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의 합병,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를 승인했다. 3년 전 SK텔레콤의 CJ헬로 인수를 불허한 이후 통신사업자의 유료방송사업자 인수합병을 승인한 첫 사례다. 이에 따라 유료방송 재편의 한 축인 KT의 움직임에 관심이 집중됐다.
급변하는 기술 환경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방송통신사업자의 기업결합을 인정하면서, 유료방송 시장의 경쟁을 촉진하겠다는 것이 이번 승인 조치의 주요 골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0일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 3개사의 합병, SK텔레콤의 티브로드노원방송 인수,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 신청건에 대해 조건부 승인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LG유플러스는 앞서 지난 3월 CJ헬로 발행주식 총수의 절반과 1주를 취득하는 계약을 맺고 공정위에 신고했다. SK텔레콤은 자회사 SK브로드밴드에 티브로드, 티브로드동대문방송 한국디지털케이블미디어센터 합병계약과 티브로드노원방송 주식 취득 계약을 맺고 지난 5월 공정위에 신고했다.
공정위는 이같은 기업결합을 허용하는 대신 유료방송시장에서 경쟁 제한 우려를 줄이고, 소비자 선택원을 보호하기 위한 3년 간의 시정조치를 부과했다. 시정조치로 내려진 승인 조건은 케이블TV 수신료 인상이나 채널 감축 금지 등이다.
■ 수직·수평·혼합결합 혼재…시장 획정 어떻게?
유료방송시장의 구조개편에서 촉발된 인수합병은 방송통신분야에서 다양한 수평, 수직, 혼합형 기업결합이 발생했다. 각 시장에 따른 경쟁제한 가능성 분석을 위해 시장 획정 문제가 공정위 심사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공정위는 우선 방송분야 시장을 8VSB 유료방송시장, 디지털 유료방송시장, 방송채널 전송권 거래시장, 홈쇼핑 방송채널 전송권 구매시장, 방송광고시장으로 획정했다.
8VSB 시장과 디지털 방송을 별도 구분한 점이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 8VSB는 디지털방송 전송방식의 하나로 아날로그 방송 가입자가 기존 아날로그 상품 요금으로 디지털방송을 볼 수 있는 방식이다.
8VSB 시장과 디지털 방송의 차이는 구매전환과 VOD 이용 행태 등에서 갈렸다. 기존 아날로그 방송은 종료 예정이기 때문에 별도 시장으로 보지 않았다. IPTV가 최대 유료방송 플랫폼으로 부상했고 케이블TV도 디지털 방송 가입자 위주로 재편되는 점에 따라 IPTV와 디지털케이블TV를 디지털 유료방송으로 묶고 별도의 8VSB 시장이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한 것이다.
지리적인 시장은 디지털 유료방송시장과 8VSB 유료방송 시장에 한해 23개 방송구역으로 획정했다. 다른 방송 시장과 통신 시장은 전국시장으로 획정했다.
케이블TV의 경우 방송권역 제도에 따라 다른 방송 권역의 유료방송과 경쟁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사업자 별 시장 점유율이 방송권역에 따라 서로 다르고 요금수준, 채널 구성도 지역별로 다르다는 점에 따른 것이다.
■ SK+티브로드 경쟁제한 우려 살펴보니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의 합병은 23개 방송권역 가운데 11개 권역에서 디지털 유료방송시장의 경쟁제한성이 추정됐다. 기존 5개 지역에서 시장점유율 1위에 있는 가운데 2위 사업자와 최대 46.2% 포인트의 격차가 벌어진다. 또 12개 권역에서는 새롭게 1위 사업자가 된다.
결국 총 17개 방송 권역의 디지털 유료방송시장에서 시장지배력이 강화되는 인후합병 구조다.
공정위는 “케이블TV와 IPTV의 기업결합으로 이종플랫폼 간 경쟁구도 변화와 경쟁압력이 줄어 실질 가격 인상과 같은 경쟁제한 행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동통신, 초소속인터넷 서비스까지 디지털케이블TV에 결합상품으로 제공될 수 있고, 두 회사의 유통망이 통합돼 경쟁사 대비 판매능력도 크게 향상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디지털 유료방송인 IPTV와 8VSB 상품은 혼합결합 형태다. 디지털방송 회사인 SK브로드밴드가 티브로드의 8VSB 시장 영향력까지 갖추는 형태라는 뜻이다.
