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삼성·네이버·롯데백화점 ‘알뜰폰’ 시장 뛰어드나

삼성·네이버·롯데백화점 ‘알뜰폰’ 시장 뛰어드나

등록 :2015-05-03 20:55


알뜰폰 이용자 수와 미래 서비스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알뜰폰’으로 불리는 이동통신 재판매(MVNO: 기존 이동통신사의 통신망을 빌려 쓰는 방식) 서비스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기존 이동통신 서비스를 혁신시키고, 구글·네이버·삼성의료원·현대자동차·신세계백화점·롯데백화점·순복음교회 같은 곳들을 이동통신 재판매 시장으로 끌어들이는 촉매 구실을 할 것이란 시나리오까지 그려지고 있다. 지금은 이동통신 이용자 대다수가 에스케이텔레콤(SKT)·케이티(KT)·엘지유플러스(LGU+) 가입자이지만, 머지않아 시나리오에 거론되는 굵직한 알뜰폰 사업자로 대거 분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사자들은 이런 얘기에 “웬 뚱딴지같은 소리”라며 황당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시나리오는 이통사 내부에서도 ‘머지않아 들이닥칠 현실’로 꼽히고 있고, 정부의 정책 담당자들도 ‘현실화할 때가 됐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 고위 관계자는 “구글이 이동통신 재판매 시장에 뛰어드는 것을 보고 놀랐다. 삼성도 모바일 헬스케어에 특화된 이동통신 재판매 서비스를 준비 중이라는 말이 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구글은 지난 3월 초 이동통신 재판매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했고, 최근 ‘프로젝트 파이’라는 브랜드의 이동통신 재판매 서비스를 미국에서 먼저 시작했다. 티-모바일과 스프린트의 통신망을 이용한다. 월 20달러에 음성통화와 문자메시지를 무제한 이용하고, 데이터통화료는 1기가바이트(GB)당 10달러로 정했다. 구글은 홍콩과 남미 쪽 이동통신 재판매 시장 진출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부 조규조 통신정책국장은 “구글이 통화료 몇푼 벌겠다고 이동통신 재판매 시장에 뛰어들었겠느냐”고 묻는다. 그는 “구글이 음성과 문자메시지 중심의 기존 이동통신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모습의 이동통신 서비스를 이미 준비했거나 만들어갈 계획을 세웠을 수 있다. 구글이 우리나라 알뜰폰 시장에 진출하는 것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구글이 뛰어들면서 이동통신 재판매 시장은 가계통신비 경감보다 이동통신 서비스의 혁신이라는 측면에서 더 주목을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동통신 재판매 서비스의 장점은 차별화된 서비스와 요금이다. 이동통신 서비스가 음성통화와 문자메시지 중심으로 이용될 때는 ‘싼 요금’이 주요 차별화 포인트였다. 하지만 엘티이(LTE)와 무선랜(와이파이) 등 빠른 데이터통신 속도를 가진 이동통신망이 확산되면서부터는 데이터통신 기반의 차별화된 서비스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른바 영화·스포츠·음악·헬스케어·백화점·서점·종교 등에 각각 특화된 이동통신 재판매 서비스가 등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알뜰폰 시장의 앞날과 관련해 눈길을 끄는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가 삼성의료원이나 삼성에스디에스(SDS)가 모바일 헬스케어에 특화한 이동통신 재판매 서비스를 내놓는 것이다. 이 사업자는 가입자에게 혈압·당뇨·맥박·심전도 등을 일정 시간 간격으로 자동 측정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웨어러블 기기와 스마트폰을 함께 지급한다. 웨어러블 기기는 센서로 측정한 수치들을 스마트폰의 모바일 헬스케어 앱으로 보내고, 앱은 전송받은 수치를 살피다가 급변하거나 정상 범위를 벗어나는 흐름을 보이면 사전에 배정된 가입자의 온라인 주치의한테 알린다. 이후 의사는 가입자 스마트폰이 보내온 수치를 살펴보고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가입자와 영상통화로 문진을 하고, 긴급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제휴를 맺은 지역 거점병원을 통해 구급차를 가입자가 있는 곳으로 보낸다.


