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
‘비판적 지지’라는 말이 있었다. 이 말은 1987년 대선 전후 민족민주 운동권에서 한동안 많이 사용됐다. 87년 대선은 6월 민주항쟁에도 불구하고 김영삼·김대중 양김이 분열해 김종필과 노태우를 포함한 1노3김이 겨루는 4파전이 됐다. 이런 선거구도로 인해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2인자였으나 기만적 6·29 선언으로 전두환과 차별화하며 대통령에 출마한 노태우가 당선될 수 있었다. 4자 경쟁 구도 자체가 한국 정치의 배후에 있는 큰손이 작용한 결과였다.
아무튼 당시 사람들은 87년 6월 민주항쟁에도 불구하고 타도 대상이었던 군사독재세력이 합법적인 선거절차를 거쳐 정권을 장악한 데 대해 한편으로는 황당해하고 허탈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책임자들에게 분개했다. 그 책임은 양김 분열에 지워졌고, 그 가운데서도 4자 필승론을 내세우고 출마한 김대중 후보에게 많이 지워졌다. 또 김대중의 출마를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는 명분을 붙여 지지한 민통련을 비롯한 친김대중 세력에게도 함께 지워졌다. 그들은 민족민주운동 안에서 ‘비판적 지지’파, 줄여서 ‘비지’파라고 불리며 비난받았다.
그런데 얼마 전 조창익 전교조 위원장이 이와 비슷한 표현을 했다.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 등을 요구하는 천막단식농성 중에 한 신문기자와 인터뷰하면서 문재인 정부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비판과 지지를 동시에 보내는 전교조”라는 표현을 썼다. 이 말은 비판할 것은 비판하지만 지지할 것은 지지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라는 단서를 붙여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게 무비판적 지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지지한다는 표현을 하는 것은 운동권 정서로는 쉽지 않는 일이다. 물론 이 표현은 비판적으로 지지한다고 했지만 ‘비판적’이란 말은 수식어에 불과하고 실은 정치인 김대중을 전폭적으로 지지·추종한 지난날의 ‘비판적 지지’파의 태도와는 분명히 맥락도 다르고 결도 다를 것이다. 즉 지지할 것은 지지하지만 정권에 대해 잘못된 점에 대해서는 분명한 정치적 독자성을 가지고 비판하고 투쟁할 것임을 밝힌 것일 게다. 필자는 평창 겨울올림픽에 대해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기를 제안한다.
평창올림픽은 사실 우리 국민 일반에게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다지 큰 관심을 끌지 못한 행사였다. 다만 강원도에서는 14조원에 가까운 천문학적 개최비용 투입에다, 스키장을 짓겠다고 가리왕산의 500년 된 원시림을 파괴하는 등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마구 훼손하는 데 대한 반대운동이 활발했다. 박근혜 정부와 함께 더불어민주당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집중적으로 비판받았다. 박근혜의 비선실세 최순실이 올림픽 이권사업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다. 그런데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월1일 신년사에서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이에 호응해 신속히 판문점에서 남북고위급 대화가 이뤄지고,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 꾸려지고, 북측 예술단이 판문점을 통해 내려와 강릉과 서울의 공연할 곳을 살펴보고, 겨울올림픽 개막을 축하하기 위한 남북 금강산 합동문화행사와 남북 선수 공동훈련 현장을 사전 점검할 남측 선발대가 방북해 마식령 스키장과 갈마비행장을 둘러보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평창’올림픽은 갑자기 ‘평화’올림픽이 됐다. 그리고 이를 둘러싸고 온·오프라인에서 평화올림픽이 아니라 평양올림픽이라는 수구세력의 공격이 벌어지고, 이와 관련해 문재인 정부 지지율이 급락하는 현상들이 진행됐다. 지지율 하락에는 비트코인 금지 문제도 관련돼 있지만 말이다.
이렇게 되자 문재인 대통령은 1월22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바람 앞 촛불 지키듯 대화 지켜 달라” “기적 같은 대화 살리자” “정치권과 언론도 힘 모아 주시길” 등의 호소하는 말을 쏟아 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평창올림픽은 국내외적으로 한반도에 전쟁위험을 제거하고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계기일 수 있다는 커다란 정치적 함의를 지니는 스포츠 행사가 됐다. 따라서 우리는 이 스포츠 행사에 무관심하거나 무대응할 수 없게 됐다. 물론 그런 전환의 가능성이 그다지 높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전쟁위기가 긴박한 만큼 작은 기회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평화를 상징으로 삼고 치러지는 평창올림픽에도 불구하고 한반도는 전쟁의 먹구름에 싸여 있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인 키리졸브·독수리 훈련이 올림픽 경기 이후로 연기됐다. 그러나 이 연기는 어디까지나 올림픽 경기 기간에 한정돼 있다. 미 고위 당국자들은 경기가 끝나면 곧바로 연기된 군사훈련을 실시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남북은 직통전화를 재개통했고(1월3일), 서해군통신선을 연결했고, 고위급 대화도 했지만(1월 9일) 북미 간에는 어떤 공식 대화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이 비핵화 입장을 밝히지 않는 한 대화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핵·미사일 관련 시설에 대한 외과수술 식 공격과 김정은 참수작전을 수시로 입에 올리고 있다. 한반도 평화는 이렇게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상황에 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또다시 광장에서 촛불을 들어야 할 상황이다.
이번에는 미 대사관이 있는 광화문이나 사드가 배치된 성주가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올림픽 경기를 구경하기 위해 오는 평창에서 촛불을 들자. 전쟁반대 촛불, 평화를 요구하는 촛불을 들자. 가능하면 올림픽 기간 내내 촛불을 들자. ‘전쟁반대 평화실현’을 슬로건으로 해서 한반도에 전쟁을 만들어 내고자 광분해 있는 트럼프를 비롯한 미제 전쟁광들을 세계 시민들 앞에서 폭로·규탄하자. 이것은 “바람 앞의 촛불 지키듯 대화 지켜 달라”는 문재인 대통령 호소에 호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만약 정부가 그런 평화적 촛불집회를 하지 못하게 하면, 문재인 정부의 평화올림픽 슬로건이 허구적임을 비판하고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를 규탄하자.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김승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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