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e=김용수 기자] KT가 차기 대표이사(CEO)를 선임하지 못하고, 수개월째 표류 중이다. 일각에선 정부의 CEO 인선 개입이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전·현직 경영진을 비롯한 KT 이사회의 ‘내편 봐주기’식의 결정이 화를 부른 것과 다름없다.

특히 최근 기자와 만난 통신업계 및 법조계 관계자들은 KT에 대해 “의도했건 안 했건, 주요 경영진과 이사진을 보면 KT는 ‘범죄’에 상당히 관대한 기업 같다”는 반응을 내놓는다.

실제 KT의 전·현직 경영진은 범죄와 가깝다. 먼저 구현모 전 KT 대표와 박종욱 현 KT CEO 직무대행(사장), 강국현 현 KT 커스터머부문장(사장)은 국회의원 ‘쪼개기 후원’과 관련 정치자금법 위반 및 업무상 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해 초 벌금형의 약식명령을 받았지만 이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하면서 심리가 진행 중이다. 결과적으로 구 전 대표는 임기 내내 ‘범죄 경력의 CEO’란 오명을 벗지 못했고, 지배구조 개선을 추진 중인 박 대행체제의 ‘정당성’도 부정당한다.

사외이사 역시 마찬가지다. 이강철 전 KT 사외이사는 과거 선거 과정에서 거액의 불법 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2011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형을 받았다. 그럼에도 KT는 황창규 전 회장 시절 이 전 이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한 데 이어, 구 전 대표 시절 이 전 이사를 재선임했다. 정치자금법 위반이란 범죄를 가볍게 여긴 것과 다름없는 결정이다.

이같은 분위기는 자회사에서도 감지된다. KT의 자회사 KT커머스 역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을 받은 이재환 전 경기도 경제정책 특보를 지난해 5월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그는 황 전 회장 때인 2015년 KT 경영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KT커머스는 당시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선임했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관련 보도 1개월 뒤인 지난해 9월 이 전 특보를 이사직에서 해임했다.

이처럼 전·현직 이사진이 범죄를 가벼이 여긴 결과 견제 기능도 사라졌다. 전 세계 1위 의결권 자문사인 ISS가 윤경림 전 KT 사장의 CEO 선임과 강충구·여은정·표현명 등 사외이사의 재선임안에 반대를 권고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ISS는 각 안건에 대해 “이사회에서 근무하는 동안 윤 사장은 법적인 우려가 있는 구 대표의 이사직을 유지할 수 있게 했다”, “(재선임 이사들은) 이사회 재직 중 주주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반대표를 던질 것을 권고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 가운데 구 전 대표와 윤 전 사장은 ▲KT텔레캅의 KDFS에 대한 일감몰아주기 ▲구 전 대표의 친형 구준모 에어플러그 대표에 대한 불법 지원 ▲KT 소유 호텔과 관련한 정치권과의 결탁 ▲KT 사외이사에 대한 향흥과 접대 등 4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4가지 혐의 모두 이사진이 경영진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데 따른 결과다. KT가 ‘외풍’에서 자유로우려면 신규 이사진 및 차기 CEO는 전임 CEO와 이사진처럼 ‘내편 봐주기’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