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소리] 2014년, KT 황창규 취임과 삼성식 노무관리의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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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자료사진ⓒ제공 : 뉴시스

얼마전 KT 사측이 노동조합 위원장 후보를 낙점했다는 녹취록이 공개됐습니다. 그간 ‘설’로만 떠돌았던 KT 고위층의 선거개입 정황이 포착된 것입니다. ‘민중의소리’는 관련 사건을 취재하다 KT에서 15년 이상 노무관리를 해왔던 관리자를 만났습니다.

그에게서 들은 KT 노무관리의 실체는 생각보다 충격적이었습니다. 노동조합 선거가 다가오면 사측은 직원의 성향을 분석해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리스트에 오른 직원은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회사는 부정선거로 만든 노동조합과 손잡고 직원들을 마음대로 정리해고 하고 민주노조를 세우려는 세력은 탄압했습니다.

이 관리자는 “박근혜도 감옥에 간 마당에 이제 KT도 변해야 한다. 회사는 부정선거개입을 중단해야 한다”고 수차례 호소했습니다. 그의 호소를 3회에 걸쳐 보도합니다.

① KT 노무팀장의 양심고백 “우리는 작은 국정원이었습니다”
② KT 노무팀과 KT 어용노조는 어떻게 ‘부정선거’를 만들었나
③ 2014년, 황창규 취임과 삼성식 노무관리의 참사

이현규(가명) 팀장을 비롯한 노무팀과 관리자, KT 경영진은 자신들이 당선시킨 노동조합의 협조를 받아 ‘경영 효율화’를 차례차례 진행했다. 노동조합은 직원들의 의사도 묻지 않고 합의서에 사인했다. 노동조합 간부들은 ‘떡고물’을 받았고 직원들은 줄줄이 명예퇴직을 당했다.

2만3천 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KT 사업이 뭉텅뭉텅 외주화됐고, 단일 사업장으로는 최다 인원인 8천304명이 명예퇴직 당했다. 이 과정에서 그나마 소수로 남아있던 ‘민주파’가 숙청됐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최고경영자 출신 황창규 회장이 취임한 2014년부터 최근 3년간 벌어진 일이다.

이 팀장은 “이제 황창규 회장도, KT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직원 목에 칼자루 들이미는 이상한 ‘노사합의서’
‘황창규 효과’ 신기루, 3개월만에 사라져

이현규 팀장은 “전임 회장인 이석채 회장이 워낙 나쁜 짓을 많이 했기 때문에 황창규 회장에 대해서는 직원들의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과 석 달 만에 직원들의 기대는 무너졌다. 삼성전자 출신의 황창규 회장이 취임하고 처음으로 한 일은 대규모 인력구조조정이었다.

2014년 4월 8일, ‘노사합의서’가 발표된다. ‘현장 개통과 에프터서비스, 영업과 창구 업무를 폐지하겠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합의문에는 “종사원들의 요구를 반영하고 직원들의 새로운 인생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2014년 4월 30일 자로 특별 명예퇴직을 시행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특별 명예퇴직 대상자는 ‘근속기간 15년 이상이면서 정년 잔여기간이 1년 이상인 자’였다. 대상자는 전 직원의 70%인 2만3천여 명에 달했다. 관리직들이 총 동원돼 명예퇴직 압박은 단 20일 만에 8천304명을 명예퇴직 시켰다. 8천304명은 단일 사업장 명예퇴직 규모로는 사상 최대다.

황창규 KT 회장이 지난 3월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24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2017.03.28.
황창규 KT 회장이 지난 3월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24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2017.03.28.ⓒ제공:뉴시스

이와 함께 노사합의문에는 대학학자금 지원 폐지, 사무·기술 직렬 통폐합, 임금피크제 도입의 내용도 담겼다. 직원들의 고용·임금·복지가 한꺼번에 대폭 축소되는 일이었지만 황창규 회장은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사측 관리자들은 “이게 바로 삼성 스타일”, “끝까지 간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명예퇴직을 거부한 사람 중 일부는 CTF로 발령을 받았다. ‘Cross Function Team’ 의 약자인 CTF는 신설 ‘업무지원조직’이었다. 명예퇴직을 거부한 직원 300여 명이 이 신설조직으로 발령을 받았다. 이 팀장은 “CFT로 간 직원들을 많이 아는데, 그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CFT가 ‘민주파 세력 확장 봉쇄 전략’이라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발령받은 직원 상당수는 선거 때마다 민주노조를 위해 활동했던 직원들이었다. 소수에 불과했던 민주파까지 몰아내겠다는 이른바 “무노조 삼성의 황창규식 노무관리”가 KT에서도 반복됐고 노동조합은 여기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이른바 ‘삼성스타일’의 노무관리였다.

