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렄 ] 비윤리적 인력퇴출, 제도적 방지책 없나 [ 2012.09.14 ]

최근 KT 본사가 '부진인력 퇴출프로그램'(C-Player)을 기획하고 실행한 사실이 관련업무를 했던 담당자의 양심선언으로 밝혀졌다. “일부 지사에서 임의적으로 작성했을 뿐 시행하지는 않았다”던 KT의 해명은 거짓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양심선언에는 1천470명을 퇴출시키는 중기 계획을 세우고 명예퇴직 거부자나 고과가 낮은 직원뿐 아니라 노조활동 등으로 해사행위를 한 직원까지 퇴출대상으로 올렸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양심선언을 한 박찬성(44)씨는 “반인륜적 인력퇴출”이라고 말했다. 부당한 해고일 개연성이 높지만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 퇴직자가 명예퇴직금을 수령했고, 부당해고라 하더라도 처벌할 수 없다는 이유다. 비윤리적 인력퇴출을 막을 방안은 없을까.

“노동부가 감시·감독만 제대로 해도 막을 수 있다” 

   
조태욱
KT노동인권센터
집행위원장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정리해고는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에 한해 할 수 있다. 1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내는 KT는 정리해고를 할 수 있는 요건이 안 된다. 그래서 비밀 퇴출프로그램을 가동한 것이다. 퇴출프로그램에 따른 해고는 부당해고다. 민주동지회나 노조활동을 하는 특정집단을 그룹으로 관리해 퇴출대상으로 지목하는 것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

퇴출을 압박하는 것은 형법상 협박죄·강요죄에 해당하는 명백한 범죄행위다. 퇴출프로그램 운영을 막기 위해 새로운 제도를 만들 필요는 없다. 법 집행만 제대로 하면 해결될 일이다. 문제는 감시·감독을 해야 할 고용노동부가 권한을 행사하지 않고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데 있다. 처벌을 감수하고 퇴출프로그램을 운영할 경영진은 없을 것이다.

노동자들을 법적요건을 갖춰 해고할 수 있고, 그게 아니라면 몰래 해고하는 게 용인되는 사회라면 큰 문제다. 경영진들의 인식을 환기하기 위해 이럴 경우 가중처벌을 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KT, 철저한 계획하에 민주노조 와해”

   
김형동 변호사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그동안 KT의 노무관리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많았지만 이것이 법정 분쟁으로 비화됐을 때 회사측을 처벌하고 노동자를 구제할 만한 증거가 부족했다. 부당하게 전직·전보·해고를 통보받은 노동자 대부분이 회사측의 방침에 반대하는 민주동지회 소속이었지만, 회사측이 계획적으로 특정인을 겨냥해 인력퇴출을 도모했다고 주장할 만한 엄격한 증거가 부족했다.

이번에 공개된 KT의 인력 퇴출프로그램 자료는 부당노동행위나 부당해고 소송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노조원을 퇴출대상으로 삼은 점은 현행 법률상 부당노동행위로 볼 수 있다. 또한 부당전보나 해고 등은 노조원에 대한 인사상 불이익 처분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최근 공개된 자료는 2000년 이후 KT의 민주노조 와해 과정이 철저한 계획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적극적인 증거다. 자료가 증언하는 부당노동행위와 부당인사의 여파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지 않았나. 과도한 노무관리로 노동자들을 고통에 몰아넣은 회사측과 이를 외면한 정부당국은 반성해야 한다.

“국회 환노위 차원에서 광범위한 실태조사 필요”

   
이광규
민주노총 기획국장

이윤을 원활히 창출하는 것이 모든 것의 최우선이 되는 기업논리 속에서 KT의 부진인력 퇴출프로그램 같은 비윤리·반사회적 노무관리 제도가 생겨났다. KT로 상징되는 성장 중심, 신자유주의 기업논리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가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는 게 확인됐다. 이번 KT 부진인력 퇴출프로그램 사태는 노동인권의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 사회적으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사회적 과제다. 이 같은 사회적 인식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법을 만들어도 소용이 없다.

이와 함께 전 사업장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 이런 비윤리적 노무관리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는 곳이 비단 KT만은 아닐 것이다. 실태조사는 노동부에만 맡겨 둬서는 안 된다. 19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집단적·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환노위 차원의 실태조사와 국정조사를 하고, 드러난 결과를 가지고 법·제도적인 개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눈엣가시 직원들 강제 퇴출 유도”

D사는 2005년부터 KT와 유사한 인력퇴출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측은 현재까지 단 한 번도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이 없다. 이로 인해 적지 않은 자살과 정신질환자들이 생겨났다.

사측은 기업의 성과와 조직 구성원의 역량을 높이기 위해 만든 특성화된 혁신 프로그램이라고 주장했지만 단 한 번도 공개적으로 밝히거나 공론화한 적이 없다. 말은 혁신 프로그로그램이었지만 직원 업무실적을 근무평점으로 전환시켜 하위 5%에 해당하는 직원 중 실적이 향상되지 않은 직원을 특별부서로 발령했다. 그 후 생뚱맞은 새 업무에 대해 재교육을 시켜 전국 각지로 발령을 냈다. 사실상 KT에서 실행하고 있는 원거리 발령과 업무 전환배치, 교육프로그램 투입과 유사한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에 투입된 당사자는 '낙오자'라는 낙인이 찍힐까 봐 이를 숨겨야 했고, 당사자가 숨기다 보니 노조도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치하지 못했다. 사측은 이를 이용해 노조에 적극적인 사람들과 눈엣가시인 사람들을 프로그램에 투입해 퇴출을 유도했다. 이로 인해 많은 정신질환자들이 발생했다. 원거리 발령으로 가장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가족들 또한 심리적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이 같은 프로그램이 대기업에서 악용되지 않으려면 노조와 고용노동부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 노조는 이를 공론화시켜 사회적으로 알려 내야 하고, 노동부는 이에 대한 감시와 행정조치를 강화해야 한다. KT 사태는 현재진행형이다.

“KT의 인간존엄성 파괴행위, 국정감사로 진실 밝혀야”

   
권영국 변호사
(민변 노동위원장)

노동부가 KT 본사·지사는 물론 인력퇴출 프로그램 명단에 올랐던 피해자를 전수조사해야 한다. 노동부는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이유로 조사의 실효성이 없다고 하는데, 근로기준법 23조는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는 물론 휴직·정직·전직·감봉과 그 밖의 징벌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KT는 인력퇴출 프로그램을 통해 해당 노동자를 끝내 해고시켰을 뿐만 아니라 시행 과정에서 지역이 다른 곳을 발령을 내거나 능력 밖의 업무를 시키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근로기준법 7조 강제근로의 금지 조항에 위반되는 행위다.

특히 KT의 인력퇴출 프로그램은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파괴하는 행위다. 헌법은 근로조건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했다. 퇴출대상에 올랐던 사람들이 설령 스스로 퇴직을 했더라도 이들이 받았을 정신적·심리적 압박과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을 것이다. KT의 이러한 반사회적·반인간적 행위를 절대 묵과해서는 안 된다. 제2, 제3의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다. 인력퇴출 프로그램이 지금도 남아 있는지, 또 다른 형태로 변화하지는 않았는지 특별감독을 통해 모두 밝혀야 한다. 노동부는 수사기관처럼 수사의 실효성만 언급할 것이 아니라 행정부처로서 행정지도나 조치 등 정부가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만약 노동부가 이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국정감사를 벌여야 한다. 정부가 하지 않으면 국회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사용자가 업무상 지휘체계를 이용해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노무관리를 하지 못하도록 이번 기회에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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