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기획] 6월 28일 열린 고 김성현 KT노동자 추모 촛불문화제 현장

“노동탄압 없는 KT 만들었다면, 죽음 막을 수 있었는데”
[수요기획] 6월 28일 열린 고 김성현 KT노동자 추모 촛불문화제 현장
2013.07.03 11:12 입력

“15년간 사측으로부터 노동탄압이 이젠 끝났으면 합니다”

 

절망도 원망도 느껴지지 않는 표현이지만, 고 김성현 KT노동자의 유서를 볼 때마다 KT노동자들은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

 

 

“유서를 보고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그리고 반성도 많이 했어요. 노동탄압 없는 KT를 우리가 만들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6월 28일 전주 서신동에 있는 KT전북본부 사옥 앞에서 열린 ‘KT노동인권 보장을 위한 촛불집회’에 참석한 김규화 KT민주동지회 회원이 말을 어렵게 이었다. 민주노조 운동을 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퇴출프로그램과 각종 해고, 징계, 부당전보 등을 온 몸으로 맞서온 KT민주동지회지만, 동료의 죽음만큼은 견디기 어려워 보인다.

 

KT의 구조조정, 노조의 침묵에 고통 받는 노동자들

 

고 김성현 KT노동자가 6월 17일 전남 광양에서 자결했다. 임금을 삭감하고 정리해고를 가능하도록 한 2013년 임금 및 단체협상안 찬반투표에 찬성을 찍을 것을 강요당한 정황을 유서에 남겼다. 자신을 비롯해 동료들의 상시적인 퇴출을 가능하도록 하는 단체협약에 반대표를 던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KT 내에서 그런 상식은 통하지 않았다. 그는 투표용지에 찬성을 찍은 것을 증거라도 남기듯 사진으로 남겼다 그리고 "아...또 찬성을 찍다니"라며 괴로워했다.

 

▲고 김성현 KT노동자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문제가 된 2013년 단체협약은 5월 KT노동조합이 경영진에 백지위임한 것이다. 이 협약안에는 임금을 동결하고 인사평가 최하점을 두 차례 받은 노동자를 합의하에 면직처분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 담겨있다.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특히 KT노동자라면 더욱 그렇다. IMF 시기부터 끊임없이 인력구조조정에 시달렸고, 2005년부터 등장한 인력퇴출프로그램(CP)에 따라 관리대상을 지정된 직원들은 철저하게 감시당했다. 또한 구실을 만들어 퇴출을 종용받기도 했다.

 

2011년 전직 관리자의 양심선언으로 드러난 인력퇴출프로그램에 대해 대법원은 올해 4월 25일 그 불법성을 인정하고 이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라는 2심 재판부의 판결에 불복한 KT의 상고를 기각했다. KT노조가 단체협약을 백지위임한 것은 불법성이 드러난 인력퇴출프로그램에 대해 사실상 묵인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주장도 있다.

 

KT노동자 원병희 씨는 “초탈법적인 노사 합의로 소수 견제세력이라고 하는 민주동지회와 새노조를 겨냥한 또 다른 퇴출프로그램”이라면서 “충남, 전남, 대구 이 3곳에 전략적 재배치할 수 있도록 노사가 합의했다. 원거리 발령을 통한 퇴출 압박이 더 거세질 것”이라고 말했다.

 

▲올 초 포항으로 원거리 발령을 받은 원병희 씨.

   
인력퇴출프로그램의 퇴출 대상자였던 원병희 씨는 KT민주동지회 소속 회원이다. 원 씨는 2003년부터 최근까지 인사평가에서 항상 최하점을 기록했다. 원 씨는 이미 2011년 한 차례 해고를 당한바 있고, 1년 이상의 법정 다툼 끝에 작년 부당해고를 인정받아 복직된 바 있다. 그는 올 초 포항으로 원거리 발령을 받았다. KT는 당시 원 씨의 원거리 발령이 보복성 징계가 아니라 합당하게 전보를 낸 것이라고 밝혔지만, KT민주동지회는 원 씨의 복직 이후 내려진 원거리 발령이 인력퇴출프로그램의 연장선상으로 보고 있다.

 

“현재 찜질방에서 생활하며 출근하고 있다. KT가 사택을 제공해줬지만, 너무 열악해 우울증이 올 것 같아 그렇게 결정했다. 최근 전주에 있는 아내가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전화를 받았다.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날 하루는 걱정에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앞으로 내가 퇴직까지 버틴다면 이렇게 경북권을 돌며 마치지 않을까 싶다”

 

KT노동자의 죽음에 지역 노동계도 함께 분노

 

28일 열린 문화제에는 지역의 노동자, 시민사회단체들도 참석해 KT의 노동탄압에 대해 규탄하고, 노동자의 죽음에 함께 슬퍼하며 촛불을 들었다.

 

▲6월 28일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KT노동탄압이 끝나기를 소망하는 촛불 의식을 참가자들이 하고 있다.

민주노총 비정규직 노조인 평등지부의 이태식 지부장도 “더 이상 회사의 탄압에 희생하는 노동자는 없어야 한다”며 KT에서 탄압으로 고통 받는 노동자가 없기를 소망했다.

 

노 전 지부장은 “소수지만 인권유린과 부당한 탄압에 맞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며 투쟁하는 KT노동자들이 존경스럽다”며 “KT노동자의 죽음을 보면서 과거 쌍차와 한진중공업 등에서 벌어진 노동탄압이 떠올랐다. 작지만 우리가 잘 단결해서 이 난관을 극복하자”고 KT노동자들을 위로했다.

 

이어 “노조탄압으로 악용될 수 있는 단협을 찬성하라는 사측이나 이를 묵인하는 노조를 보면 이는 사측에 의한 노무관리나 다름없다”면서 “국민 공공의 이익을 위한 공기업이 아닌 일부 주주들의 이익을 위한 패거리 경영을 그대로 보여 준다”며 KT 사측과 노조에 대해 유감의 뜻을 밝혔다.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한 인권활동가는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와 함께 촛불을 들어야 하는 사람들이 바로 KT노조인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은 KT의 부당한 경영에 대한 문제점도 제기됐다. 원병희 씨는 “최근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아들이 KT법무팀에 특채로 들어갔다”면서 “KT의 인력퇴출프로그램 등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KT의 불법경영에 대해 법의 심판이 필요한 상황에서 법무부장관 아들의 특채는 과연 우연이라고 봐야 하나”며 문제를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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