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생부’ 늪에 빠진 KT… 이석채 회장 ‘사면초가’ [ 2012.09.13 ]

[시사서울=도기천 기자]

다음달 5일로 예정된 국정감사를 앞두고 KT의 아킬레스건인 ‘부진인력 퇴출프로그램’(CP프로그램)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KT가 CP프로그램을 조직적으로 실행해 왔다는 전직 KT직원의 양심선언이 나온데다, KT계열사인 케이티시에스(KTcs)와 케이티스(KTis)가 CP프로그램으로 직원들을 무더기 징계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CP프로그램은 지난해 4월 KT전직 간부 반기룡씨와 피해 근로자들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지면서 KT에 대한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야당 의원들과 시민단체들의 잇단 의혹제기 등으로 일부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지만 전반적인 실체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있는 상태다.

   
  ▲ 본격적인 VoLTE 서비스 경쟁을 앞두고 ‘KT살생부’로 불리는 ‘부진인력 퇴출프로그램(CP)’ 논란에 휩싸인 이석채 KT 회장. /사진=뉴시스  
 

살생부 양심선언, 퇴직거부자 무더기 징계…KT사태 일파만파
언어장애인 콜센터 배치, 셋만 모여도 ‘부당한 집회’로 징계
퇴직 거부한 79명 노조 만들어 KT, KTis 상대 집단소송
KT “중장기 인력계획 수립했을 뿐… 퇴출프로그램과는 무관”

KT계열사로 전화번호 안내 서비스를 제공하는 케이티시에스 (KTcs)와 케이티스(KTis)는 최근 근로계약이 종료된 직원들을 콜센터로 배치하는 등의 방법으로 자진 퇴사를 유도해 왔으며, 이에 맞서 근로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해 KT 등을 상대로 최근 집단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시사서울> 취재 결과 확인됐다.

KT는 2008~2009년 네 차례에 걸쳐 KT 정규직 직원 500명에 대해 ‘3년간 고용보장·현 임금의 70% 보장’ 및 ‘본인이 원할 경우 3년 계약 이후에도 지속 근무토록 한다’는 조건으로 계열사 전적 형식의 명예퇴직을 실시했다.

이들은 KT계열사인 케이티스 등에서 플라자·고충처리 업무(VOC) 파트에 배치됐다. 케이티스는 KT로부터 분사돼 KT민원창구 업무, 100번 콜센터, 114전화번호 안내서비스 등을 맡고 있는 계열사다.

이후 3년 계약이 만료되기 직전인 지난해 6월 케이티스 등은 퇴직 신청을 받았고 전체 500여명의 직원 중 400여명 이상이 퇴직을 신청했다. 하지만 일부 직원들은 퇴직을 거부하고 당초 KT가 약속한 근로계약조건인 ‘3년 근무 후에도 능력과 업적에 따라 지속적으로 근무가능’이라는 계약사항을 이행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케이티스는 이들을 고충처리업무(VOC)부서에서 콜센터(100번) 상담 업무로 배치했다. VOC업무는 KT 본사로 일부 환수됐다.

콜센터 업무는 민원인의 각종 폭언, 성희롱, 협박 등으로 스트레스 강도가 높아 대부분 50대 중년층인 퇴직거부자들이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인 업무였다.

이에 퇴직거부자 79명은 노조(KT희망연대노조)를 결성하는 한편 지난해 12월 KT, KTis, KTcs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소장에서 “KT 등이 명예퇴직 조건으로 계열사인 KTis와 KTcs에서 지속 근무토록 해준다고 약속해 놓고 VOC업무를 회수하여 콜센터로 배치한 것은 당초 약속을 어긴 기망행위”라고 주장했다. 반면 KT측은 “3년 이후에도 계속 근무 약속을 이행했으므로 기망행위가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으며 현재 1심재판이 진행 중이다.

언어장애인 100번 콜센터 배치

법적 분쟁으로 촉발된 이번 사태는 케이티스가 최근 이들에 대한 징계를 추진하면서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케이티스 측은 퇴직거부자들의 근태?업무실적 등을 종합 평가해 지난 7월 17명의 감봉에 이어 현재 55명을 대상으로 추가 징계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희망연대노조 케이티스지부 백경기 지부장은 13일 <시사서울>과의 통화에서 “조합원들에 대한 징계위원회 출석통보가 내려진 상태”라며 “회사측이 조합원들의 강제 퇴출을 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고 전했다.

백 지부장은 “콜센터 업무로 전환된 이들 대부분은 50대 중년층인데다 심지어 언어장애를 겪고 있는 분도 있다”며 “20대 직원들의 하루 응대 건수인 62콜보다 못하면 한 달 수당 15만원을 받지 못해 병가, 조퇴 등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백 지부장은 “직원들의 급여도 KT에서 케이티스로 옮기면서 기존의 70%로 줄었는데, 콜센터에 배치되면서는 더 줄어들어 (예전 KT에서 받던 월급의) 절반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노조 측과 일부 시민단체들은 케이티스가 최근 퇴직을 거부한 직원들에 대해 징계를 추진하고 있는 배경에는 KT의 ‘CP프로그램’이 자리잡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KT노동인권센터 관계자는 “노조를 만들어 퇴출을 거부해 온 케이티스 직원들이 무더기로 징계에 취해진 것은 KT가 이들을 CP대상자로 지정해 지속적으로 퇴출 압박을 해온 결과”라고 지적했다.

