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 의한 노조파괴, 이대로 묻어 둘 것인가

정부에 의한 노조파괴, 이대로 묻어 둘 것인가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 김혜진
  • 승인 2020.07.30 08:00

▲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헌법 33조는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자주적인’이라는 말은 노조가 국가권력이나 기업으로부터 독립해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활동하는 조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국가가 나서서 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한 공작을 벌인다면, 이것은 단순히 부당노동행위를 넘어 노동권 보장을 명시하고 있는 헌법을 파괴하는 중대한 범죄행위다. 2018년 6월19일 민주노총 법률원에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 주도의 노조파괴 공작에 대한 국가배상청구를 제기했다. 소송 과정에서 문서송부 촉탁신청을 통해 국가권력의 노조파괴와 관련한 구체적인 자료를 언론에 공개한 바 있다.

그 내용은 매우 심각하다. 2011년 이명박 정부는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 등으로 한국노총마저 정부에 등을 돌리자 국정원과 고용노동부를 포함한 행정부처를 동원해서 국민노총을 만들었다. 민주노총의 핵심 사업장인 서울지하철공사에서는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는데도 노조가 민주노총 탈퇴를 결의하고 국민노총에 가입했다. 법원에서 서울지하철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는 무효라고 판결했지만 당시 노동부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민노총 가입을 받아들였다.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회’가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국정원 7·8국이 ‘건전노총 설립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개입한 정황도 확인되고 있다. 국민노총은 3년 만에 사라졌지만 국가가 동원된 어용노조 만들기 계획을 징죄 없이 덮어 둘 수는 없는 법이다.

과거 정부가 저지른 잘못이라고 말하고 끝날 일이 아니다. 아직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고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노조 아님’ 통보가 청와대와 국정의 주도로 이뤄졌음이 드러났는데도 정부는 아직 원상회복을 하지 않고 있다. 해고자가 포함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노조 전체를 법외노조로 만든 이 기상천외한 노조탄압은 국제노동기구(ILO)에서도 비판받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 전교조는 법외노조다.

KT노조의 경우 2009년 국정원이 나서서 민주노총 탈퇴를 밀어붙였고 민주노조를 지키고자 했던 이들은 한직으로 밀려나거나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했다. 그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있었다. 그 피해자들은 아직도 괴롭힘 속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을 이야기했다. 노동을 존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비정규직이나 노동자들을 사회적 약자로 간주하고 이 노동자들을 위한 각종 제도와 지원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노동존중이 아니다. 헌법 33조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노동자의 권리가 시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단결함으로써, 그리고 기업과 교섭하고 파업이라는 행동을 통해서 권리를 직접 찾아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과거 정부는 ‘노조할 권리’, 즉 자주적 단결권을 파괴함으로써 노동자들의 권리 찾기를 원천적으로 가로막았다. 그래서 매우 큰 범죄인 것이다. 그런데 노동을 존중한다고 하는 현 정부에서도 과거의 범죄에 눈을 감고 그로 인한 고통을 지속시키고 있다.

과거의 피해를 회복하려면 우선 진상을 제대로 밝혀야 한다. 그런데 국정원은 노조파괴 공작에 대한 자료를 내놓지 않고 있으며, 정부도 진상을 규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 정부 역시 노동자의 단결권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의심한다. ILO도 결사의 자유 관련 기본협약을 비준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비준을 한다고 하면서 노조할 권리를 제약하는 조항들, 즉 사업장 안에서의 파업 제한이나 단협 유효기간 연장 같은 개악안을 함께 내놓고 있다. 특수고용직과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위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 개정에도 소극적이다. 노조할 권리를 어떻게든 덜 보장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노조를 하려면 불이익을 당할까 봐 우려한다. 노조를 만들었지만 노동자성이 증명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설립선고증을 반려당하기도 한다.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실현하려고 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하거나 계약해지돼 버리거나, 감옥에 가거나 괴롭힘을 당해야 한다면, 그 사회는 제대로 된 노동존중 사회일 수 없다.

자주적으로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정부의 의무다. 문재인 정부에 요구한다. 과거 정부의 노조파괴 공작 정보를 공개하고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피해를 원상 복구하라. 더불어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 보장을 위한 노조법 2조 개정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김혜진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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