구글 알뜰폰 가세 “서비스혁신” 기대속
영상통화로 문진하는 헬스케어에
영화·서점·종교 등 서비스 특화 전망

“삼성·신세계 시장진입 막을 방법 없다”
기존 이통사는 통신망임대수익 확장 

정부 알뜰폰 활성화 팔 걷어붙여
기존 이통사도 물밑 자구책 마련


주위 어르신들한테 물어보니, 웨어러블 기기, 스마트폰 값과 이용료를 합쳐 월 10만원 이하로 요금이 정해지면 고혈압과 당뇨 등 성인병 진단을 받았거나 위험군에 속하는 중장년층의 상당수를 가입자로 유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몇만원을 더 내면 심근경색 등 위험한 상황이 예상될 때 구급차를 보내주는 식으로 요금제 상품을 차별화하는 것도 가능해 보인다. 더욱이 삼성의 경우, 삼성의료원(병원)과 삼성전자(스마트폰과 웨어러블 기기), 삼성메디슨(의료진단기술), 에스원(보안), 삼성생명(보험), 삼성에스디에스(서비스 개발 및 운영) 등 계열사 역량만으로도 이런 서비스가 가능하다. 계열사 쪽에서 보면, 세계적인 고령화 추세로 잠재력이 엄청나게 커지고 있는 시장을 개척하고, 사물인터넷 같은 기술을 선점할 기회를 얻는 부가효과도 기대해볼 수 있다.


같은 관점으로 보면, 신세계나 롯데는 백화점 브이아이피(VIP) 고객한테 특화되고, 현대차는 차 운행과 자동차 생활 기반의 이동통신 재판매 서비스를 내놓는 게 가능하다. 현대는 금강산이나 개성공단 전용 이동통신 재판매 서비스를 할 수 있다. 씨제이(CJ)헬로비전이 계열사들과 손잡고 이동통신 재판매 서비스를 영화나 외식 등에 특화되게 바꾸는 등 기존 알뜰폰 사업자들의 변신도 예상해볼 수 있다. 미래부 관계자는 “씨제이와 이마트가 이미 진출해 있으니, 삼성·신세계·롯데·현대차·네이버 등이 들어온다고 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미래부는 오히려 알뜰폰 활성화를 위한 물꼬 트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미래부는 알뜰폰에 대한 전파 사용료 감면을 연장하고, 알뜰폰 사업자들이 이통사한테 지급하는 통신망 임대 가격을 가능한 한 큰 폭으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알뜰폰 온라인 판매 사이트도 만든다. 이동통신 재판매의 사업성을 높여 ‘손님’을 끌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미래부 김경만 통신경쟁정책과장은 “기존 이통사들은 가입자 요금 중심의 수익원을 통신망 임대 등으로 넓히고, 알뜰폰 사업자들은 특화 콘텐츠 앱을 통한 광고 수익 등으로 가입자의 통신요금을 낮춰주는 수익모델을 개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이동통신 재판매 시장의 규모와 서비스 모두 머지않아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뀔 수밖에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이용자들이 이통사에 가입할 필요가 없어진다. 최근 건강검진에서 고혈압 판정을 받아 언제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지 불안하다는 김아무개씨는 “만약 삼성의료원이 모바일 헬스케어 특화 이동통신 서비스를 내놓는다면, 요금 부담이 돼도 기꺼이 가입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이유로 백화점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롯데백화점이나 신세계백화점에 특화된 알뜰폰 사업자로 옮기고, 구글 서비스 애용자들은 구글의 알뜰폰으로 번호이동을 하게 될 수 있다.


정부 정책과 여론 등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 중인 기존 이통사들이 이렇게 가도록 놔둘 리가 없는 등의 변수가 있긴 하다. 하지만 이동통신 재판매 시장 활성화 흐름을 거스르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동통신 재판매 서비스 토양은 이른바 ‘기가인터넷’과 ‘5세대 이동통신’ 등으로 갈수록 좋아진다. 정부가 알뜰폰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지원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있고, 삼성이 ‘이재용 체제’의 신성장동력으로 바이오와 의료서비스 등을 앞세우고 있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기존 이통사들도 물밑에서 자구책 마련에 나서는 양상이다. 장동현 에스케이텔레콤 사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이통사들은 그동안 ‘언제 어디서나 잘 터져요’라는 기본 명제에 매몰돼 변화와 혁신이 부족했다. 앞으로는 통신기반 플랫폼 사업자로 변신해 소비자들이 원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 자동차회사 포드의 창립자 헨리 포드가 동시대 사람들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질문했다면 아마 ‘가장 빠른 말을 만들어달라’는 대답을 들었을 것이다. 자동차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위해 자동차를 만들어냈듯이, 고객의 직접적 요구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니즈까지 찾아내겠다”고 말했다.


최근 이통사들이 주요 대학병원과 잇따라 모바일 헬스케어 사업 관련 제휴를 맺는 것도, 삼성이 모바일 헬스케어에 특화된 이동통신 재판매 서비스를 내놓을 것에 미리 대비하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또 이통사들이 이동통신 재판매 사업자 대상 통신망 임대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통신망과 서비스를 분리하는 구조조정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이른바 ‘알뜰폰발 이동통신 시장 빅뱅’이 시작되는 모습이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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