즉, 합병 이전까지 티브로드가 저렴한 8VSB 상품으로 SK브로드밴드 등의 가격인상 시장지배력 행사를 억제했다는 설명이다. 반대로 인수합병으로 8VSB 시장에서 유료방송 시장의 경쟁이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는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이에 따라 존속법인 SK브로드밴드에 합병된 티브로드가 8VSB 상품의 요금인상을 꾀할 유인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소비자 선택권을 침해할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봤다.
요금을 올리지 않고 편성 채널 수를 줄일 가능성도 충분히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미 케이블TV 복수 권역에서 티브로드가 8VSB 상품에 더 높은 채널 단가를 책정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초고속인터넷, 이동통신서비스 결합판매 등으로 저가 요금제 가입자 대상 요금제 상향판매 시도 가능성이 있다”며 “8VSB 상품을 두고 고가 요금제 상품으로 전환 가입을 유도할 가능성도 매우 크다”고 판단했다.
■ LGU+의 CJ헬로 인수 문제점은?
공정위는 티브로드 인수합병의 경우와 달리 CJ헬로 인수에서는 8VSB 시장의 경쟁제한 요소만 살폈다.
우선 CJ헬로는 LG유플러스를 8VSB 유료방송의 잠재적 경쟁자로 인식하고 있고, LG유플러스를 비롯한 잠재적 경쟁자가 CJ헬로의 가격인상 등의 시장지배력 행사를 억제한 것으로 공정위는 판단했다.
예컨대 23개 8VSB 시장에서 CJ헬로가 사실상 독점사업자지만, 가격 인상 등의 행위를 하면 인접 시장의 IPTV로 이탈할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CJ헬로가 LG유플러스에 인수되면 잠재적 경쟁사업자 하나가 줄어들면서 8VSB 유료방송 시장의 경쟁이 제한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경쟁완화에 따라 할인율 조정, 인센티브 축소 등으로 LG유플러스가 CJ헬로의 8VSB 가격인상을 노릴 수 있다는 뜻이다.
CJ헬로 인수에서 가장 쟁점이 된 알뜰폰 사업은 경쟁법 관점에서 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동통신 소매시장에서 3위 회사인 LG유플러스가 CJ헬로 인수로 얻는 시장점유율은 1.2%포인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독행기업으로 보기 어렵다는게 공정위 분석이다. CJ헬로 헬로모바일 가입자와 점유율이 감소 추세고, 알뜰폰 시장 자체의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이유에서다. 독행기업으로 인식하더라도 법에서 보는 경쟁제한성 추정요건에 해당하지 않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 별도시장 8VSB 보호 조건…공정위 M&A 승인
이같은 각각의 경쟁 제한성 우려를 고려해 인수합병 신청에 대한 조건을 담은 승인 결정이 내려졌다.
우선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는 디지털방송 유료방송시장과 8VSB 시장 모두 가격인상제한 등의 시정조치가 부과됐다. LG유플러스와 CJ헬로에는 8VSB 가격인상제한과 이용자 보호가 조건으로 부과됐다.
구체적으로 케이블TV 수신료는 물가상승률을 초과해 인상할 수 없다. 디지털 방송과 별도의 8VSB는 결합상품 출시 등의 이용자 보호책이 요구됐다. 케이블TV 채널 감축, 저가 상품 계약연장 거절, 고가 방송 상품 전환 강요, 디지털 전환 강유 등은 모두 엄격하게 금지됐다.
시정조치는 2022년 말까지 부과된다.
공정위는 “디지털화와 방송통신융합에 따라 이뤄진 유료방송시장 재편 과정에서 발생한 IPTV와 케이블TV 회사의 기업결합에 조건부 승인을 내려 혁신경쟁을 촉진하는 동시에 소비자 선택권 제약을 예방할 수 있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급변하는 기술 혁신시장의 기업결합은 기업이 빠른 변화에 적시에 대응할 수 있도록 신속한 심사를 진행하는 한편 경쟁제한 폐해는 근원적으로 방지해 소비자 피해를 예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정위가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의 ‘빅딜’을 승인함에 따라 업계의 관심은 유료방송 재편의 마지막 퍼즐인 KT와 딜라이브의 합병 여부에 모아지고 있다. SK나 LG그룹 계열이 덩치를 크게 불리면서 KT그룹 계열은 유료방송 시장 ‘압도적 1위’에서 ‘3강 중 하나’로 위상이 떨어지게 됐다.
한편, 심사 과정에서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된 홈쇼핑 송출 수수료 문제 등은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에 대책을 검토하도록 요청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