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소리] KT 노무팀장의 양심고백 “우리는 작은 국정원이었습니다”

KT 노무팀장의 양심고백 “우리는 작은 국정원이었습니다”

[인터뷰①] 노무팀장으로 15년 이상 근무한 베테랑 관리자 육성증언

얼마전 KT 사측이 노동조합 위원장 후보를 낙점했다는 녹취록이 공개됐습니다. 그간 ‘설’로만 떠돌았던 KT 고위층의 선거개입 정황이 포착된 것입니다. ‘민중의소리’는 관련 사건을 취재하다 KT에서 15년 이상 노무관리를 해왔던 관리자를 만났습니다.

그에게서 들은 KT 노무관리의 실체는 생각보다 충격적이었습니다. 노동조합 선거가 다가오면 사측은 직원의 성향을 분석해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리스트에 오른 직원은 인사고과 악화까지 감내해야했습니다. 회사는 부정선거로 만든 노동조합과 손잡고 직원들을 마음대로 정리해고 하고 민주노조를 세우려는 세력은 탄압했습니다.

이 관리자는 “박근혜도 감옥에 간 마당에 이제 KT도 변해야 한다. 회사는 부정선거개입을 중단해야 한다”고 수차례 호소했습니다. 그의 호소를 3회에 걸쳐 보도합니다.

① KT 노무팀장의 양심고백 “우리는 작은 국정원이었습니다”
② KT와 KT노조는 어떻게 부정선거를 만들었나
③ 2014년, 황창규 취임과 삼성식 노무관리의 참사

증언을 한 이현규(가명)씨는 KT 수도권 지사의 노사업무 총괄팀장으로 15년 이상 근무했다. 그간 KT 노사관리에 대한 문제점이 수차례 알려진 바 있지만 실제 선거 개입을 주도한 팀장이 직접 증언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팀장은 21일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KT 사측의 선거개입은 음성적이면서도 매우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폭로했다. 이 팀장의 증언에 따르면 전국 280여개 KT 지사·지점의 책임자들은 3년에 한 번 돌아오는 노동조합 선거 마다 중간관리자인 팀장을 동원해 소속 직원들의 성향을 파악해 표를 만들고 친사용자 성향의 노동조합 후보에게 투표하라고 종용했다.

KT(자료사진)
KT(자료사진)ⓒ제공 : 뉴시스

선거 앞두면 관리자들 조직적으로 직원 성향표 만들어
목표 득표율 등 기초자료로 활용

노동조합 위원장 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 지점장들은 중간관리자인 각 팀장들을 모아 ‘사전준비’를 지시한다.

사전준비의 핵심은 직원들 성향을 파악하고 목표 득표율을 정하는 것이다. 회사 지시에 잘 따르는 ‘충성파’는 ○, 평소 “바른소리”를 잘하고 자기 주장이 강한 직원, 민주노조를 지향하는 직원은 X, 성향이 불분명한 직원은 △로 표시한다.

이현규 팀장은 “성향 조사표는 팀장들이 직접 수기로 작성한다. 파일로 만들면 유출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며 “수기로 작성한 성향 조사표는 지사장에게 보고된다”고 말했다.

이 팀장의 역할은 성향 조사표가 정확하게 작성됐는지 점검하는 일이다. 보고된 성향조사표가 실제 직원들 성향과 일치하는지를 평가하고 지사장에게 보고한다. 이 팀장은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내 말 한마디에 따라 성향표를 작성한 팀장이 지사장에게 혼이나거나 심하면 인사 고과가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음 단계는 파악된 성향에 따라 ‘목표 득표율’을 정하는 일이다. 팀원 10명 중 ○ 4명, △ 3명, X 3명으로 조사됐다면 득표율을 40%로 정하는 식이다. 하지만 40%를 그대로 보고했다가는 ‘무능력한 관리자’가 된다. 선거에서 △ 3명중 최소한 두 명을 ○로 만들겠다고 목표를 정한 뒤 목표 득표율율 60%로 높여잡는 것이다.

다른 팀장들과 목표치를 공유하고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눈치작전도 벌어진다. 우리팀이 상대적으로 낮다면 목표치를 조금더 높게, 너무 높다면 다소 낮게 ‘조정’하는 것이다. 이 팀장은 “이 과정에서 팀장들 간 경쟁이 발생해 최종 취합된 목표 득표율은 90% 이상인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사측이 조사한 성향표와 별도로 입수한 성향표를 비교해 상호보완하는 것 역시 이 팀장과 같은 노무팀의 몫이다. 두 성향표를 ‘크로스체크’해 판단 근거를 공유하고 보완해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다.