희망연대노조 케이티스지부 관계자는 “현재 콜센터 사무실에는 직원들의 동태를 파악하는 감시 직원이 상주하고 있다”며 “사무실에서 직원들끼리 얘기한 것을 부당한 집회를 연 것이라며 징계위에 회부한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

회사측은 정당한 업무평가에 의한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상은 노년층 직원들을 퇴출시키기 위한 수순밟기라는 게 노조 측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케이티스 관계자는 “해당 직원들은 3~4년전 이미 (명예퇴직으로) 퇴직금을 정산해 준 뒤 다시 재고용했던 경우에 해당되는 분들로 당시 ‘3년간 해당 업무와 급여의 70%를 보장하고 그 이후에 업무와 급여를 다시 정한다’고 약속돼 있어 콜센터로의 배치는 문제가 없다”며 “징계위 회부는 업무처리(콜응대) 건수가 다른 직원들에 비해 현저히 저조하고 근무태도가 불량한 직원들에게 상시적으로 취해온 조처”라고 말했다.

KT관계자도 “(3~4년전) 구조조정이 있을 당시 정리해고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자제하고 명예퇴직 대상자들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 계열사인 케이티스 등에 전적 형식으로 재배치 한 것”이라며 “3년 고용계약 약속을 성실히 이행했고, 계약 기간 이후의 부서재배치는 케이티스가 업무특성을 고려해 진행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특히 KT측은 “KT와 케이티스에 인력퇴출 프로그램이 존재한다는 것은 억측 주장”이라며 “수차례 진행된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에서도 별다른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 <시사서울>이 입수한 2007년 2월경 KT 충주지사에서 작성한 부진인력 퇴출 프로그램 실행계획서. 자료에는 퇴출 대상자와 개인별 퇴출 시나리오가 담겨 있다. KT는 최근 수년간 업무부진자, 명퇴거부자, 해사행위자(KT민주동지회 가입) 등을 대상으로 치밀한 퇴출프로그램을 운영해 온 것으로 추정되지만 실체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있다.  
 

은수미 의원 “고용학대 프로그램 실체 파헤칠 것”

하지만 KT측의 이같은 주장에도 불구하고 KT 전직 간부 박찬성 씨는 1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KT가 2003년부터 전담반을 구성해 중기적정 인력규모를 산정해 그에 따른 퇴출프로그램을 가동했으며 본사가 직접 관리했다”고 폭로, 케이티스 사태와 맞물려 파장이 커지고 있다.

박씨는 “퇴출프로그램을 세워 퇴출 규모를 산정하는 작업이 자신의 역할이었다”고 주장했다. 박씨가 공개한 ‘CP프로그램 파일’에는 ‘명퇴거부자’, ‘직위미부여자’, ‘D고과자’, ‘해사행위자(민동회)’ 등이 퇴출대상자로 지목됐으며, 이들을 등급별로 분류해 전국적인 퇴출 목표치, 본부?지사별 목표치, 구체적 시행방안 등이 담겨 있다.

박씨가 밝힌 KT본사의 CP프로그램 실행 프로세스는 지난해 최초로 퇴출프로그램을 폭로했던 KT중간관리자 반기룡 씨의 양심고백 내용과 일치한다.

또 이번 양심선언이 케이티스 사태가 지난 2008~2009년 있은 KT의 대규모 구조조정에서 비롯됐다는 노조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라 주목된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지난 5일 은수미 민주통합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서 “인력퇴출 관련 문건 및 관련자들의 진술 등을 감안하면 부진인력 퇴출 프로그램이 일부 운영되었던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은수미 의원 측은 <시사서울>과의 통화에서 “KT가 중기인력자원관리계획이라는 퇴출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운용되고 있다”며 “국정감사 때 이 문제를 낱낱이 파헤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KT측은 <시사서울>에 “채용에서 퇴직까지의 프로세스는 여타 회사와 다를 것이 없으며, 경영환경에 대비를 위해 매년 중장기 인력계획을 수립 및 검토하는 것이었을 뿐”이라며 “퇴출프로그램에 의해 징계, 전보 등 부당한 조치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노동위원회에 제기되었던 14건의 구제신청 사건도 퇴출프로그램과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이미 판정된 바 있다”고 반박했다.

VoLTE 경쟁 앞두고 KT이미지 타격

한편 이번 사태가 조만간 막을 올릴 이통 3사의 VoLTE서비스 대전(大戰)을 앞둔 시점에 터져 나와 KT측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KT는 지난해 2G서비스 강제종료 논란으로 LTE서비스를 타 통신사들보다 늦게 시작하는 바람에 LTE시장에서 후발주자인 LG유플러스에게 2위 자리를 내주는 등 큰 타격을 입었다. 이에 KT이석채 회장은 조만간 개시될 VoLTE 시장에서 반격의 기회를 잡겠다는 의지를 밝혀왔다.

이 회장은 지난달 상품 및 고객별로 나눠져어 있던 개인고객부문과 홈고객부문을 통합하는 한편 표현명 개인고객 부문 사장을 T&C부문장으로 앉히는 등 대대적인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유선, 무선, 법인 등으로 나눠져 있는 42개 지역 현장 조직을 11개 지역본부로 통합해 Customer부문 산하에 통합했으며, 미디어콘텐츠, 위성, 부동산 등 3개의 분야를 독립 운영하기 위해 전문회사 설립을 추진한다고 천명한 바 있다.

KT측은 이번 사태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홍보라인을 풀가동해 적극적인 해명에 나서고 있지만 현재 공은 국회로 넘어간 상태다. 끊임없이 낙하산 논란에 시달려온 KT의 수장 이석채 회장이 이번 국감에서 또다시 불거진 ‘KT살생부’ 논란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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