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소리] 지점장 회식 건배사가 “이번 투표 1번 찍자” 불법 강요…정부는 뒷짐만

KT 노동조합 위원장 선거가 불법으로 얼룩지고 있다. 관리자들이 동원돼 어용노조 후보를 밀어주는 적폐가 올해도 재현되고 있다. 이를 막아야 할 고용노동부는 고발장 접수 보름이 넘도록 제대로된 수사를 하지 않고 있다.

7일 KT 수도권 A지점 직원의 제보에 따르면 전국 각 지점장과 팀장 등 관리자들이 노동조합 선거에서 회사로부터 공천받은 ‘기호 1번 후보’에게 투표하라고 직원들을 종용하고 있다.

서울의 한 KT지점에서는 노동조합선거공고가 난 지난 1일 열린 회식자리에서 지점장 K씨가 건배사를 하며 “이번 선거에서 기호 1번을 찍으라”고 강요했다. 같은 지점 C 팀장 역시 “기호 1번을 찍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직원들을 종용했다. 또 다른 KT 직원은 “10월 말, 11월 초에 회사에서 전국 지점별 체육대회와 회식이 열렸는데 곳곳에서 관리자들의 ‘1번 투표 강요’가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KT(자료사진)
KT(자료사진)ⓒ제공 : 뉴시스

관리자들이 투표를 종용하고 있는 기호 1번 김해관 후보는 지난달 19일 KT 황창규 회장과 전임 노무관리 임원이 ‘공천’했다는 의심을 받는 인물이다. 김 후보는 지난 20여 년간 KT 어용 노동조합 핵심 간부를 두루 거치며 직원들의 명예퇴직, 임금삭감, 복지 축소 등을 사측과 합의한 장본인 중 하나다.

KT 노동자들과 시민사회 단체들은 황창규 회장과 전임 노무관리 임원인 신현옥 현 KT대구고객본부장이 친사용자 성향의 노조 간부인 김해관 후보를 공천해 관리자들을 동원,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고 본다.

피소된 KT 황창규 회장, 정부는 보름 넘도록 서류검토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성남지청으로 관청 ‘핑퐁게임’도

법은 ‘노동자가 노동조합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지배하거나 개입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어길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황 회장과 신현옥 본부장이 노동조합 후보를 공천하는 행위는 명백한 지배 개입으로 볼 수 있고 이런 혐의로 두 사람을 비롯한 회사 경영진은 지난달 19일 고용노동부에 피소됐다.

고소장을 접수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20여 일 가까이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다가 지난 6일이 되어서야 사건을 성남지방고용노동청으로 이송했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20여 일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피고소인 소환 등 기본적인 조사도 하지 않았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관계자는 “자료 검토에 시간이 걸렸고, 피고소인들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어 KT 본사가 있는 성남 고용노동청으로 이송했을 뿐”이라며 “KT 광화문 본사에 방문해 ‘노조선거에 개입하지 말라’고 지도를 했다”고 설명했다. 사건이 처음 접수된 서울에서 기초조사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남으로 이송됐으니 본격적인 수사는 더 미뤄질 수밖에 없다. KT노동조합 투표가 불과 10일 앞으로 다가왔다는 점에서 감독 당국이 늑장 대응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당국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 KT 노동조합 선거는 사측의 개입으로 점점더 혼탁해지고 있다. 회사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친 사용자 성향의 후보를 공천하고 당선을 종용하는 것도 모자라 민주파 후보의 선거 등록을 막고 있다는 정황이 확인된 것이다.

후보 등록을 위해서는 직원들의 추천을 받아야 하는데 관리자들이 민주파 후보를 추천한 직원들에게 추천 삭제를 종용했다는 정황이 확인된 것이다.

KT 민주화연대에 따르면 공고가 나던 지난 1일 수도권의 한 지역본부에서 민주파 후보의 추천 서명을 받던 중 이미 추천 서명을 마친 직원 6명이 황급하게 서명대로 다가와 “미안하다”며 자신의 서명을 삭제해 달라고 요구했다.

KT 민주화연대 관계자는 “지역본부 관리자들이 민주파 후보를 추천한 명단을 파악하고 삭제하라고 압력을 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서명 삭제를 요구한 직원 중 한 명이 ‘이런(관리자들의 투표개입) 건 구조적인 문제인데 높은 데서 해결해야 한다’고 사정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겠냐”고 지적했다.

제주와 충북 등 일부 지역에서는 사측의 ‘추천 방해 행위’로 결국 후보 등록이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화연대는 삭제된 추천용지 등을 근거로 황창규 회장과 해당 지역 본부장, 담당 팀장 등을 부당노동행위로 고발했다.

KT 민주화연대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이나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부당 노동행위를 척결하겠다고 하는데 현실에서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며 “투표가 10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끝나고 나서 수사해봐야 무슨 실효성이 있겠나. 고용노동부는 신속하게 수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굵은 글씨로 지워진 민주파 노동조합위원장 후보 추천 서명용지.
굵은 글씨로 지워진 민주파 노동조합위원장 후보 추천 서명용지.ⓒ제공 : KT민주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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