△는 어떻게 ○가 되나
회유·압박은 기본, 핵심은 ‘인사고과’

직원들의 성향 파악이 마무리 되면 본격적인 득표 전쟁이 시작된다. 팀장들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성향 직원들이다. 직접 만나서 투표를 종용하면 불법이기 때문에 일단 ○성향인 직원을 종용해 △성향 직원을 설득한다. 출신 지역·학교, 평소 친하게 지내는 직원들도 △성향 직원 설득에 이용한다. “회사가 어렵다는데 좀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회유하거나 “괜히 팀장한테 찍혀서 좋을게 뭐 있냐”고 압박하기도 한다.

설득이 어려운 직원들에게는 “투표 결과를 인사고과에 반영하겠다”고 협박한다. KT는 지난 2009년 호봉제를 전면폐기하고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 KT는 ‘S-E-G-N-U’ 총 5단계로 직원들을 평가하는데 다른 기업에 비해 각 단계별 편차가 크다. 하위 등급인 N부터는 연봉이 사실상 줄어들고 매년 이 금액이 연봉 협상에 반영되기 때문에 많게는 수천만원의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이 팀장은 “노사담당 팀장들이 다른 팀장들에게 득표 활동을 종용하면서 ‘팀장은 한 손에는 휴대폰을 다른 한손에는 N을 들고다녀야 한다’고 교육한다”고 말했다.

내심 민주노조를 지지하는 직원들도 인사고과에서 한 두 번 낮은 평가를 받으면 10중 8,9는 친 사용자 성향으로 돌아선다는게 이 팀장의 설명이다. KT 노동조합 선거는 3년에 한 번 11월 말에서 12월에 치러지는데 선거가 끝나면 곧바로 인사고과 평가에 들어가는 것도 직원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KT(자료사진)
KT(자료사진)ⓒ제공 : 뉴시스

국정원식 조직체계 ‘노무팀’
첩보영화 방불케 하는 지역본부 담당자와 ‘접선’

‘지역본부 노무팀’에 지사 상황을 직접보고 하는 일 역시 이현규 팀장의 업무다. KT 노무팀은 ‘본사-지역본부-지사’으로 이어지는 ‘직보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게 이 팀장의 설명이다. 일선 노무팀장은 지사에 속해 있지만 지사장 이외에 또다른 보고루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 내용에는 직원들의 움직임, 민주노조 관계자들의 동향 뿐 아니라 팀장, 지점·지사장 등 간부들의 업무 태도와 성과도 포함된다. 이렇게 취합된 정보는 KT 본사 노무팀으로 다시 직접보고 된다. 이 팀장은 “회사 노무팀은 국정원 같은 조직”이라고 말했다.

지역본부 노사협력팀과 지점·지사의 노무팀장들의 만남은 첩보전을 방불케 한다. 만나는 장소는 대개 지사에서 수십m 떨어진 건물 주차장이다. 담당자는 만나기 전날 전화로 “00빌딩, 지하 2층 주차장에 서 2시에 보자”고 통보한다. 약속장소에 나가면 담당자는 차에서 내리지 않는다. 노출을 꺼리기 때문이다. 만남은 차안에서 짧게 진행된다. 선거가 끝날때까지 본부 담당자와의 이같은 비밀 만남은 수시로 이뤄진다.

취합된 정보가 황창규 회장에게도 직접보고되는 것일까? 이 팀장은 “고위급의 보고 체계를 밑에서 어떻게 알겠나. 문고리 3인방이 박근혜에게 어떻게 보고하는지 청와대 수석들도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다만 노무팀이 취합한 정보가 간부 인사에 반영된다는 정황은 확인할 수 있다. 이 팀장은 “팀장들이 선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지, ‘말을 듣지 않는 지사장’은 없는지 체크해서 지역본부 담당자에게 보고한다”며 “선거가 끝나면 결과를 통해 인사에 반영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친사용자 성향의 후보 득표율이 저조하거나, ‘목표치’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지역은 담당 노무팀장이 문책을 받는다. 정도에 따라 교체되기도 한다. 팀장뿐 아니라 지점·지사장 역시 결과에 따라 교체될 수 있다.

지난 2014년 선거에서 사측 후보가 패한 수도권의 한 지점장은 보직을 박탈당하고 평직원으로 강등된 뒤 다른 지점으로 좌천됐다. 당시 지사장이었던 상무 역시 선거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계약이 해지됐다. 이 팀장은 “회사에서는 ‘실적 부진’이라고 좌천 사유를 밝히지만 직원들은 대부분 ‘선거 결과 때문’이라고 받아 들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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