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형사처벌하는 내용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조항이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노무법인 창조컨설팅과 공모해 노조를 와해하려 한 혐의로 징역 8개월을 확정받은 강기봉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옛 발레오만도) 대표이사가 노조법 조항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심판을 낸 것에 대한 판단이다.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의 위헌성 여부를 구체적으로 판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헌재는 과태료 부과 등 행정상 제재로는 부당노동행위의 재발을 방지하기에 미흡해 형사처벌이 필요하다고 봤다.
창조컨설팅 자문받아 노조와해
강기봉 대표, 실형 확정에 헌법소원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지난 26일 강 대표가 청구한 노조법 81조4호 등 위헌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심판을 청구한 지 1년9개월 만이다.
발레오전장의 ‘노조파괴’ 사건은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가 2010년 2월 경비업무 외주화에 반대해 쟁의행위에 들어가자 사측은 직장폐쇄로 맞대응했다. 사측은 같은해 3월 창조컨설팅과 자문계약을 체결해 기업노조인 발레오전장노조를 설립하도록 지원했다.
창조컨설팅이 세운 노조파괴 시나리오는 발레오전장에서 처음 적용됐다. 사측 지원을 받아 지회 일부 조합원들이 만든 ‘조합원을 위한 조합원들의 모임’은 2010년 두 차례 총회를 열어 금속노조를 탈퇴하고 발레오전장노조를 만들었다. 사측이 노조전임자에게 급여를 지급한 사실도 확인됐다. 이에 노조는 2012년 10월 강 대표와 발레오전장 법인을 노조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후 지회가 법원에 낸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져 2015년에야 강 대표는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강 대표의 혐의를 모두 인정해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항소심에 이어 대법원도 2019년 7월 원심을 확정했다. 유시영 유성기업 회장과 박효상 전 갑을오토텍 대표이사와 함께 노조파괴를 이유로 징역형이 확정된 세 번째 사업주가 됐다.
헌재 “지배개입·급여지원 금지 합헌”
“노조 자주성·독립성 확보 목적”
강 대표측은 상고심 도중 옛 노조법 81조4호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냈다. 신청이 기각되자 대법원 선고 직후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강 대표는 81조4호의 ‘지배하거나 이에 개입하는 행위’ 부분과 ‘노조전임자에게 급여를 지원하는 행위’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과 과잉금지 원칙을 위배한다고 주장했다. 헌재 재판관과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낸 A 변호사가 강 대표를 대리했다.
그러나 헌재는 노조법 81조4호가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먼저 ‘지배·개입 금지’ 조항이 명확성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지배·개입행위는 사용자가 노조의 조직·운영을 조종하거나 간섭하는 행위로서 노조의 자주성을 저해할 위험이 있다”며 “지배·개입이라는 다소 광범위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사용자가 자신의 행위를 결정하기에 충분한 기준이 된다”고 판시했다.
‘급여지원 금지’ 조항도 과잉금지 원칙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재판부는 “해당 조항은 노조 업무만 담당하는 근로자에 대한 비용을 노조 스스로 부담함으로써 노조의 자주성과 독립성 확보에 기여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전임자에게 급여를 지원하는 행위 자체가 지배·개입의 한 형태라는 것이다. 또 근로시간 중 근로자의 조합활동이 줄어 경영 효율성이 올라가는 등 사용자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고 강조했다.
“형사처벌, 입법목적 취지에 부합”
행정제재만으로 원상회복 불가능
특히 헌재는 이번 사건에서 부당노동행위 처벌조항인 노조법 90조의 위헌성 여부를 처음으로 판단했다. 해당 조항은 사용자가 지배·개입 또는 급여지원 등의 부당노동행위를 했을 때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다.
헌재는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이 노조법의 입법목적을 달성하는 적합한 수단이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법률에) 사용자가 부당노동행위를 했을 때 노동위원회의 구제절차가 마련돼 있으나 구제명령은 사후적인 원상회복이 목적이므로 부당노동행위를 예방하는 수단으로 보기에 불완전하다”고 지적했다. 사업주가 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면 언제든지 다시 부당노동행위를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금전 배상만으로는 노조의 피해를 완전하게 원상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부당노동행위가 노조의 조직과 활동, 노동 3권에 미치는 악영향 등을 고려하면 형사처벌보다 약한 과태료 처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취지다.
또 국회가 처벌조항을 입법한 취지가 재량의 범위를 현저하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못 박았다. 재판부는 “처벌조항이 법정형의 하한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경미한 불법성을 가진 행위에 대해서는 법관의 양형으로 알맞은 형벌이 선고될 수 있다”며 “책임과 형벌의 비례원칙에 반한다거나 과잉형벌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처벌조항이 균형성을 침해하지 않는다고도 판단했다. 재판부는 부당노동행위 처벌로써 노조의 자주성·독립성을 지키는 ‘공익성’이 중대하다면서도 사용자의 자유 제한도 합리적 범위 내에 그치고 있어 ‘법익의 균형성’을 갖췄다고 봤다. 법인에 대한 ‘양벌규정’ 역시 책임주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법조계 “노동 3권 보장 법률 취지 반영”
형사처벌제도 폐지 재계 요구 제동 걸리나
이번 결정으로 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조항 삭제를 줄곧 요구해 온 재계 행보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재계는 문재인 정권 당시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대화 과정에서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제도 폐지를 요구했다. 지난 3월 정부에 제출한 ‘신정부에 바라는 기업정책 제안’에도 같은 내용을 포함했다.
법조계는 형사처벌 제도의 취지와 유지 필요성을 강조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권두섭 변호사(직장갑질119 대표)는 “이번 결정은 부당노동행위 처벌 제도가 노조에 미치는 악영향과 노동 3권의 실질적 보장 등을 강조하면서 법률의 취지를 반영했다”고 말했다. 최종연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노조에 대한 지배·개입이나 전임자 급여지원 형태의 부당노동행위를 처벌하는 것이 노동 3권 보장에 부합한다고 결정한 데 의의가 있다”며 “급여지원도 지배·개입의 한 형태로서 금지할 필요성이 크고, 타임오프제가 시행되고 있으므로 기업 자유의 침해 정도도 크지 않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무에서는 제대로 처벌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권 변호사는 “검찰은 부당노동행위를 제대로 수사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법원 선고도 벌금형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양형기준도 지나치게 관대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실은 형사처벌 제도의 기능을 무력화하고 있어 전면적인 개선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