀에 비해서도 상위권에 속했다는 점이다. 놀랍게도 회사 대표는 이 사건 노동자가 부친상으로 휴가를 사용한 것을 구실로 “팀장으로서 책임감이 없다”거나 “간절함이 보이지 않는다”며 팀원으로 강등시켰다. 일체의 신의칙상 협의는 없었다. 팀원 업무를 하기 싫으면 몇 달치 급여를 보전해 줄 테니 회사를 나가라는 식의 사직 압박이 있었을 뿐이다. 이 사건 노동자에게 팀원 업무를 맡으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퇴사 압력이었다. 팀원 업무는 전산입력 작업이 핵심이다. 보험업계에서 수십 년을 일하면서 단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실적을 낼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게다가 팀원 급여체계는 낮은 기본급에 건당 인센티브로 구성돼 있어 임금체계 변동으로 인해 큰 폭의 임금 하락이 예정돼 있었다. 이 사건 노동자와 같이 경력직 직원들 중 팀원으로의 강등을 못 이기고 사직한 사례가 여럿 있었고, 회사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회사 대응은 뻔히 예상되는 바와 같다. 회사는 직무교육이나 적응기간도 없이 이 사건 노동자를 바로 전산입력 업무에 투입하고는 다른 직원들에 비해 실적이 부진하다며 실적개선촉구서를 발송하고 경위서를 작성하게 했다. 심지어 회사는 이 사건 노동자의 자리만 다른 팀원들과 떼어 놓기까지 했다. 이는 명백히 근로기준법상 해고제한 법리 회피 목적으로 행해진 것으로서 괴롭힘을 통한 퇴사 압박이다. 최근 고용노동부 폐기지침에도 불구하고 전임 정부의 ‘저성과자 해고’ 지침을 사업장에서 여전히 시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생소한 업무에 배치하고는 고과평가에서 불이익을 주는 방식의 괴롭힘은 KT의 ‘부진인력 퇴출 및 관리방안’을 떠오르게 한다. KT는 2005년 명예퇴직 거부자와 민주노조 활동가 등을 ‘부진인력(C-PLAYER)’으로 찍어 기존에 하던 업무와 전혀 관계없는 생소한 업무를 배정하고 업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주의·경고를 거쳐 결국 징계해고하는 프로세스를 가동했다. 상기 부진인력 퇴출 및 관리방안에 따른 고과불이익과 해고를 다툰 사건에서 대법원은 회사 처분이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 노동자는 회사의 부당한 처분에 맞서 싸우기로 마음먹고 홀로 민주노총을 방문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지방노동위원회는 이 사건 노동자 편을 들어줬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사용자는 부당인사명령으로 판단되면 그때 가서 바꾸면 그만이니 법을 위반해도 잃을 것이 없다. 노동위와 법원이 해고제한 법리를 회피하고자 행해진 인사명령의 정당성 판단을 해고에 준해 엄격하게 판단해야 하는 까닭이다. 개별 사건에서 법원이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는 것과 별도로 퇴출 유형의 ‘직장내 괴롭힘’을 개념화하고 이에 대한 예방적·사후적(징벌적 배상 포함) 법적 규제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상권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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