떡고물 얻어 먹는 조합간부, 사용자 ‘공천’에 웃고 울고

회사의 횡포에 맞서 직원들의 권익을 보호해야 하는 KT 노동조합 간부들은 경영진의 이익에 협조하며 ‘떡고물’을 가져갔다.

회사는 지부장 등 노동조합 중간 간부들의 노동 강도를 낮춰줬다. 반면 인사고과는 높혀줬다. “설렁설렁 일해도 최소한 2등급을 받는다”는게 이 팀장의 설명이다. 지방본부장과 중앙위원장에게는 한해 조합비 70~80억원의 예산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조합비를 걷어 직원들에게 주는 각종 품목에 대한 리베이트, 직원들의 조사를 도맡는 상조회사 운영권한도 노조 중앙 간부들의 몫이다.

이 팀장은 “그러다보니 노동조합 간부는 다음 선거에서 회사가 자신을 ‘공천’해주지 않을까봐 노심초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가 노동조합 간부를 ‘낙점’하는 것을 두고 “공천”이라고 표현했다. 최근 노사팀 팀장의 녹취에서 확인됐던 황창규 회장과 신현옥 본부장의 ‘위원장 내정’에 의혹에 대해 그는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현규 팀장은 “KT에는 ‘회사가 공천하면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서울의 A지부, 황성진(가명) 지부장 이야기를 꺼냈다. 황 지부장은 평소 활달한 성격에 의협심이 있는 스타일이라 그를 따르는 직원들이 많았다. 덕분에 황 지부장이 오랫동안 지부장을 연임해 왔다는 것이다.

문제는 황 지부장이 친사용자 성향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선거때마다 황 지부장과 맞서겠다는 친 사용자 성향의 후보도 없었다. 하루는 A지부를 담당하는 노무팀 팀장이 그를 찾았다. 팀장은 “계속 후보를 선정하지 못하면 내가 날아갈 판”이라고 호소했고 “아무나 후보가 될 수 있게 황 지부장이 천거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황 지부장은 당선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유약한 P 씨를 추천했다. 지점 직원 누구도 그가 당선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투표 결과는 P 씨의 2표 차 승리였다. 회사의 조직적 개입이 만든 ‘또하나의 부정선거’였다.

이현규 팀장은 “KT 노동조합은 상식적인 ‘어용노조’와도 다르다. 사실상 회사의 하위 조직”이라며 “노사 모두가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고 있는 셈인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직원들에게 돌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5년 3월 30일 오후 경기 성남시 판교 공공지원센터에서 열린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 참석해 황창규 KT 회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5년 3월 30일 오후 경기 성남시 판교 공공지원센터에서 열린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 참석해 황창규 KT 회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제공 : 뉴시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부역자 황창규 회장 처벌이 KT 정상화의 첫걸음

이 팀장은 “KT가 바뀌기 위해서는 황창규 회장의 처벌도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동조합이 회사의 요구에 ‘묻지 마 합의’를 해주는 동안 황창규 회장을 비롯한 KT 경영진은 국정농단 세력을 돕고 있었다.

특검에 따르면 황창규 회장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18억 원을 출연했다. 차은택과 최순실의 지인인 이동수와 신혜성을 광고담당자로 앉혀 68억 원의 광고료를 몰아줬다는 혐의도 받는다. 이런 혐의에도 불구하고 올해 초 KT 이사회는 황 회장의 연임을 결정했다. 그의 임기는 오는 2020년까지다.

하지만 임기가 보장될지는 미지수다. 황 회장은 2014년, 노동조합 대표자 선거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 2016년 박근혜 국정 농단 부역 혐의, 2017년 노동조합 대표자 후보 낙점 혐의 등으로 검찰과 고용노동부에 고소·고발당했다. 이현규 팀장의 ‘양심고백’이 아니더라도 황 회장과 KT의 부당노동행위는 이미 수많은 증거자료가 공개됐다. 결국 황창규 회장의 임기는 검찰과 고용노동부의 입장, 즉 문재인 정부의 판단에 달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인터뷰 기사를 마무리하며

KT 이현규 팀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21일 밤, 서울 외곽의 한 커피숍에서 진행됐다. 약속장소에 나타난 이 팀장은 “봐둔 커피숍이 있으니 그리로 가자”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노출되는 것을 경계했다. 사전에 인근 커피숍을 모두 둘러보고 가장 사람이 없는 곳을 고른 것이 이 팀장이었다. 인터뷰 중간중간 “녹음을 끄면 안 되겠냐”거나 “익명 처리에 신경을 써달라”고 여러 차례 요구했다.

인터뷰는 5시간 넘게 진행됐다. 자신이 해왔던 노무팀의 비밀을 하나씩 고백하는 순간순간, 그의 얼굴에서는 짙은 회한이 느껴졌다. 이현규 팀장은 “이렇게 해서 남는 것이 무엇인가, 후회가 들었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 자리를 떠나는 그의 뒷모습은 조금은 홀가분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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